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전고운의 부귀영화] 나 하나 방 하나

1화 그림_나 하나 방 하나.jpg

일러스트_ 이홍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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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집주인이 집을 나가라고 했다. 그 한마디는 다람쥐처럼 밥 먹고 기분이 좋아져 서촌을 돌아다니던 우리 부부를 한 순간에 길바닥에 앉혔다.


‘아, 내가 너무 노니까 꼴 보기 싫어서 신이 나를 내쫓는구나. 신이 내 팬이구나. 내 글을 너무 기다리는 거였구나. 이 사생팬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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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편을 만나, 둘이 같이 살 집을 구하고 <소공녀>라는 작품을 썼다. 아마 우리가 대출만 됐어도 그 작품을 안 썼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니 대출이 안 됐던 것은 행운이었다. <소공녀>를 쓰고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지금 살고 있는 두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 집에서 우리는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큰 두 가지는 이사 후 싸움을 거의 안 했고, 둘 다 첫 장편 영화를 개봉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집에서 살 때, 우리는 정말 많이 싸웠다. 북촌에 있는 상가 주택의 투 룸이었는데, 동네도 좋았고, 집도 예뻤다. 하지만 엄마 눈에는 안 예뻤던지, 상견례를 하러 올라 왔을 때, 그 집을 보고 나서 들어간 커피숍에서 닭똥이 아니라 개똥만한 눈물을 쏟았다. 늘 밝고 명랑한 엄마가 내가 구한 귀여운 집을 보고 나처럼 좋아할 줄 알았는데, 펑펑 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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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울진에서 나고 자랐고, 본인은 정말 단칸방에서 신혼집을 꾸려놓고서는 방이 버젓이 두 개나 되는 나의 신혼집을 보고 왜 그렇게 우는지 이해가 안 됐다. 물론 딸은 귀하게 키워야 팔자가 귀해진다는 철학으로 나를 항상 신축 오피스텔, 신축 아파트에 모셔두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거 내가 모르는 바 아니고, 엄마가 그렇게 좋은 집에 나를 모셔둔 덕분에 쉬지 않고 신나게 연애를 많이 했으니,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를 키운 건 부모님과 연애다. 그 연애의 종잣돈도 부모님이 마련해준 셈이니까 부모님이 다 키운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엄마가 그런 데서 키웠으니, 그 이상의 집에서 결혼 생활을 바란 것도 합리적인 욕망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엄마를 울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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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서 우리는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는데, 말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속담을 눈으로 목격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이 대문으로 저벅저벅 들어오는 것도 봤고, 이가 다 빠진 사랑이 치사하게 창문으로 도망치는 것도 봤다. 그런 혹한기를 보내고 복층 구조의 방이 세 개인 이 집에 왔을 때,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싸우지 않고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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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이게 다 방 한 개의 차이인 것이다. 방 한 개가 있고 없고는 생활의 질 뿐만 아니라 이혼을 하냐 마냐의 문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은 종이 한 장의 차이가 아니라 방 하나의 차이란 말이다. 자신만의 방이 있는 자만이 자비로울 수 있고, 아마 멋있는 인간은 다 내 방이 있을 것이며, 더 멋있는 인간은 방이 엄청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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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갑작스러운 이사 소식을 전하며 ‘내가 얼마나 이 집을 사랑했는데’ 라고 말하니 엄마가 그랬다.


‘남의 집은 사랑하는 게 아니다’


엄마는 천재다. 천재 중에 최고는 연륜 천재인 것이다.


이제 사랑 타령 그만 하고, 집을 구해야지. 사생팬을 위해 시나리오도 써야지.


집도 글도 다 말아먹을 것 같지만, 내가 다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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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인기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바람이 하도 불어대니까 인기가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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