문화 / Culture

<열두 번째 용의자> 시대의 진범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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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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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범인과 관련한 내용을 밝히고 있습니다. 영화 관람이 예정된 분들은 스포일러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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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용의자>의 처음 제목은 <남산 시인 살인사건>이었다. 서울 남산에서 한 시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의 범인을 쫓는 이야기를 예상하게 하는 제목이다. 그런데 제목을 변경했다. 이야기를 뻔하게 예상하게 하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바꾸었거나, 제목조차 범인을 찾는 단서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숨겨놓았거나, 둘 중 하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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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발화점은 당연히! 어느 시인이 남산에서 사망한 일이다. 용의자들이 모인 곳은 ‘오리엔타르 다방’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을 연상하게 하는 다방 이름답게 <열두 번째 용의자>는 다방이라는 밀실에서 진행되고 용의자들은 사건과 관련하여 어느 면에서 모두 한 통 속으로 묶여 있다. 그런데 다방 안에는 아무리 세어봐도 12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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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어느 가을, 유명 시인 백두환의 죽음을 조사하겠다고 김기채(김상경)가 오리엔타르 다방을 찾는다. 다방에는 주인 부부 노석현(허성태)과 장선화(박선영)가 손님들을 시중드는 가운데 화가 박인성(김동영)과 우병홍(정지순)과 이기섭(김희상), 시인 문봉우(장원영)와 오행출(김지훈)과 김혁수(나도율), 소설가 장혁(남연우)과 대학교수 신윤치(동방우)가 불안한 듯 또 궁금한 듯 김기채를 조심스러워하는 듯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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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목의 ‘열두 번째 용의자’와 다르게 밀실에는 모두 11명뿐이다. 사실 이건 일종의 트릭이다. 여기에 한 명이 더 있다. 남산 시인 백두환와 내연 관계에 있다고 의심받는 최유정(한지안)이다. 그럼 모두 열두 명이 된다. 근데 수사를 하는 김기채도 용의자가 될 수 있나? 바로 여기에 이 영화의 제목과 더불어 <열두 번째 용의자>를 기존의 밀실 살인 추리극과 다르게 볼 수 있는 특이점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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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적 배경인 1953년 가을은 한국 전쟁의 휴전(7월 27일)이 시작한 지 약 2~3개월 되던 때다. 여전히 이념 전쟁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데다가 일제 강점기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친일 세력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애국을 한답시고 ‘빨갱이’ 색출을 하는 상황에서 이의 혼란함을 문학적으로 표현하거나 비판하는 문인과 지식인은 좋은 먹잇감이 됐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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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용의자>를 연출한 고명성 감독은 제작 계기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한국의 근대사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나 과거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들이 참 많다. 명동과 남산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무대로 기득권 세력에 의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진실을 영화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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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제목이었던 ‘남산 시인 살인사건’을 염두에 두고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과 같은 밀실 살인을 예상하여 범인 찾기 하는 건 함정이다. 범인 찾기를 하게 하는 단서 들은 극의 전개상 중요한 것처럼 보여도 실은 무관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념이라는 정신의 ‘밀실’에 사람들을 가둬두고 시대의 입이 되고 양심이 되는 이들에게 ‘빨갱이’ 재갈을 물려 역사의 진보를 방해하는 이를 ‘열두 번째 용의자’에 올려둔 의도가 지금의 제목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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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의 미스터리는 ‘범인은 바로 너’와 같이 즉각적으로 답답함을 해소하는 답을 주는 대신 여전히 잡히지 않고 지금 이 시각에도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이념 미스터리에 주목하도록 한다. 애초에 죗값을 치렀어야 했음에도 되려 출셋길에 올라 한국사회의 혼란을 의도적으로 현재까지 이어온 시대의 진범이 누구인지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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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역사를, 진범을 바라보지 않음으로써 우리가 받은 피해는 극 중 노석현의 대사로 드러난다. “무지함을 핑계로 정의를 보지 않으려 한다면 그들은 언제까지고 우리를 개나 돼지로 바라볼 거요.” 그래서 고명성 감독은 <열두 번째 용의자>가 이런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분절된 시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이 계속되어 현재에 이어오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나간 일은 잊히지 않고 아픔은 지속한다. 청산하지 못한 문제,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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