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젊은 시인 서윤후, 화가 훈데르트바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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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함'을 사랑의 문법으로 삼는 서윤후 시인. 스무 살에 등단하여 10년 차 시인이 된 그가 두 번째 산문집 ?『햇빛세입자』? 를 썼다. 오스트리아 화가이자 건축가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을 매개로 삼아, 사랑과 우정, 시 쓰기에 대한 사유를 단정히 담았다. 한 아이가 문득 시를 썼던 첫 순간부터 시를 쓰고 말하는 것이 그저 즐겁기만 했던 시절, 시인이 되어 시를 쓰고 시를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까지, 시와 함께 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깊고 풍성하다. 시를 쓰며 살기를 꿈꾸고 시를 닮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서윤후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잠깐 귀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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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지구』 ? 이후 두 번째 산문집입니다. '훈데르트바서'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활자에잠긴시’ 시리즈 제안을 받고, 책 콘셉트에 맞게 1명의 예술가를 상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큰 고민 없이 훈데르트바서를 떠올렸어요. 어떤 고민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그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좋았고, 그 이유가 될 만한 나의 이야기에 대해 집중해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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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일주일을 보낼 때 처음으로 마주한 그는 사람이 아니라 건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다양한 얼굴을 쓰레기 소각장, 페인팅, 우표, 생활 등으로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순수함과 실천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요. 좋아하면 따라 하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을 빌려서 이 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그는 저의 많은 망설임을 지켜보고 있었고, 시를 비롯하여 제 생활 속에서 작고 사소하게 실천해나가는 것에 영향을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손차양이나 안경 같은 것을 빌려서 기나긴 햇빛 속을 지나가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걸어가 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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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시를 쓰며 자란 기억과 경험이 풍성하게 나옵니다. 시인님은 시에 마음을 빼앗긴 첫 장면이 기억나시나요?


그것은 시를 처음 쓴 계기와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방학 때마다 의무적으로 꾸렸던 독서 목록에는 언제나 시집이 몇 권 있었어요. 시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빨리 읽어 다 읽은 목록을 손쉽게 채울 수 있었으니까요. 시에 처음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렇게 읽던 시들 가운데, 시가 이래도 되나? 싶은 어떤 이상한 마음을 느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제 안에 시라는 형태가 굳어져 갈 때 그것을 산산조각 냈던 시 한 편을 읽은 다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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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매번 그렇게 다시 찾아오는 것 같아요. 이거 아니야, 하면서 제가 쌓아 올린 것들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리는. 제게 다가오는 그 무모함이 좋았고, 균열 속에서 저는 제가 몰랐던 것들을 많이 건져 올린 것 같아요. 사실 시에 대한 첫 순간, 첫 기억을 명료하게 가지고 있지 않아서 계속 시를 썼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정말로 좋아하면 그런 순간들은 안중에 없고, 자꾸 커지고만 싶구나, 부풀어 오르고만 싶구나, 하는 천진함을 시를 통해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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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쓰는 사람'이 될 때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시를 읽을 땐 다른 이의 세계를 빌려 제 안에 드리운 경치를 보다 투명하고 생경하게 보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 같아요. 밥 먹다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지만, 정확한 말을 고르지 못해 곱씹기만 하거나, 복잡한 감정을 서랍 정리하듯 하고 싶을 때, 아니면 지루하고 기나긴 삶을 어찌하지 못할 때 시를 읽으면 좋아요. 좋아지는 것 없이 나아지는 느낌을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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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일이란 그렇게 바라보게 된 저의 생태계 속으로 직접 나서는 일 같아요.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고요. 부러진 장작을 줍다 돌아오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비탈에 잘 앉아 생각만 하기도 하고, 무언가를 짓거나 혹은 다가올 기후를 감지하는 것 같아요. 시를 쓰면 그런 것들이 잠깐이나마 분명해지고, 저는 그다음으로 나서는 일에 힌트를 얻습니다.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요. 시만이 일으키는 이변이 있고, 그 이변을 즐기는 쪽이 되었습니다. 읽는 삶 없이는 쓰는 삶도 없었을 테니까 ‘잘 다녀갑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제 세계로 돌아옵니다. 손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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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동완 작가(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책을 만드셨어요. 국동완 작가의 그림이 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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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국동완 작가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예의상 작가님이 무슨 작업을 했었는지 검색해보던 때가 있었어요. 그중에 세월호 설계도 위에 그려나간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놀랐어요. 세월호 침몰 후 1년 6개월 동안 그린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는 이 매달림에서 많은 것을 더 알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러 작업들 모두 흥미로운 것이 많았고, 작업과 별개로 ‘국동완’이라는 작가에게 눈길을 돌리게 되었어요. 이건 제가 여행지 코스 중 하나로 넣었던 비엔나에서 훈데르트바서를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진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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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동완 작가님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볼 때와 하나하나 세밀하게 들여다볼 때의 느낌이 굉장히 다르거든요. 전체와 부분으로 디테일을 완성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그게 제가 제 삶을 다루기 위해 모색하는 방식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어요. 변화를 감지할 겨를도 없이, 작가님의 작품이 제 글에 자연스럽게 내려앉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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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세입자』? 를 쓰는 동안 갖추고 있었던 마음과 태도가 무엇인가요?


처음엔 훈데르트바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친구를 소개하듯 친절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내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훈데르트바서를 알아가게 되어도 좋겠다고 느꼈고요. 그러기 위해선 내게 어떤 이야기가 맺혀 있는지를 둘러보아야 했고, 물방울을 다루듯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내기로 마음먹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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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딸려 오는 조급함이나 불안함이 있었어요. 그것과 승부를 내기 위해서는 제 안에서 새로운 것을 꺼내와야만 했는데, 이번 산문집은 사실 그 싸움의 현장이기도 해요. 아무도 모르게 남겨진 싸움의 고요한 흔적들이 생활로 자리매김하고, 마음에 흉터를 짓고, 시와 생계를 양손에 쥔 채로 아슬아슬하게 수평대에 올라선 저의 이야기가 되었죠. 빠른 타임라인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시계와 달력이 가리킬 수 없는 시간에 남겨진 이야기. 아무도 모르게 뾰족이 자라나거나, 침잠해 가라앉는 것들을 꺼내올 수 있는 이야기.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를 두드려 만난다는 마음 하나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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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관심을 두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올해 초부터 ‘그만두길 잘한 것들의 목록’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목록의 이름만 번번이 되뇌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좋더라고요. 무언가를 하지 않는 일로부터, 비우는 일로부터 다시금 풍성함을 느끼는 것이 최근에 좋아졌어요. 저 스스로에게는 가혹해져야만 하는데 이십 대엔 하고 싶은 일들로 출렁이고 싶었다면, 삼십 대엔 그것들을 하나씩 꺼뜨리면서 일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충분하고, 아직 제게 많은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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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세입자』? 를 출간하고 난 뒤로는 ‘햇빛’이라는 단어에 눈동자를 켜게 되었어요. 나는 언제 햇빛을 마주했는지, 햇빛 좋은 장소를 어떤 노선도에 두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는 시간이요. 책에 깃든 햇빛은 은유적인 것이고, 원관념으로서의 저의 햇빛이 어디에 있는지 그 행방을 묻고 묘연해지는 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주 어두워지려고 할 때마다 햇빛이라는 단어를 켜 두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이 누군가의 어두운 책장에서 그랬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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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쓸 수 있을까,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망설이는 미래의 시인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은가요?


시와 손뼉을 부딪치고 있을 때부터 저는 시인이라고 생각해요. 누가 볼까 봐 두려워하면서 공책 맨 뒷장을 펼쳐 시를 썼던 어릴 때의 저는, 이제 어디서든 시를 쓰고 있다고 말하게 되었어요. 시는 제게 중심으로까지 커졌고요, 그사이에 정말 긴 시간이 흘렀죠. 시에게 서서히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망설임’은 당연히 아직 자리가 얼마 없는 곳에 시를 두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그 자리를 어떻게 넓혀갈 것인지에 대해 시로 하여금 계속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빨리 자리를 내어주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 시가 내디딜 수 있는 자리를 닫게 한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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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놓일 그 자리가 작고 단단한 삶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자기만의 규칙이 되기도 할 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시에서 들리는 것 같아요. 맑은소리, 둔탁한 소리, 청명한 소리 제각기 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삶에 시가 어떤 알람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면, 그 망설임에 시를 얹어놓고 천천히 자리를 내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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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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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1990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성장했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2009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과 『휴가저택』 이 있으며, 노키드 작가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만화 시편 『구체적 소년』과 산문집 『방과 후 지구』 『햇빛세입자』를 썼다. 제19회 〈박인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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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세입자서윤후 저/국동완 그림 | 알마
어릴 적 함께 살았던 외할머니를 언제나 첫 번째의 독자로 상정하고, 할머니와 함께 보낸 그 여름이 “나의 어딘가에 새겨져 무늬”가 되고 “나의 춥고 얼어붙어가는 무언가”를 녹여준다고 고백하는 시인이기에, 시인의 삶과 시와 훈데르트바서는 아름답게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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