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요즘엔 별 걸 다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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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작가 A씨는 지쳐 보였다. 그는 전날 밤늦게까지 방송 프로그램에서 혹사당하고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다음날 일찍 요조와 내가 진행하는 독서 팟캐스트에 출연하러 스튜디오에 온 참이었다. 녹음을 마치고는 얼른 다음 행사장으로 가야 했다. A씨 옆에서 출판사 마케터들이 부산하게 카메라 위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우리가 팟캐스트를 녹음하는 모습을 촬영해 홍보용 동영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A씨는 멍하니 마케터들을 바라보다가, 내게 이번 책을 내고 나서 만든 새로운 굿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그 굿즈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마케팅에 중요했다. 그는 설명을 마치며 이렇게 덧붙였다.


?“요즘엔 별 걸 다해야 돼요.”? 얼마 전부터 출판계 관계자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소리다. 작가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직원도 한숨을 쉬며 말한다. 요즘엔 정말, 별 걸 다해야 돼요. 나도 예외는 아니다. 데뷔하고 매년 책을 한 권 이상씩 냈는데 해마다 전에 못해본 마케팅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북콘서트, 북토크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게 2014년 즈음이다. 처음 그 단어를 들었을 때에는 ‘책으로 어떻게 콘서트를 연다는 거지? 다 같이 모여서 책을 읽는 건가?’ 하면서 궁금해 했다. 요즘은 독립출판물 저자들도 북토크를 한다. 몇 년 사이 형식이 진화해서 이제는 독자와 저녁식사를 하는 행사도 있고, 독자와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맥주를 마시는 행사에 나갈 때에는 건배사를 준비해 가야 한다.


다음에는 굿즈 열풍이 불었다. 굿즈를 샀더니 책이 따라왔다며 예쁜 굿즈를 찬양하는 이들을 보면 서운한 마음도 들지만, 그래도 내 입장에서 편하긴 하다. 딱히 내가 더 해야 할 일은 없으니까. 그에 비하면 예약 구매 독자를 위한 저자 친필 사인본을 만드는 일은 중노동이다. 한번 “500부 정도 괜찮으실까요?” 하는 출판사 요청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러죠, 뭐” 하고 받아들였다가 후회한 적이 있다. 글씨가 느린 편이다. 한 권을 사인하는데 1분씩 걸린다면 500부를 사인하는 데에는 8시간 20분이 걸린다. 파본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몇 부 더 작업해야 한다.


북토크, 굿즈에 이어 지금은 동영상 홍보 시대다. 처음에는 북트레일러라고 하더니, 요즘은 그냥 뭉뚱그려 ‘유튜브 콘텐츠’라고 부르는 것 같다. 최근에 연작소설 ?『산 자들』? 을 내고 나서는 그런 콘텐츠를 두 편 만들었다. 둘 다 영화사들이 만드는 홍보 영상을 흉내 냈다.


하나는 TMI 영상이다. 출판사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독자로부터 받은 사소한 질문을 봉투에 넣어 왔고, 내가 카메라 앞에서 그걸 하나씩 열어 보면서 재빨리 답하는 거다. ‘아이폰 쓰세요, 갤럭시 쓰세요?’ 같은 거. 또 하나는 자문자답 인터뷰다. 내가 서로 다른 옷을 입고 질문하는 영상과 답변하는 영상을 따로 촬영한 뒤 합쳐서 마치 내가 나를 인터뷰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공들여 준비해 왔을 편집자와 마케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기왕 찍는 거 웃으며 찍자는 생각으로 나도 아이디어를 보탰다. 마침 입고 간 옷이 마릴린 맨슨 티셔츠였으므로 질문자를 ‘맨슨장’이라는, 깐족대는 성격에 미스터 맨슨을 좋아하는 캐릭터로 꾸몄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어쩐지 몰입이 됐다. 그래서 내가 나보고 “대한민국 최고의 소설가!”라고 말하는 황당한 상황이 연출됐다. 너무 오버했나 싶어서 머쓱해져 있는데 편집자와 마케터는 재미있다며 좋아한다. 그래, 그러면 그냥 가지 뭐…… 어차피 망가지는 게 포인트인데.


영상을 본 이들이 저 자식 건방지네, 잘난 척 하네 하며 펼칠 뒷담화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들어서 억울한 반응은 오히려 이런 쪽이다. “작가님은 독자와의 소통을 위해 늘 겁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거 같아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는 아주 오래된 방식인 글자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데, 요즘 책이 하도 안 팔려서, 매번 책을 낼 때마다 출판사에서 “이런 거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아이디어를 가져 오십니다.


출판사들도 겁내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기보다는, 겁에 질려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듯하다. “이게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면 다들 “글쎄요, 저희도 처음 하는 거라서 잘……” 이라며 낯빛이 어두워진다. 새로운 도전에 의욕이 있는 젊은 직원들조차 이런 방식은 아닌 거 같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지금 유튜브로 잘 나가는 분들은 다 유튜브가 뜰지 안 뜰지도 모를 때 시작했던 사람들이잖아요. 이렇게 따라가기만 해서 뭐가 되겠어요.”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하는 푸념 아래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불안이 깔려 있다. 나도, 편집자도, 마케터도, 서점 관계자도 그렇다. 우리가 점점 책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존재론적 위기감. 애써 아닌 척 해봐도 콘텐츠와 책은 다른 거고, 크리에이터와 작가도 다른 거다. 책은 글자로 돼 있고, 작가는 글자로 작업한다. 책의 본질이 굿즈나 토크에 담길 리도 없다. 우린 다 책이 좋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사치스러운 투정인 걸 안다. 이런 마케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작가는 소수이고, 나는 행운아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요즘엔 별 걸 다 해야 돼요” 하고 웃기만 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혼자 바버라 애버크롬비의 ?『작가의 시작』? 을 읽는다. 지친 작가들을 위한 위로와 조언이 가득한 책이다.


따뜻한 격려를 이어가는 이 책에 뜬금없게도 ‘매춘’이라는 단어가 몇 번 나온다. 자기 책을 팔러 나서야 하는 작가의 처지를 빗댄 것. 맘씨 좋고 터프한 이모할머니가 “얼굴이 왜 그렇게 X구멍이 됐어? 밖에서 욕 봤어?” 하며 머리를 쥐어박고는 바로 안아주는 거 같다. 애버크롬비 여사가 왜 작가들의 멘토라 불리는지 궁금하시거나,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은 이 책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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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시작유도라 웰티 저/신지현 역 | xbooks
윌리엄 포크너, 테네시 윌리엄스와 함께 미국 남부문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으며, 퓰리처상, 오 헨리 문학상, 전미도서상 등 주요 문학상을 휩쓴 영미문학의 대표작가 유도라 웰티의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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