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건축가가 ‘집 수리업자’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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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의 삶이 담기는 공간이다. 사는 집의 구조, 크기, 실용성, 인테리어 등에 따라 우리의 심리도 생각도 삶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집도 나이가 들어 낡고 허름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삶의 공간을 수리하는 일은 대한민국처럼 끊임없이 재개발이 이어지는 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힘들다. 그러나 이대로 괜찮을까? 건축가 김재관이 잘나가는 건축가에서 ‘집 수리업자’로 전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쉼 없이 신축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닌, 시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집짓기. 건축가 김재관은 이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집수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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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 20년을 지내셨는데, 이제는 집 수리업자가 되셨어요. 전환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설계를 한다는 것은 종이 위에 집을 짓는 것으로 그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종이가 아닌 땅 위에 집을 짓고 싶어졌습니다. 집을 잘 아는(KNOW) 건축가나 잘 짓는(DO) 시공자가 아닌 그 모두를 할 수 있는(KNOW DO) 건축가가 되고 싶었는데 첫 번째 기회가 율리아네 집수리였습니다. 지금은 그 영역이 조금 더 확장되었고요.
영화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기획, 시나리오, 제작, 연출, 연기, 무대설계, 촬영, 배급을 혼자서 진행했던 어느 프로젝트처럼 저 역시 집을 설계하고 짓는 것뿐 아니라 지을 땅을 고르고, 투자자를 찾고, 설계하고, 집을 짓고, 사진 촬영을 하고, 그것을 매체에 발표하고, 집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브로슈어를 만들어 세일즈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다양한 직능에서 능력을 발휘함이 아니라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얻은 자산을 활용해 더 나은 건축을 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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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신축과 수리, 요즘은 리모델링이라고도 많이들 얘기하는데요. 새롭게 집을 짓는 것과 집을 고치는 것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신축 설계에서는 그 단서가 땅이고 수리에서는 집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연적, 인문적 원형이 변형된 곳이 많다 보니 신축 설계를 시작할 때 서사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전원주택을 짓겠다며 풍광이 수려한 곳을 찾아내고서는 막상 집을 지을 때는 터 주변의 나무를 베어내고, 바위를 부수고, 지형을 돋워 평지로 만든 후 축대를 쌓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결국 전원은 훼손되고 도시에서 있을 법한 집만 남게 됩니다.
신도시에 조성된 택지들도 그렇습니다. 땅의 원형을 잃은 채 바둑판같이 나뉘어 전신주와 맨홀이 설치된 공터들 말입니다. 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스템과 같은데요. 반면 수리는 기존의 집과 터로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오래된 감나무, 어느 목수가 만들었을 산자엮음과 대들보와 켜켜이 쌓인 먼지들, 당시의 건축적 문법들을 통해 새로운 서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원형이 살아 있는 땅을 만난다면 신축도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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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집수리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짧은 에피소드에서도 함께 일하는 분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데요. 현장에서 같이 일하기에 가장 좋은 동료의 요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에서 고른다면 예진이네 집수리에 등장하는 잡부 ‘한 씨’ 같은 사람입니다. 봉준호 감독에게 송강호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며칠씩 현장을 비워도, 물건값을 대신 치르게 해도, 옆집의 드센 아주머니를 대신 상대하게 해도, 도무지 접근이 되지 않는 틈바구니에서 숨은 물건을 찾아내게 해도, 동네 기술자들이 모두 포기한 부분이 있다 해도, 작은 공간이지만 타일, 방수, 조적, 전기, 미장 등이 모두 필요하지만 그들을 모두 동원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더라도, 목수가 몸이 아파 며칠 쉬더라도 ‘그’만 있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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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통솔하거나 지시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새로운 목수가 솜씨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란 말을 누군가를 통해서 하고 싶을 때, 목수와 상의해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분석한 후 그중에서 현재에 꼭 맞는 디테일을 선택하여 나에게 알려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을 때, 한 씨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깁니다. 나에게 한 씨는 봉준호의 송강호인 것은 맞지만 송강호 혼자로는 영화가 안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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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 끝난 집 이름을 OO동 단독주택이 아니라 '율리아네 집', '예진이네 집'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셨어요. 꼭 친구네 집 같은 느낌도 들고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인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고 그 집이 불리는 대표적 호칭이나, 듣는 사람이 연상을 할 수 있을 만한 상징어를 선택한 것입니다. 자녀 중 장남의 이름, 세례명이 되기도 하고 두꺼비집처럼 집의 처한 상황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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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예고편으로 넣은 두꺼비집의 변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두꺼비집’은 어둡고 낮게 웅크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웬만한 병원은 다 다녀온 환자 같았다는 게 제 첫인상입니다. 치료받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환자 같았습니다. 두꺼비집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집은 토굴처럼 어두웠기에 이 집의 빛과 바람을 수리하고자 했습니다. 이미 허물어져 쓸모없는 벽을 정리하고 새로운 벽을 세웠습니다.
수납 벽이 가리는 공간의 성격에 따라 불투명 또는 투명 유리를 끼워 넣어 천창을 통해 빛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또 천창 아래 공간을 내부 정원으로 만들어 밖에서 내려다볼 수 없는 환한 은둔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유적처럼 남기는 게 수리가 아닙니다. 실용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둡니다. 살릴 수 있는 것은 수리하면서 일단 살리지만, 기본적으로 수리는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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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는 것이라는 책을 여는 이야기와 최근의 ‘도시 재생’이나 ‘지속 가능함’에 대한 관심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수리로부터 이어지는 도시 재생에 대해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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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행되는 도시재생은 골목 포장. 화강석 깔기, 산책로에 방부목 깔기, 전신주 같은 도시 인프라나 도시 앵커 시설 같은 공공시설 만들기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도시는 인프라와 공공시설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집을 위한 보조적 시설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집은 도시재생에서 제외되는데, 사유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도시재생이 되려면 부동산 개념과 더불어 전문 디벨로퍼들이 해당 마을을 이해하고 장기간 연구한 결과가 해법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란 말을 탄생시킨 영국식 도시재생 혹은 재개발인데 우리나라에는 언어와 사례만 수입됐고 풍토에 대한 반영은 품목에서 빠졌습니다. 인프라와 집이 함께 수리되어야 하는데, 굳이 우선순위를 택하라면 집이 우선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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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새로운 집을 지으셨는데요. 이후 소장님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공장 속의 도서관, 한옥을 수리한 IT 회사, 낡은 아파트를 수리한 병원, 오랜 동네를 수리한 유닛형 학교와 기숙사, 빈 마을과 빈 집을 수리한 어린이 트래킹코스, 폐탄광을 수리해 만든 헬스클럽 같은 생소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마을 재생입니다. 다만 이것은 혼자의 힘이 아닌 새로운 유형의 팀이 만들어져야 하고 건축가는 그 일부를 맡아야 할 것인데요, 그 구성원은 부동산 디벨로퍼, 마을주민, 건축가, 공무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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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공인건축사로 1997년에 무회건축연구소를 설립하여 강정교회, 성만교회, 충신교회 등 열 개 남짓의 개신교회과 주거시설을 설계하여 한국건축문화대상, 경기도건축상을 수상했다. ‘서울 문화의 밤’ 행사 ‘일일 설계사무소’에서 만난 율리아의 집을 수리하면서 집 수리업자로 전향했다. 이후 10년간 율리아네, 재훈이네, 철민이네 집 등을 수리했고 예진이네 집수리로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근래에는 서울 구기동에 있는 두 채의 집을 수리하며 동네 수리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집수리도 이웃과 함께하면 이로움을 공유하고 해로움을 피할 수 있기에 이것이 확장될 때 도시 수리 혹은 도시 재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품은 이념은 격물치지(格物致知)다. 사물을 깊고 바르게 이해하면 할수록 궁극의 앎에 미칠 수 있다는 의미를 집수리에 투영해, 집의 낡음, 아름다움, 어둠, 작음, 좁음, 남루함을 유심히 살피고 해석하여 수리의 대상 속에 포함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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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수리 집수리김재관 저 | 문학동네
우쉼 없이 신축 건물을 지어나가는 일이 아닌, 시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집짓기. 즉, 김재관의 집수리는 집값과 유행에 따른 증축이나 리모델링과는 다른 개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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