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 기자 “런던 생활 1년 동안, 책 한 권 썼어요”
신문기자로 시작해 방송기자로 활동 영역을 넓힌 후 청와대 출입 기자로서 숨가쁘게 취재하고 기사를 쓰던 조민진 저자가 기자 생활 14년 만에 해외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런던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그녀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좋은 것들을 모아 더 행복해지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 그렇게 시작한 1년의 연수 기간 동안 저자는 온 하루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쓰면서 스스로의 삶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1년 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속에는 일상으로 파고든 그림과 미술관뿐 아니라 오페라하우스, 작은 독립서점들, 일요일의 꽃 시장, 소더비 경매 현장 등 런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장소들을 방문했던 날의 이야기도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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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의 첫 책 출간 소감과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는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책이든, 책 자체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직접 책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꿈꾸던 걸 하나 이뤘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책이라는 건 집필한 작가의 손을 떠나 시장에 나오는 순간 개별 독자들에 의해서 진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지금은 제 책이 읽는 이에게 즐거움으로든, 휴식으로든, 위로로든, 참고 자료로든 어떤 식으로든 나름의 의미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는 제목만 봐선 어떤 책인지 의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상파 화가 ‘모네’가 들어가니 그림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고, ‘런던’이라는 도시명을 보면서 런던에 관한 책인가 싶을 수도 있고, 특정 계절이 들어가다 보니 사계절 중 ‘겨울’에 집중한 책은 아닐까 궁금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책에는 모네의 그림도, 런던 풍경도, 런던의 겨울 날씨 이야기도 다 담겨 있기 때문에 모두 틀린 추측은 아니죠.?
하지만 저자로서는 무엇보다 마지막 말 ‘좋아했다는데’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좋아하는 것’, 혹은 ‘좋은 것’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좋아하는 그림, 기분 좋은 경험, 좋은 생각과 감정, 좋은 취향과 추억, 더 좋은 삶을 위한 꿈, 좋은 사람들, 좋은 도시 같은 것들이죠.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인생일 것이라는 믿음과 바람에서 쓰기를 결심한 책입니다.?
1년은 짧지 않은 시간인데요. 연수 장소로 ‘런던’을 선택하신 특별한 계기 혹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유럽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미국은 대학 때 어학연수를 잠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유럽 나라들은 특별히 시간을 내 여행하거나 거주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런 끌림도 취향일지 모르겠지만, 전 왠지 늘 동양보다는 서양 세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는 살아봤으니 유럽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그랬죠. 책에서도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파리에서 살기보다 런던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힌 건 제겐 프랑스어보다는 영어가 더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외국이어도 현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그곳의 ‘언어’에 보다 친근하다면 낯선 곳에서도 더 강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독립 서점들, BBC 프롬 공연, 미술관과 그림들… 정말 좋은 경험들을 많이 모아오셨는데요, 그중에서도 정말 특별히 소중하게 여겨지는 경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친구들과의 우정입니다! 이젠 런던에 있는 누군가도 아주 가끔은 우연히라도 절 떠올리거나 생각해줄 거란 사실에 참 벅찬 기분을 느껴요. 제가 서울에서도 문득문득 런던의 아파트 관리인이나 마트 점원의 얼굴을 떠올리고, 함께 와인을 마시며 얘기를 나눴던 친구들을 생각하고, 제게 그림과 운동을 가르쳐줬던 선생님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 도시의 이방인이었던 저를 이웃이나 친구로 대해줬던 런더너들에게 이젠 제가 ‘아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정겹습니다. 멀리 있어도 연결되어 살아가는 느낌이 소중하게 여겨지죠. 물론 내셔널갤러리의 드넓은 전시실을 정말 자주, 아주 한가로이 걸어 다녔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이자 추억입니다.?
런던에서 집을 구할 때 많은 도움을 준 부동산 직원 로지와 와인잔을 기울이던 한때?
기자님은 런던에서 그림을 직접 그리는 수업을 들을 정도로 미술에 애정을 갖고 계신데요,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미술이 주는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그림을 보면 ‘침묵으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참 고요한 가운데 메시지를 던지는 게 그림 같더라고요. ‘언제나 더 잘 말하고, 더 잘 쓸 수 있기를 꿈꾼다’고 제 소개를 썼을 만큼 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깊지만, 기자로서 끊임없이 소리와 활자에 부대끼면서 살아와서 그런지 쉬고 싶을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는 그저 이미지로 존재하는 그림을 찾게 되더라고요. 마냥 생각에 잠기거나 멍 때리고 싶을 때 말이에요.?
문자는 때때로 읽는 사람에게 특정 사실이나 의견을 강요하는 느낌을 줄 때도 있잖아요? 하지만 이미지는 훨씬 더 넓은 범위의 해석과 공감을 허용하죠. 같은 그림 앞에서 누구나, 혹은 언제나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 좋았어요. 보는 이에게 생각과 상상의 자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 시끄러운 세상에서 무언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것… 그런 게 바로 그림, 미술의 힘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아마도 대학 1학년 때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읽은 후로 그림과 미술 에세이가 보다 더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았던 런던의 미술관들
다녀오고 나서 스스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다듬어지는 존재라고 믿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성격이나 기호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거든요. 제 경우만 봐도 런던에서도 서울에서의 루틴을 대부분 지키면서 생활했으니까요. 다만, 런던에서 살기 전보다 돌아온 뒤에는 마음가짐이 좀 더 여유로워졌거나, 여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측면은 있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작은 일 하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일일이 혼자 다 처리해내야 했던 경험 때문일까요? 어차피 매사 마음 졸이고 발을 동동거려봐야 피할 수 없는 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그걸 인정하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죠. 지인들은 무엇보다 제가 런던에서 책을 탈고하고 왔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쓰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런던에 대해 알고 싶은 독자분들에게 팁을 준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런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런던은 그야말로 ‘다양성’ ‘다문화’가 녹아 있는 도시예요. 영국이 계급사회이긴 하지만, 런던만큼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하죠. 때문에 인종이나 언어,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우쭐해할 필요도, 기죽을 필요도 없죠. 저는 런던에 사는 동안 앙드레 모루아가 쓴 『영국사』 를 열심히 읽었어요. 런던뿐 아니라 영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줬습니다.?
기자에 ‘작가’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언제 어떤 기회가 올지, 또는 제게 주어질 어떤 다른 일들이 있을지 언제나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JTBC라는 조직이 제 일터인 만큼, 무엇보다 JTBC 기자로서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겠죠. 개인적으로는 기자 이상으로 방송에 대한 애착도 많습니다.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가 생애 첫 책이긴 하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되고 능력이 닿는 한 더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로 발전하고 싶다는 희망도 있어요. 내가 취재했지만, 내 얘기일 순 없는 ‘기사’와 순수하게 내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글’이 주는 쾌감에도 차이가 있더라고요.?
물론 제가 책을 쓸 수 있게 된 건 십수 년간 취재하고 기사를 써온 경험이 밑바탕이 됐음은 틀림없습니다.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는 강연을 통해 좋은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어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조금 더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걸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더 멋지고 보람된 삶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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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진?
JTBC 기자. 정치, 사회, 국제부 등을 두루 거치며 15년째 기자로 살고 있다. 2005년 문화일보에서 처음 시작해 2011년 JTBC에 개국 멤버로 합류했다.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 깊어 언제나 더 잘 말하고 더 잘 쓸 수 있기를 꿈꾼다. 책과 책이 있는 서점, 그림과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누구나 누군가에겐 정말 좋은 사람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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