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장혜진 “한국이 싫어서 떠나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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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여론이 이민을 부추기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옆집 누군가가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한 번쯤 이민에 대해서 궁금해진다. 그들은 왜 떠났을까, 떠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곳에서 행복할까.


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이민 가면 행복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에는 이민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10편이 실려있다. 이는 결국 우리 이야기다. 유학, 이민 수속 대행 업무를 20여 년간 했던 장혜진 작가는 2001년 이민을 떠나 한국과 캐나다를 수차례 오갔고, 얼마 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자칭 국제 떠돌이다. 그가 보고 듣고 만난 사람의 에피소드가 독자를 웃기고, 울린다. 어느 날 문득 한국이 떠나고 싶어진다면, 장혜진 저자가 말하는 이민 생활의 진실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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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작가는 1969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30대 중반이던 남편과 어린 딸들과 함께 2000년대 초 캐나다로 이민하여 그때부터 이민과 유학 수속 대행업을 하셨지요. 처음 이민을 가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남편이 먼저 ‘이민병’에 걸려 나를 설득하더군요. 유학파들이 좋은 대우를 받던 시절이었으니 외국에서 공부한 동료들이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데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술렁거리고 환율이 치솟을 때라서 유학은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캐나다 이민을 선택했습니다. 캐나다는 이민자에게도 많은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나라입니다. 적은 돈으로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허울 좋은 대기업에서 부조리를 경험한 남편이 그곳을 떠나고 싶어서 찾은 가장 그럴듯한 핑계가 유학을 가장한 이민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외환 위기와 맞물려 많은 사람들이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떠나는 사람들은 비슷한 이유로 떠납니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계획보다 더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생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2007년에 귀국해서 한국에 정착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낸 아이들이 한국의 학교를 버거워한 탓에 2014년도에 남편만 한국에 두고 다시 캐나다로 가서 살았습니다. 만 5년 만에 저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남편 곁에 머물고 있고 큰 아이는 영국에, 작은 아이는 캐나다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 또 어디로 가서 살게 될지 모르는 국제 떠돌이 이산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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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유학 수속 대행업을 하신지 20여 년이 되어가는데, 이제야 이야기를 쓰신 계기가 있나요?


2000년대 초반에 유학 수속 대행업을 시작했는데, 그때는 남의 삶을 들여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별 관심도 없었습니다. 2007년 한국에 돌아와서 이민 대행업체에서 일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민을 가고 싶어 하더군요. 이민 수속은 아무리 빨라도 1년 이상 걸립니다. 피치 못하게 고객과 여러 차례 만나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됐습니다.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의 기대와 제가 캐나다에 살면서 경험한 것과 괴리가 크다는 것을 알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밥벌이 수단으로 일을 하다 보니 고객에게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도 떠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끄적이기는 했지만 진솔한 이야기를 쓸 수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2014년에 다시 캐나다에 가서 살면서 많은 이민자를 만나고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고객이자 이웃인 이민자들과 아픔과 기쁨을 나누며 함께 살았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느긋하게 들을 줄 아는 내공도 생겼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인생 속에 숨어 있는 남다른 삶의 모습이 때로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글로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부터 몰입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20여 년간 고단한 이민자로 떠돌면서 이민 수속 대행을 업으로 삼고 살다 보니 쌓아두었던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나왔고, 이제야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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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다양한 캐나다 이민자의 사연이 등장합니다. 각 에피소드를 골라내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과 인물을 기억해 내 ‘일단’ 썼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각색하고 재미를 더하는 작업에 공을 들였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는 에피소드는 걸러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법한 이야기도 제외했습니다. 더 다듬어서 장편으로 각색하고 싶은 욕심에 컴퓨터 파일로 고이 모셔둔 이야기도 있습니다. 1차로 제가 골라서 보낸 에피소드 중 몇 편은 에디터 손에서 다시 걸러졌습니다. 에디터와 출판사 입장에서는 ‘상품 가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이번 책에 소개되지 못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선별하느라 고심했지만 책에 실린 글도 여전히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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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대상 수상자들과 함께. 가운데가 장혜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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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사연을 재미있게 각색해서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게 취미라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몇 개월 동안 글을 쓰시면서 각색하는 동안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셨나요?


첫째는 재미입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무리 좋아도 재미가 없다면 많이 읽히지 않을 테니까요.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단편 소설 분량입니다. 디테일을 가미해서 중, 장편으로 엮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 일단 단편으로 내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어떻게 하면 책 속 주인공의 사적 영역을 보호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쓰다 보니 윤리적인 중압감이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각색했습니다. 사건과 인물은 완전히 다르게, 아무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눈치챌 수 없게, 심지어 주인공도 자기가 이야기 속의 인물인지 모를 만큼 각색을 했습니다. 『이민 가면 행복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는 실제 사건으로 바탕으로 쓴 글이지만 실존 인물은 찾을 수 없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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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면 행복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가 이민을 다룬 다른 책과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이민 대행업체에서 홍보용으로 쓰는 글은 블로그나 온라인 카페에 많습니다. 이민법에 대한 설명은 대행업체에 가서 상담을 받는 게 정확합니다. 이 글을 읽고 저에게 이민 상담을 요청하는 독자가 없길 바라면서 썼습니다. 이민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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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나요?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제목만 보면 이민을 계획하는 사람을 타깃으로 쓴 것 같지만 오히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읽고 위로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큽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떠나고 싶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 떠나지 않을 이유를 찾는 사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 누구나 한 번쯤 읽어 보길 권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민을 부추기거나 떠나지 말라고 붙잡기 위해서 쓴 글도 아닙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말려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떠날 이유가 분명한 사람도 망설이기만 하다가 주저앉기도 하니까요.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이민 간 사람도 사정이 생기면 돌아오더군요. 결국 판단은 본인이 하는 것이고 인생이 내 고집과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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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헬조선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이 책의 작가로서, 실제로 관련 업계에서 일해온 사람으로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 내용 중 토론토에서 쿠바로 탈출을 감행한 여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4장 ‘파랑새 루시 이야기’) 그처럼 떠날 이유가 확실하다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떠나는 것도 괜찮습니다. 평생 망설이다가 더 나이가 들어 후회를 하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많은 정보를 얻어 철저히 준비하고 떠난다고 해도 에피소드 속 주인공처럼 예상치 못한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을 얘기할 때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민도 비슷합니다. 누군가는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후회할 겨를도 없이 체념하고 살기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속에 단단히 새겨야 할 각오가 하나 있는데, ‘이민을 가고자 한다면 나부터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민은 사는 장소만 바꾸는 게 아닙니다. 문화와 환경이 바뀌고 언어도 배워야 합니다. 생각도 습관도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처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민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준비가 됐다면 도전해보세요. 응원합니다. 저도 떠돌이 삶이 고단하다며 앓는 소리를 하지만 되돌아보면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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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다음에는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우연히 방문한 곳에서 만난 흥미로운 인물과 에피소드를 어떻게 각색해서 소개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살 여행’을 떠난 명문대학교 학생이 하필이면 제가 일 때문에 찾았던 미국 동부 작은 마을의 허름한 모텔에 묵고 있더군요. 어쩌다 보니 그와 같이 모텔 조식을 먹고 차를 빌려 여행도 다녔습니다. 그의 시선을 따라서 세상을 봤습니다. 언젠가는 꼭 그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글 쓰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팔지 않고 앞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와 가족 이야기도 언젠가는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노트북 파일 속에 묵혀있는 이야기 중 이번 책에 소개하지 못한 글을 재미있게 다듬어서 내놓는 것도 계획 중 하나입니다. 기회가 되는 한 제가 보고 들은 것을 많은 분께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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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진


1969년 충남 보령 태생.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마을에서 태어나 사춘기 시절까지 대도시를 구경해본 적 없는 시골뜨기였다. 자라면서 한 번도 외국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면서 방랑자처럼 살고 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이민, 유학 수속 대행업을 하면서 타인의 삶과 진로에 관여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정작 내 인생을 마음대로 설계하고 추진하기는 쉽지 않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겨를 없이 길이 열리는 쪽으로 가다 보니 나이 50에 신인 작가로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생의 우여곡절이 나의 재산이다. 백인이 주류인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소수자, 약자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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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면 행복하냐고 묻는 당신에게 장혜진 저 | REFERENCE by B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글감으로 삼아 번다한 이민 준비 과정을 시시콜콜 밝히는 한편, 에피소드 이면에서 마주한 그림자를 사유하며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심심한 진실을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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