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방송 리뷰] tvN 스토리 ‘벌거벗은 한국사’ 장녹수 편 시청 후기 “역사는 되풀이된다”

[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지난 23일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tvN 스토리 역사강연 <벌거벗은한국사> 70 '폭군을 홀린 기생, 장녹수는 어떻게 연산군을 치마폭에 넣었나' 편을 보다가 느낀 소감이다.



출처 : tvN 스토리


 

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 연산군의 폭정에 대해 배우긴 했어도 장녹수와의 세세한 일화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TV를 보는 내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프로에 대한 방송 리뷰를써보기로 한 건 다시 한번 되짚어보기 위함이다.

 

장녹수는 누굴까? 그녀는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후궁이자 악녀의 대명사로도불린다. 비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왕의 여자가 되어 막강한 권력을 누린조선판 신데렐라라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장녹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의 스토리와 달리 비극으로생을 마감한다.

 

지금부터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소개된 장녹수에 대해 알아보자. 장녹수는문의현 현령을 지낸 장한필이라는 양반가 출신의 아버지와 천첩으로 관비를 지낸 천민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분은 노비다. 조선시대에는 일천즉천이라는 원칙에 따라 부모 중 한쪽이라도 신분이 천하면 천민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연산군 일기에는 장녹수를 제안대군(조선 8대왕의 아들)의 가비(사노비)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장녹수는 집이 가난해서 몸을 팔아 생활을 했고 시집을 여러 번 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제안대군의 남자 노비와 결혼하면서 왕족의 집에 흘러 들어오게 됐고 그럼에도 먹고 살기가 빠듯해 노래와 춤을배워 기생의 길을 선택했다.

 

그녀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가무 실력이 출중하다는소문이 퍼져 제안대군의 집에서 종종 열린 연회에 나가 왕족과 양반들 앞에서 재주와 미모를 선보였다고 한다. 실록에는장녹수의 노래 실력이 매우 뛰어나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 들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출처 : tvN 스토리

 

 

연산군은 조선 팔도의 미녀들을 색출하여 왕실 기생으로 삼아 음주와 가무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가무 기생들을 가리켜 운평(運平)이라고칭했고, 이들중 실력이 더 뛰어난 이들을 선별한 것이 흥청(興淸)이었다. 연산군이 나라를 돌보지 않고 기생들(흥청)을 끼고 노는 것만 즐기는 것을 백성들이 한탄한 데서 비롯한말이 바로 '흥청망청(興淸亡淸)'의 어원이라고 한다.

 

장녹수 역시 미모와 재주가 뛰어나 흥청으로 발탁되어 궁궐로 들어가게 된다. 연산군에게장녹수가 눈에 띈 것은 어쩌면 숙명인 듯하다. 연산군은 시를 좋아해서 자신이 쓴 글을 모아 시집을 내고, 가면을 쓰고 처용무를 추는데 능했을 만큼 예술적 감수성이 뛰어났던 인물로 평가 받는다. 그만큼 예술적인 공감대가 있었던 장녹수에게 더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당시연산군은 26세였고, 장녹수는 30세였지만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고 전한다.

 

연산군을 만나면서 장녹수는 인생을 뒤바꾸는 기회를 갖게 된다. 연산군은장녹수가 입궁한 해에 정식 후궁인 종4품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기생 출신이 후궁이 된 것은 장녹수가전후무후한 사례였다..

 

연산군 일기는 '남모르는 교사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장녹수를 묘사한다.  또 장녹수는 놀랍게도 '왕을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고 적고 있다. 연산군과 장녹수의 사고방식이나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왕과 후궁의 관계와는 많이 달랐다.

 

출처 : tvN 스토리

 

 

벌거벗은 역사에서는 당시 연산군의 심리 상태를 정신의학적으로 '애정결핍'의 증상이 강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산군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부재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가 깊었고, 유일하게 자신을 왕이 아니라 연인처럼 혹은 아들처럼 격의없이 대하는장녹수의 모습에서 '모성애'의 대리만족을 느꼈을 가능성이높았다는 것이다. 장녹수는 이러한 연산군의 애정결핍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용했다.

 

연산군은 장녹수를 위해 각종 특혜를 제공한다. 장녹수가 궁궐에 거주하고있었음에도 굳이 그녀의 사가 인근의 집들을 강제로 허물고 집을 넓혀줄 것을 지시했고 비천한 노비 신분이던 장녹수의 측근과 가족들에게 조선의 국법을무시하고 관직을 하사하기도 했다. 조정 신하들이 반대의견을 밝힐 때마다 연산군은 이를 '능상(凌上. 윗사람을능멸한다)'으로 규정하며 철저히 억눌렀다.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장녹수의 행동도 갈수록 더욱 대담해졌다. 장녹수는연산군이 하사한 집과 재물외에도, 국가무역에 개입하여 관선을 이용하여 세금을 가로채 재산을 불리기도했다. 당시 장녹수가 착복한 쌀의 양은 약 7천석으로 이는조선의 관청들이 사용하는 일년치 예산의 약 7%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였다.

 

장녹수의 표독함은 '벽서 사건'에서명백하게 드러난다. 벽서의 내용은 연산군의 폭정을 비판하고 왕실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폭로한 것이었는데벽서 사건의 범인으로 연산군을 모시던 수근비와 전향이라는 두 궁녀가 지목된다. 질투심에 장녹수를 헤치려고벽서를 붙였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연산군은 두 궁녀와 부모형제들까지 모두 처형시켰다. 하지만 연산군 일기는 '두 사람은 모습이 고와서 녹수가 마음으로시기하여 밤낮으로 참소하였다며 그 배후에 장녹수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죄없는 두 궁녀를 벽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인물도 장녹수였던 것이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교수는 장녹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잃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권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일부로 벽서 사건을 조작하여 두 궁녀를 음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장녹수가 조선의 양반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이병정 사건'도 등장한다. 당시 종2품고위관료였던 이병정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강아지라는 이름을 지닌 장녹수의 여노비와 시비가 붙었는데 "내가부리는 사람을 모욕하는 것은 나를 모욕하는 것과 같다"고 분노한 장녹수는 연산군에게 고하여오히려 죄없는 이병정을 체포하게 한다.

 

이병정은 결국 가산을 모두 털어 장녹수에게 뇌물을 바치고 나서야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장녹수는 이병정을 풀어주면서도 "네가 지금은 비록 방면되었지만, 내가 다시 한마디만 하면 죽게 하기가 어찌 어렵겠는가"라는섬뜩한 경고를 남겼다고 한다.

 

출처 : tvN 스토리

 

 

장녹수는 연산군의 엽색행각을 돕기도 했다. 조정에서 부부동반 연회가열릴 때마다 연산군은 신하들의 아내 중 미모가 뛰어난 여성을 골라 자신의 하룻밤 상대로 지목했다고 하는데 장녹수는 부인의 머리단장이 잘못되었다는핑계로 연회장 밖으로 불러내 연산군이 기다리고 있던 은밀한 방으로 데려갔다고 한다. 장녹수가 진정으로원했던 것이 연산군의 사랑보다 '권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대부 아내들은 연산군의 지목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장녹수에게 뇌물을 가져다 바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505 11월에는 옥지화라는이름의 운평이 장녹수의 치마를 밟았다는 이유로 참수형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장녹수는 평소에 옥지화를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고 사소한 잘못을 이유로 연산군에게 참소했다. 연산군은 '능상의 죄'를 적용하여 옥지화를 처형하고 심지어 잘린 머리를 흥청과운평들에게 돌려보게 하여 경계로 삼게 했다고 한다. 연산군이 장녹수를 사실상 국왕인 자신과 동일시했음을보여주는 대목이다.

 

1506 9 2, 마침내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난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왕족이 아닌 신료들이 반란을 일으켜연산군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정권을 세운 최초의 사례다. 모두가 연산군을 버리고 도망쳤던 순간, 장녹수는 놀랍게도 연산군의 곁을 지키고 있다가 함께 체포된다. 연산군은강화도로 유배보내고 장녹수는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참수형을 당했다.

 

처형 후 길바닥에 버려진 장녹수의 시신에는 백성들의 돌팔매질이 쏟아져 돌무더기가 시신 위에 가득 쌓일 정도였다고한다. 장녹수를 바라보는 세간의 여론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장녹수가 권력이 아닌 왕의 총애만으로 살았다면 어땠을까? '왕의 여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은 뒤로한 채 사리사욕만 채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다.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 국정농단 사태를 겪었다. 비선이 실세가 되어나라를 망쳤던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다. 주변의 소리는 듣지 않고 권력에만 눈이 멀어 그릇된 정치를 하면 그끝은 뻔하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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