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리 “타인의 시선을 벗고 나를 입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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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물건을 가진 삶이 멋있는 삶이다’라는 등식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규칙일지도 모른다. 최유리 저자 역시 이런 기준에 자신을 맞추며 살았다고 말한다. 타인의 기준을 내면화하고 한국 사회가 찍어준 정답에 맞춰 걸어온 삶.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던 저자는 박사학위를 받기 위한 마지막 논문의 관문을 앞두고 우울증을 앓았다. 정체성 혼란, 낮은 자존감으로 주저앉았다. 자살 충동이 왔을 때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로소 저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옷을 좋아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정체성 입기를 돕는 사람. 패션 힐러. 저자가 찾은 자기 자신이다. 저자는 “진정한 행복은 사회가 정해놓은 암묵적 약속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죄책감에 함몰되지 말고, 부디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최유리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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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샤넬백은 저자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말씀드리려니 새삼 부끄럽네요. 답답한 현실 속 저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요술 마차라고 믿었어요. 저는 10년 전 단골 쇼핑몰 사장님의 삶을 동경했습니다. 당시 제겐 패션이 쓸모없는 것이자 맘껏 좋아할 수도 없는 짝사랑의 대상이었어요. 그분에겐 패션이 돈을 버는 수단이자 당당히 누릴 수 있는 일상이었죠. 그분은 항상 사진 속에서 샤넬백을 메고 계셨는데 어느 날부터 저도 그걸 갖고 싶었어요. 그러면 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죠.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제 무의식에는 삶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가 늘 희미하게 존재했어요. 맘에 안 드는 부분을 알아내고 뭔가를 실행하기보단, 남의 인생을 부러워만 했죠. 그런 마음이 샤넬백에 대한 소유욕으로 드러났던 게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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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5년 전 우울증으로 힘겨워하던 시기에 친구가 책 쓰기를 권했습니다. 책까지는 모르겠고, 우울함은 떨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로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내 인생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앞으로 난 어떻게 살고 싶은 걸까?’ 질문하고 답하며 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갔죠. 또 저를 옭아매던 타인의 시선을 저만의 삐딱한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요. 그 과정이 정말 좋았습니다. 샤넬백을 가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어요. 샤넬백 갖기가 아니라 정체성 찾기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거죠. 혼자만 그 기쁨을 알기 아까워 블로그에 글을 공개했어요. 구독자들의 긴 댓글이 (원래 댓글 안 쓴다는 설명과 함께)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어요.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요. 그때 출간을 결심했습니다. 이 책이 타인의 시선에 괴로워하던 분, 자신을 믿기를 주저하는 분, 누군가의 샤넬백 앞에서 침묵하는 분들께 위로를 드렸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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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기도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런 기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나를 평가하는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을 고통스럽게 파고들수록, 남이 바라는 기준에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나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합니다. “너의 인생은 성공하지 못했어.”라는 말을 듣고 저는 일주일간 앓아누웠어요. 그리곤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정도로 타인의 인정을 바라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죠. 제가 남의 말에 휘둘릴수록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기가 힘듦을 깨달았어요. “그건 네 생각이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고 내뱉는 순간, 저의 말은 ‘공지’가 되었고 저는 저를 보호하는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라는 말은 같은 제목의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제가 자주 쓰던 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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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지금의 선택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2015년 가을, 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 ‘박사 논문 엎고, 스타일링 도와드려요!’라는 글을 올렸을 때였어요. 지금도 그럴 텐데 거긴 분위기가 꽤 살벌해요. 그런데 제가 스타일링을 돕겠다고 했을 때 적지 않은 분들이 제 스토리를 읽고 전문성도 커리어도 없는 저를 좋게 보시더라고요. 저를 만나러 오신 분들도 저의 용기에 대단한 지지를 보내주셨어요. 이유가 뭘까 늘 궁금했는데 최근 에리히 프롬의 『나는 무기력을 왜 되풀이하는가』? 를 읽으며 알게 됐어요. 매력의 원동력은 인간의 ‘자발성’이라고 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꿈꿨어요. 어쩌면 그런 힘을 갖고 싶어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게 아니었을까 해요. 그땐 정해진 틀에 따라 남이 만들어놓은 지식을 전해야 했어요. 내키지 않다 보니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진 못했죠. 이젠 그걸 다 버린, 제가 선택한 삶 그 자체가 제 콘텐츠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쳐요. 그럴 때 잘했다 느끼기도 하지만, 그저 감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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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중독, 명문대, 정체성 등 이 책이 담고 있는 에피소드는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 가지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그런 주제를 전하고 싶나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 현대사의 다양한 이슈를 담고 있지만 결국 포레스트 검프 개인의 스토리잖아요. 제 책도 최유리 개인의 스토리예요. 이 이야기는 원치 않는 길을 걷다 ‘이게 아닌데’ 방황하다 우여곡절 끝에 자기 길을 찾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 방황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된 소재가 쇼핑중독, 명문대, 샤넬백, 스드메, 데이트룩 등이죠. 정답을 요구하고, 그것에 맞지 않는 사람을 루저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체성 방황과 낮은 자존감 문제는 저만의 것이 아닐 거예요. 같은 고민으로 고군분투 중인 분들께 따뜻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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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을 것 같나요?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야기는 독자의 것이 되잖아요. 저는 독자들도 본인의 정체성 찾기를 시작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제 책은 ‘나를 만나는 글쓰기’의 결과물인데요, 독자들도 ‘나를 만나는 글쓰기’를 시도해 보시면 어떨까 해요. “최유리는 글을 쓰며 자신을 이렇게 만났군. 만약 내가 나를 찾는 과정을 글로 쓴다면 첫 글의 소재로 내 인생에서 어떤 에피소드를 선택하면 좋을까?”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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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찾으면 인생에서 무엇이 달라질까요?
제 경우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책임감입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선택을 했을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남 탓을 하거나 자포자기하게 돼요. 반면 정체성을 알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선택하게 되고, 그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려는 자세를 얻게 됩니다. 노력파가 아니었는데 노력을 좀 더 기울이고, 전략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 좀 더 전략적인 사고를 하게 됐죠. 자기 선택에 책임지고 싶으니까 조금 더 삶을 밀도 있게 산다고 할까요. 두 번째는 효율성입니다. 요즘처럼 무한대의 정보, 무한대의 선택지가 존재하면 더 결정을 못 내리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골라주길 기다리는 건 시간을 절약하고 실패를 피하고 싶어서죠. 자기 자신을 아는 작업에 시간이 걸릴 수는 있어요. 그러나 정체성을 찾고 나면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직관적이고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어요. 쇼핑에서도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고요, 관계나 일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는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는 행복입니다. 정체성을 알고 나서도 그렇지만, 그걸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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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할 때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니까 기분이 좋긴 한데, 한편으로 기분이 찝찝하더라고요. 작가님도 그런 감정을 느끼시나요?
물론이에요! 몇 년 전 옷장 정리를 할 때 특히 마음이 안 좋았죠. ‘분명 갖고 싶어서 샀는데 왜 결국 버리게 된 걸까?’, ‘내가 정말 원해서 산 건가?’ 구입 동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우리는 흔히 어떤 행동을 취하는 동기를 ‘남이 시켜서’와 ‘내가 원해서’ 정도로 구분하는데요, 심리학자들은 ‘내가 원해서’라도 ‘이유 없이 그것 자체가 좋아’와 ‘뭔가 다른 걸 얻기 위해 그걸 해야겠어’로 구분한다고 해요. 제 옷장에서 오래도록 남은 건 ‘아무도 몰라주는 물건이라도 그 물건이 나를 표현한 것 같아’라며 산 것이었고, 얼마 못 가 방치하게 된 건 ‘이걸 가지면 사람들이 나를 멋진 사람으로 보겠지?’라는 맘으로 산 거더라고요. 과거에 저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물건을 사면 쇼핑 실패를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국 쇼핑 실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건 제 정체성을 아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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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힐러는 스타일리스트와 어떻게 다른가요?
옷을 많이 사도 행복하지 않았던 저의 과거를 돌아보던 중, 제가 외양만 추구했음을 깨달았어요. 입었을 때 진짜 즐거운 옷은 겉보기에 괜찮기만 한 옷이 아니라, 입는 사람의 건강한 내면을 잘 표현한 옷이더라고요. 누군가의 옷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제대로 표현했을 때 그 사람에게선 행복한 기운, 즉 아우라가 풍겨져 나와요. ‘남이 뭐라고 하든 난 나를 사랑해’의 마음으로 사시는 분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로 입더라도 ‘와! 멋있다’라고 보게 되더라고요. 여섯 번째 에피소드 ‘놈코어는 단지 패션 트렌드가 아니다’를 쓰며 이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스타일링을 권하기 전 그분이 누구인지부터 파악해요. 그분이 행복하시길, 그리고 아우라를 누리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누군가의 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해요. 다만 저는 패션 힐러라는 이름으로 제가 내면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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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다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울린다는 건 외양의 측면이고, 좋아한다는 건 내면의 문제죠. 좋아하는 스타일이 외양과 조화를 이루지 않을 때 적지 않은 분들이 단념하시잖아요. 저는 외모와 좋아하는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는 대안은 존재한다고 믿어요. 최근에 영상 작업을 함께 했던 남성 분은 더블 브레스트 버튼과 피크 라펠이 있는 영국신사 스타일을 선호했어요. 맞춤 정장 샵에선 그분이 장신이 아니니 싱글 브레스트 재킷을 권했대요. 저는 그분이 ‘클래식한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클래식한 디자인의 서류가방 중에서 피크 라펠 처럼 사선으로 양 끝이 올라가는 디테일이 포함된 걸 권했죠. 그분은 수트를 입지 않고도 자신이 좋아하는 디테일을 취할 수 있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스타일에서 자신이 어떤 요소(날선 느낌, 부드러운 촉감, 자유로움 등)를 좋아하는지 곰곰히 분석해 보면 타협이 불가능하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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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의 가방 때문에 초라한 기분을 느끼는 여성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모든 사람은 내면에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이 없다며 찾을 생각도 하지 않으면 시선이 밖으로 향하고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게 됩니다.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 보세요.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어요. 나에게만 존재하는 내면의 가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빛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보일 거예요. 눈이 빛나는 사람은 비싼 가방이 없어도 빛이 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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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엔 모범생의 삶을, 20대엔 일류대 학생 및 고등학교 교사의 삶을 살았으며, 30대엔 학자의 길을 걸었지만 진짜 꿈은 옷 잘 입는 사람이었다. 30대 후반 박사 논문의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우울증이 왔다. 잠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살기 위해 글을 썼다. 정체성 혼란, 낮은 자존감, 쇼핑 중독을 돌아보다 나를 만났다. 옷을 좋아하는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됐다. 그러자 성공을 향해 달릴 것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나뿐이 아님이 보였다. 박사 대신 작가가 되기로 했다. 현재 브런치, 유튜브, DIA TV, 백화점과 기업에서 ‘정체성을 입으면 행복하다’, ‘정체성을 스타일리시하게 입으면 멋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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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백을 버린 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최유리 저 | 흐름출판
“진정한 행복은 사회가 정해놓은 암묵적 약속에 순응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라고 말한다. “나를 찾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죄책감에 함몰되지 말고, 부디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용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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