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 개척자가 알려주는 서귀포의 숨은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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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로 걷기 열풍을 일으킨 서명숙 저자가 고향 서귀포를 매일 걸으며 우리가 몰랐던 서귀포의 신비와 아름다움, 그 속에 가려진 아픈 역사를 조명한 책 『서귀포를 아시나요』? 를 펴냈다. 저자는 그동안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등 주로 제주의 길과 문화를 탐색했다면 이번엔 오롯이 자신이 나고 자란 서귀포의 길을 걸으며 색다른 풍경, 생태, 사람, 역사에 천착했다. 이번 책을 통해서는, 마치 유적지의 보물을 찾아 걸어 들어가는 사람처럼 페이지마다 흥미롭고 새로운 서귀포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안겨준다. 서귀포에서만 보이는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서귀포에서 보면 다른 모습인 한라산 설문대할망, 생태적으로 잘 보존된 다섯 개의 도심공원 등 저자가 걸음걸음 찾고 보고 발견한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대한민국 여성 정치부 기자 1세대, 시사주간지 사상 첫 여성 편집장 서명숙 저자가 서귀포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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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을 개척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여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등에서 제주의 길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이번 책에서 특히 ‘서귀포’라는 도시를 전면에 내세운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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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주도 하면 육지 사람들은 흔히 한 덩어리로 생각하지만, 제주도는 결코 작은 섬도 아니며 동일한 생활권이 아니에요. 한라산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매우 뚜렷한 지형과 기온 차이를 보이고, 동서 또한 그렇습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귀포 구도심은 제주도의 남쪽에서도 딱 중간에 위치한, 제주에서도 가장 따뜻한 곳이에요.
2007년 나는 30년의 서울살이를 접고 제주도로 길을 내기 위해 내려왔고, 2년 뒤 2009년 태어나고 자란 서귀포의 구도심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10년 넘게 대한민국 남단에 위치한 서귀포와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걸으면 걸을수록, 살아가면 살수록 이 작은 도시는 감춰진 매력과 뒷모습을 내게 보여주었어요.
서귀포에 다시 돌아와 살면서 나는 고향 서귀포를 여행 생활자처럼 탐색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서귀포에서만 머문 건 아니었지요. 이스탄불, 런던, 파리, LA, 라스베이거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타이베이, 도쿄, 오사카 등 지구촌 많은 도시들을 출장으로, 여행으로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릴 적 그토록 꿈꾸었던, 남단 끝 섬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 했던 여러 도시로의 여행은 오히려 서귀포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선을 갖게 해주었어요.
그럴 즈음 올해 초 마음의숲 출판사에서 그동안 돌아다닌 세상의 여러 도시들과 세계의 트레일을 걸은 경험을 담은 책을 만들자고 제안해 왔어요. 나는 짧으면 1주 길어야 보름쯤 머문 그곳에 대해선 그닥 쓸 얘기가 없노라고 거절해놓고선, 문득 10년째 날마다 여행 중인 내가 나고 자랐던 이 도시에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을 꺼내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에게 서귀포에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말고도 그들의 모천이 숨어 흐르는 걸매 정모시공원이 있는 걸 아시는지, 서귀포항을 떠난 채 50년째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는 걸 아시는지 묻고 싶었어요. 서귀포 정방폭포 근처 절벽에서 70년 전에 꽃잎처럼 떨어진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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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설화인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할망인지, 제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저자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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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대할망은 신화, 설화 속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제주인들에게는 과거의 신화, 먼 설화 속에 갇히거나 박제된 존재가 아니에요. 그녀는 제주 동서남북 서로 다른 지역의 지형, 하루에도 몇 번씩 천변만화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날씨, 한라산의 모습을 관장하고 조정하는 존재로 여겨집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거대한 존재이자, 제주인의 소소한 일상에까지 친근하게 개입하는 존재이지요. 그런 할망의 존재 때문에 제주가 더더욱 여성의 섬으로 느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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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에서 서귀포 곳곳을 탐색하며 저자님도 모르던 곳을 재발견했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에게 이곳은 꼭 가보라고 알려주고 싶은 ‘핫 스폿’ 세 군데만 소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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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말하곤 했습니다. 제발 제주의 아름다운 곳을 다 공개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은 공유되어야 하며, 공유할수록 그 가치는 더 커진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과 가치를 공유해야 그곳을 잘 보전해야겠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지 않겠어요? 난 이 책에 언급된 서귀포 구도심 일대의 공원 5군데 중에서도 특히 사람들이 잘 모르거나 찾지 않는 걸매생태공원과 정모시공원을 강추합니다. 문화적인 장소로는 수많은 올레꾼들의 성금을 종잣돈으로 어렵사리 구입해서 오랜 기간 리모델링을 거쳐 3년 전에 문을 연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를 추천하고요. 이곳에 들른다면 당신은 진정한 서귀포 여행의 첫발을 내딛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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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이면에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꼭 기억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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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가 아니 그렇겠냐마는, 서귀포에는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사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전역에 걸쳐서 오랜 기간 동안 깊은 생채기를 온 도민에게 남긴 4.3의 현장인 정방폭포 근처(지금은 서복공원이 자리 잡음)의 슬픈 학살의 기억과 흔적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4.3의 제주의 보편적 기억이라면, 1970년 326명의 목숨을 앗아간 남영호 사건은 서귀포만의 특수한 체험이요 아픔이에요. 내 친구들도 어머니나 아버지를 잃고, 어떤 친구들은 고아가 되고 말았어요. 이 사건 또한 세월호처럼 과적이 낳은 인재였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발 남영호 사고 50주기를 맞은 2020년을 기해 추모비만이라도 사고 현장인 서귀포항에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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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트레일즈네트워크(WTN) 명예홍보대사를 수락하는 연설에서 ‘피스올레’를 이야기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지, ‘피스올레’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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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북단 함경도 무산 출신인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늘 고향 땅을 밟는 꿈을 꾸었지만, 끝내 그 땅에 돌아가지 못한 채 돌아가셨어요. 13년 전 직장을 접고 그토록 꿈꾸던 산티아고 여행길에 오른 나는 첫날 26km의 산길을 걸어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국경지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지점에서 나는 자기 땅을 밟지 못한 아버지를 떠올렸어요. 제주에 돌아와 길을 내면서 나는 줄곧 어머니의 땅인 서귀포에서 아버지의 땅인 무산까지 걸어서 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2018년 3월 서귀포 민주평통과 함께 제주올레 6코스 출발점인 쇠소깍에 ‘피스올레’ 출발점 표식을 세운 것도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겁니다. 남과 북은 본디 한 나라 한 겨레였고, 당연히 길은 이어져 있습니다. 길이 막히면 모든 기억도 사라지고, 길이 열리면 모든 소통과 이해는 저절로 가능해져요. 남과 북을 둘러싼 상황은 여러 가지 주변 정세에 따라 매우 가변적이에요. 그럼에도 나는 그 꿈을 줄기차게 꿉니다. 꿈꾸는 건 무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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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부터 열리는 제주올레걷기축제가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했습니다. 평소에도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별히 이 축제를 즐기러 사람들이 오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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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즐거움은 ‘고독한 자유’의 즐거움입니다. 혼자 걸으면 자기 내면을 응시하게 되고, 자연과도 깊이 교감하게 되지요. 하지만 같이 걷는 즐거움 또한 만만치 않아요. 인간은 고독한 존재인 동시에 교감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제주올레걷기축제는 교감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주는 현장입니다.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온 올레꾼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올레꾼들이 국경과 연령, 성별을 넘어서서 자연 속에서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제주의 토속 음식을 함께 즐기고, 글로벌하거나 로컬한 다양한 공연을 마음껏 즐깁니다. 해마다 외국에서 축제를 찾아오는 올레꾼들이 늘고 있고, 10년째 빠짐없이 축제를 찾아오고 자원봉사를 하는 이들도 많아요. 그들은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즐기면서, 동시에 교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축제를 찾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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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없이 들은 질문이겠지만, ?『서귀포를 아시나요』?를 통해 저자님을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해 한 번 더 질문하겠습니다. 저자님에게 길은 무엇인지,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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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세에 나는 직장생활에 녹초가 된 내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고 긍정적인 중독인 ‘걷기 중독’에 빠져들었고, 갈수록 보다 더 긴 길을 찾게 되었어요. 길은 내게 정말 많은 것을 내주었습니다. 길은 작게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었고, 크게는 내게 인생의 방향을 다시 찾게 해주었어요. 말하자면 나는 길에서 길을 찾은 것이지요. 지금도 나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위해서 끊임없이 길에 나섭니다. 또한 그럼에도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 서지 않거나,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더 먼 길을 걸으러 나섭니다. 길은 내게는 그 모든 것을 다 품고 있다가 선사해주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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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대한민국에 ‘올레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주인공. 걷기 여행의 열풍을 일으킨, 걷는 길 내는 여자. 1957년 제주도 성산읍 고성리 출생으로, 서귀포초등학교, 서귀여자중학교, 신성여자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프리랜서 기고가로 일하다 1983년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월간 <마당>, <한국인>의 기자로 일했고, 이후 <시사저널> 정치부 기자, 취재1부장, 편집장,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지내며 23년을 기자로 살다가, 남들이 다 말리는 ‘미친 꿈’에 빠져 길 내는 여자가 되었다. 나이 쉰에 과감히 기자생활 때려치우고, 홀로 산티아고 길 순례에 나섰다가 그 길 위에서 문득 고향 제주를 떠올리게 된다. ‘산티아고 길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을 제주에 만들리라’ 결심하고 귀국,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하고 걷는 길을 내기 시작한다. (사)제주올레 이사장, 아시아트레일즈네트워크(ATN) 의장, 월드트레일즈네트워크(WTN) 국제명예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올레길로 제주를 한 바퀴 잇는 날까지 '길 만드는 여자' 서명숙의 길 내기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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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를 아시나요서명숙 저 | 마음의숲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을 날마다 걷다 보면 뜻밖의 풍경을, 그 속에 담긴 애달픈 역사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길 위에서 자기 인생을 달라지게 만드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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