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팀을 구성하는 방법

얼마 전, 어느 마케터의 아이디어를 깊이 들었다. 그는 작년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구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꽤 많은 시도를 했다. 고객 인터뷰를 수십 명이나 했고,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프로토타입도 만들어 보여줬다.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에 큰 호감이 생겼다.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이 마음에 들었다. 돕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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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개발 경험이 없어 아쉬움이 있었고, 기능이 너무 많았다. 직접 만들 기술력도 없었고, 고객군이 너무 다양했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전달했다. ▲조금 더 본질에 집중할 것 ▲제품을 만들기 전 PPT로 검증할 것 ▲회사를 당장 그만두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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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위기에서 아이디어를 전달했고, 앞으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 내가 창업한 <도밍고컴퍼니>가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그날 말했던 내 조언을 얼마나 지키며 일했을까? 내가 내 조언을 창업 시절 들었더라면. 아니, 수 없이 들었던 그 이야기를 믿었더라면,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이 돼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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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이베이 등 세계 최고 기업에서 일하며 제품 관리 분야를 선도해온 마티 케이건의 『인스파이어드』? 를 읽으며, 내가 만들었던, 내가 만드는, 어느 마케터가 만들 제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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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파이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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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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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업계에는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있다. 제품을 예쁘게 만들었지만,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제품. 말 그대로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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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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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1년부터 안드로이드 앱 수십 개를 출시했다. 은행 SI를 주로 했는데, 당시 은행들은 앞 다퉈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기능을 무더기로 집어넣어 무거운 앱을 출시하더니, 기능을 다 뺀 간단한 앱을 또 출시했다. 다국어 지원 앱도 별도로 만들었고, 누구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게임을 넣기도 했다. 모든 은행 앱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 앱 중 이미 종료된 서비스도 많이 있다. 예쁜 쓰레기였던 것이다.

은행 SI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속했던 회사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앱을 출시했다. 늘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싫어서 주말 등을 활용해 스타트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부분 지금은 사라진 서비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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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에 관한 두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다. 첫 번째 진실은, 당신의 아이디어 중 최소 절반 이상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 번째 진실은, 아이디어가 충분히 잠재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더라도 필요한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최소 몇 번의 이터레이션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돈 버는 데 필요한 시간(time to money)이라고 한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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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흔히 듣는 상식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진실은 파레토 법칙을 IT에 적용한 말과 비슷하다. 고객은 실행 시간의 80%를 전체 기능의 20%만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두 번째 진실은 애자일, 린 스타트업 등 개념과 비슷하다. 조직을 작고, 민첩하게 해서 제품을 빠르고 반복적으로 출시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폭포수 모형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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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는 것과 실제 행동에 녹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마 아는 것과 실제 행동이 같은 문제라면, <도밍고컴퍼니>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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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만들면서 '예쁜 쓰레기'의 함정에 빠지는 팀을 많이 만났다. 고객을 위해서 다양한 기능을 넣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위해 만든 기능이다. 이들이 가장 쉽게 하는 변명은 '필요할 것 같아서'다. 고객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느 업계나 쉽지 않지만, 정말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는 것임에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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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제품에 관한 시야가 바뀐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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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 기본 앱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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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한 학원에서 안드로이드 개발 과정을 듣고 있었다. 대략적인 수업을 진행한 강사가 학생들에게 미션을 내렸다. 윈도 기본 프로그램인 '메모장'을 그대로 만들어보라는 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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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메모장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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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을 자주 사용했음에도 메모장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내가 메모장을 사용하지 않는가? 글쎄, 나는 충분히 메모장을 많이 사용했던 사용자였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윈도 OS 자체도 사람이 만든 것이었다. 나는 윈도 OS의 기능을 얼마나 사용했을까?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눈앞에 있던 모든 것에 눈길이 가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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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으로 충격을 줬던 강사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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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 다 안드로이드 앱 만들어보겠다고 왔는데, 안드로이드 앱 만 원 이상 돈 주고 사본 사람 손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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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0명에 가까운 학생 중 단 1명만 손을 들었다. 관점을 바꾸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메모장 기본 기능을 보며 개발자 관점을 깨달았고, 내 소비 패턴을 보며 소비자 관점을 깨달았다. 각 관점을 온전히 이해했다기보다는 각 관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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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쓰레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다. 각 관점에 빠진 것이다. 제품 개발 관점과 고객 관점은 너무도 다르다. 고객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개발자는 '예쁜 쓰레기'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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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팀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매우 깊이 깨달았다.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이 아니라면 엔지니어 팀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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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나 역시 <도밍고컴퍼니>를 만들며 개발자 관점에 빠져있었다. 단순히 아이디어만 말하는 기획자 출신 대표들보다야, 직접 만들 수 있는 개발자 출신 대표가 훨씬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필드에서도 VC 등 많은 사람이 같은 의견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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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게 오해했다. 단순히 개발자가 큰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만들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등 비즈니스의 기초도 모른 채 그저 기능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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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분야에 능력치를 갖는 것은 한 분야에서 날카로움을 잃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팀'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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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으로 일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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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개발자, 스타트업 대표, 프리랜서 개발자, IT 기자를 거쳐 지금 팀에 합류하기까지 다양한 분야 경험을 쌓았다. 다행인 것은 완전히 헛발질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그저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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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팀에 합류한 여러 이유 중 '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SI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팀에서 철수한다. 늘 팀이 바뀌는 특성상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SI를 선호하는 개발자도 보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개발자는 SI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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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SI를 탈출하고 싶었다. 나를 방어해야 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늘 만들어 둬야 하는 그 환경이 싫었다. 꽤 그 환경에서 잘 살아남는 편이었지만, 내 성향과 맞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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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은 지시한 것만 만든다. 미션팀은 진심으로 비전을 믿고 그들의 고객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제품 전담팀은 마치 사내 스타트업처럼 행동하고 느낀다. 그것이 제품팀에 바라는 모습이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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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품을 굉장히 아끼는 편이다. SI를 할 때도 철수한 뒤 종종 제품을 사용해보곤 했다. 내 제품이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일 때 그 짜릿함은 글로 표현하기 참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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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F(https://codef.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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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CODEF(https://codef.io/#/) 팀은 미션팀이다. 10명으로 구성된 CODEF 팀은 은행, 핀테크 기업, 공공 기관 등 다양한 기업 사이 데이터를 중계하는 역할을 한다. CODEF API를 활용하면 다른 기관과 제휴 없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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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F에서는 나를 방어할 필요도, 도망갈 구멍을 만들 필요도 없다. 제품을 이해하고, 각자 자신의 포지션을 이해하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면, 그저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으면 된다. CODEF 팀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각 포지션에서 역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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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팀은 가능하면 같은 장소에서 함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같은 장소에 있다는 것은 팀 구성원들이 바로 옆에 붙어 앉아서 일한다는 것이다. 같은 건물, 심지어 같은 층에 근무하는 것도 부족하다. 서로의 컴퓨터 화면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여야 한다. 같이 앉아서 일하고, 함께 점심을 먹고, 서로 개인적인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별한 역동성이 있다."
- 마티 케이건, ?『인스파이어드』? 중


원격 근무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불필요한 회의, 이동 시간 등을 확연히 줄일 수 있다는 것에 나 역시 매력을 느꼈다. IT 기자로 일할 땐 그 매력에 푹 빠졌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하지 못하는 많은 일이 있다. 굳이 만나서 할 필요가 없는 일도 있지만, 굳이 만나서 할 필요가 있는 일도 있다. CODEF는 매일 한 공간에서 일하고, 함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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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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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를 좋아한다. 작은 축구공 하나를 보고 22명이 그저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축구공이 가는 방향이 아닌 축구공이 갈 방향이 보이기 시작할 때 축구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닌,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보일 때 제품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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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고객을 위해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고객에게 가치를 주는 사람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가치가 생긴다. 좋은 소프트웨어 제품팀을 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품의 가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팀을 꾸리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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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용(글 쓰는 감성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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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했다. 도밍고컴퍼니를 창업해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 <도밍고뉴스>를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하는 기자, ‘개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백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따뜻한 커뮤니티 STEW>에서 함께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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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t.ly/stew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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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파이어드마티 케이건 저/황진수 역 | 제이펍
올바른 사람들과 역량을 통합하고, 올바른 제품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으며, 효과적이고 가벼운 프로세스를 포용한다. 독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고 자신이 속한 조직에 바로 활용하여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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