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책 버리기 -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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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회째를 맞이하는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12개 다른 국가의 작가들과 한국의 작가들, 그리고 독자가 문학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에세이를 통해, 행사의 분위기를 미리 만나보세요.
행사 일정 : 2019년 10월 5일 ~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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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평생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 이사를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책을 버리는 것이었다. 우리집에는 방 하나를 모두 채우고도 거실까지 반을 점령할 정도로 많은 책들이 있었고 그 넘쳐나는 수를 견디다 못해 서재의 문은 열어두지도 못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거나 책을 찾으러 들어가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거기에는 사뿐히 발을 디딜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사두고 싶은 책들은 출판되었고 더러는 선물을 받았고 심지어 나조차도 책을 냈기 때문에 나는 조만간 이 책들이 무성한 먼지숲을 이루어 나를 병들게 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이사를 결심했고 그러자면 이삿집 인부들이라면 질색을 하며 심지어 이사대금도 더 쳐서 받는 책을 처분해야 했다.


사십여 년을 살아온 도시를 떠나는 것과 오래도록 간직해온 책들을 처분해야 하는 것, 그 둘을 동시에 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름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나는 아침이 되면 의기양양하게 서재로 들어가 더이상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 책들을 처분하겠다고 호기를 부리다가도 책 한 권 한 권을 들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들, 실제 눈앞에 일어나는 것처럼 생생한 장면들에 녹다운이 되어 방을 나오곤 했다. 책은 단지 책이라는 상품이 아니라 내 삶이라는 것과 완전히 엉겨붙어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어느 장소에서 움직여 가져왔고 시간을 들여 읽었으며 그러는 동안 무수히 많은 일상들이 흘러갔다. 아이였던 내가 어른이 되고 그 책이 환기하는 누군가는 완전한 안식의 세계로 떠나기도 했으며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 잡혀 있던 나는 정말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적층된 것이 그 방의 책들이었고 방은 내가 평생 살아왔지만 이제 떠나게 될 그 도시에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뜯겨 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례로 한국의 대표적인 아동문학가인 이원수가 쓴 「가로등의 노래」가 있었다. 그 동화는 초등학생 때 일하러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외울 정도로 여러 번 읽은 것이었다. 물론 그때 책을 여태껏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 한국에서는 전집을 다 읽고 나면 또다른 전집류의 책으로 서적판매상이 교환해주기도 했기 때문에, 알뜰했던 부모는 그 이원수 동화전집을 한국사 전집인가 백과사전인가로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민중의 시각으로 어린이들의 세계를 재구성하여 가난과 불평등,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 일깨워주었던 이원수의 작품들은 한동안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가난이 부끄러운 아이와 그 부끄러움과 싸우는 아이, 일개미로 머물지 않고 버젓한 일가를 이루기 위해 탈주하는 개미들의 모험 이야기가 만들어주었던 그 감정과 사유의 지도들. 세세한 내용은 세월에 따라 휘발되었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지도는 아직도 내 안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이야기는 망각된 것이 아니라 교환된 것처럼 느껴졌다. 문자가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가 감정과 사유가 되고 그것이 레이어를 이루어 나를 구성해내는, 그렇게 해서 영속된 힘을 갖는 것.


「가로등의 노래」는 첫 직장을 다니던 이십 대 어느 날, 서울의 한 지하철역 무인문고에서 가져온 책이었다. 시에서는 시민들의 양심과 지성을 믿고 지하철역에 그런 장소를 마련해놓았는데 내가 그런 영예로운 시민이기를 거부한 셈이었다. 변명하자면 그 서고의 책들은 모두 몇 십년은 된 것들로 제대로 관리조차 되지 않는 듯했다. 아무도 거기에 그 위대한 책이, 한 어린아이의 고독과 상처를 보듬고 마음을 추스러 한 발 더 나아가게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그러니 내가 가져오는 것이 정당했다. 왜냐면 나는 그 책이 만들어준 세계에서 출발해 무인문고 앞의 그날에 당도한 사람이니까. 그 책의 가치는 내가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고, 바꿔 말하면 나라는 사람의 가치 역시 그 책이 증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최말단, 이미 사회에서 자리 잡아 능숙하고 안정감 있어 보이는 상사와 선배들 사이에서 어딘가 막막해하며 적응해 나가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책 한 권을 집어들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어느 시기로 회귀해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능률이 날 리가 없고 힘들지 않을 수 없는 작업이었다. 울지 않고 서재에서 나올 수 있는 날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삿짐 센터 직원은 견적을 내러 와서 책들을 보며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분이세요? 이 책들 다 가져가요?” 하고 물었고 나는 “그렇지 않아요!”라고 서둘러 답했다. “반 이상은 버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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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오고 나서 나는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혔다. 심지어 집 안에서도 최소한의 동선으로 방과 부엌 사이만 오갔다. 내가 평생을 살아온, 작품을 쓸 때마다 매번 중요한 장소가 되어주었던 그 도시에 관한 소식을 우연히 들을 때마다 상실감이 몰려왔다. 그럴 때는 결국 계획만큼 처분하지는 못한 책들이 나를 둘러싸면서 눈에 보이는 세계 이상의 것들이 있음을 여름 내내 환기켰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이야기를 쓰고 책이라는 것을 만들어 세상에 통용시키고 있다고. 심지어 최종적으로 이삿짐 트럭에 싣지 않고, 다감하게 헌책들을 옮겨담던 헌책방 주인을 통해 내 자신이 버리기를 선택한 책들조차도. 기꺼이 내 기억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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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성장했다.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 짧은 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가 있다. 2015년, 2017년 젊은작가상, 2016년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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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김금희 저 | 문학동네
우리가 삶을 살아내기 위해 묻어두어야만 했던 지난 시절의 상처를 골똘하게 바라보며 때때로 모질고 비겁해야 했던 우리의 흉한 일면, 삶의 부산물처럼 딸려오는 괴롭고 버거운 감정들을 되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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