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책읽아웃] 지나칠 것들을 눈여겨보는 마음 (G. 윤가은 감독, 김혼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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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방송 인터뷰 - 윤가은 감독, 김혼비 작가 편>

오은 : 공개 방송 1부에서 저희가 좋아하는 두 작가님을 모시고 다정함에 대해, 그리고 '호불호'가 아닌 '호호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창작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두 작가님과 함께 TMI 토크를 진행해보려고 하는데요. 윤가은 감독님에 대한 TMI입니다. 사실 윤가은 감독님은 영화 <우리집>에 나오는 ‘하나’처럼 초등학생 시절에 ‘착한 어린이 상’을 받곤 하던 어린이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윤가은 : 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에요.(웃음) 제 영화 속에 등장한 주인공은 실제로 봉사 정신도 좀 특출하고, 시선이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 좀 많이 향하는 친구라, 주변 친구들을 많이 도와줬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상을 받도록 했는데요. 제 경우는 조금 달라요. 실제로 착한 어린이상을 한동안 좀 받긴 했는데요. 그때는 이런 식이었어요. 선생님이 “착한 어린이상 줘야 하는데 누구 줄까?” 이런 식으로 물어보면 그제야 우리 반에 저런 애가 있었네, 하는 식의 지목을 받아서 상을 받는 거죠. 저는 정말 존재감이 없는, 그리고 말주변도 없어서 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였거든요. 

황정은 : 김혼비 작가님의 TMI는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김혼비 작가님은 글을 쓰실 때 집에 향수를 뿌리신다고 해요. 제일 좋아하는 향수를 공기 중에 뿌리고 작업을 하신다고 하는데요. 왜 그런 작업을 하시는지, 어떤 향수인지 이야기 부탁드릴게요. 

김혼비 : 글을 유난법석을 떨면서 쓰는 편이에요.(웃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놔야 글을 좀 즐겁게 쓸 수 있는 거죠. 저는 글을 몰아서 쓰는데요. 특히, 책 마감을 할 때는 한 달이나 두 달 동안 약속을 전혀 안 잡고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글만 써요. 그때가 제가 유일하게 네일아트를 하는 때기도 한데요. 혼자서 모니터를 하는데 손이라도 좀 블링블링하면 재미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네일아트를 한 걸 본 외부 사람들은 거의 없고요. 향수도 밖에 나갈 때는 가끔 잊어버리고 안 뿌리기도 하는데 글을 쓸 때는 향도 좋았으면 해서 뿌려요. 또, 옷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갖춰서 입고 써요. 글을 쓸 때가 제 모든 것들에 약간 완벽을 기하는 때인 것 같아요. 

오은 : 저희 네 명 모두 쓴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저는 시를 쓰고, 황정은 작가님은 주로 소설을 쓰시고, 김혼비 작가님은 에세이를, 그리고 윤가은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쓰시잖아요. 각자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이 모여 있으니, 왠지 창작하는 일에 괴로움과 외로움과 놀라움이 더 많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윤가은 감독님께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감독님에게 시나리오를 쓰는 일,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어떤 어려움과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윤가은 : 사실 영화에서의 시나리오라는 건 어떤 완성된 형태가 나오기 힘든 것 같아요. 끝없이, 촬영 중에도, 심지어 촬영 후 편집하는 기간에도 계속 고쳐야 하는 게 시나리오 같고요. 항상 미완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설계도 차원의 것이어서요.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의 어떤 고통과 괴로움은 있지만, 그것을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같이 하는 사람들이 구체화시켜주고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너무나 놀라운 과정이에요. 제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가 꼭 같이 있어야 영화는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과 같이하는 작업이 아주 좋기도 하고, 또 아주 힘든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함께 어떤 작품의 생사를 나누는 그런 경험을 계속하게 되는 거죠. 

오은 : 같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력도, 어려움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소설은 혼자 어떤 이야기를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작업이잖아요. 황정은 작가님은 어떠신가요? 외롭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유로울 것 같기도 하거든요. 

황정은 : 생각보다는 덜 외롭고, 생각보다 덜 자유로운 작업인 것 같아요. 저는 소설을 쓸 때 말을 되게 곱씹어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 말들을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외로움이라는 걸 느낄 틈이 별로 없는 것이기도 하고요. 또, 말을 생각하는 과정이 저한테는 사람을 계속 생각하는 일이라 그렇게 많이 외롭지는 않습니다. 저한테는 그래요. 오은 작가님은 어떠세요? 

오은 : 소설, 특히 장편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긴 분량이고, 시나리오도 장편 영화라면 길겠죠. 한편, 시는 아무리 길어도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으니까 약간 자유로운 면이 있어요. 뭐냐면 실패해도 좋다, 예요. 오늘 이 시를 완성하지 못해도 좋고, 이 시가 내가 쓰고자 하는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 있어도 좋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요즘은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백지와 좀 홀가분하게 지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김혼비 작가님께는 에세이만의 매력을 여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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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소감』의 ‘마트에서 비로소’ 같은 글을 보면 어떻게 김솔통 같은 것으로 글을 쓸 수 있지, 생각하게 되죠. 엄청난 거예요. 이것을 지나치지 않고 들여다봤기 때문에 그게 글감이 되고 멋진 글로 태어날 수 있었잖아요. 에세이만의 매력이 정말 오롯이 느껴지는 게 김혼비의 글이거든요. 

김혼비 : 사실 이 질문은 제가 여기 다른 분들께 드리고 싶은 질문이기도 해요. 윤가은 감독님은 시나리오, 황정은 작가님 소설, 오은 시인님은 시, 이렇게 나눴지만, 사실 세 분 다 에세이를 쓰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에세이만 쓰는 사람이고 소설이나 시를 써본 적이 없어서 다른 장르와 비교했을 때 에세이만의 매력이 뭔지는 제일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에세이라는 장르가 너무나 삶과 딱 붙어 있는 장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세이는 숨을 데가 없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다가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잖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죠. 이것이 에세이의 매력이기도 하고, 어떤 압박이기도 해요. 이런 생각을 한다고 제가 진짜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무언가 스스로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자극을 주는 것이 있다는 것은 없는 거보다 나은 것 같아요.

오은 : 윤가은 감독님의 영화 <우리들>이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해요. 그냥 지나칠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누구나 들여다보려고 애쓰지는 않는 어떤 것들을 들여다보아야겠다, 내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했어요.

윤가은 : 저한테는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저는 그냥 저한테 되게 중요한, 아주 중차대한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한때 지나가는 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요. 나는 그것이 되게 중요해, 아주 작고 하찮고 사소하게 보이는 그게 사실은 내 삶을 다 구성하고 있었어, 이런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기준에 중요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왜 안 할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들이고요. 그것들을 주로 영화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오은 : 김혼비 작가님은 어때요? 보통 사람들이라면 지나칠 것들을 눈여겨보는 마음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혼비 : 윤가은 감독님이 말씀과 비슷한데요. 아마 여기 계신 많은 분들도 그런 경험이 당연히 있을 거예요. 어렸을 때 특히 내성적인 어린아이였다면 더 그랬을 텐데요. 뭔가 말이 서툴러서, 혹은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린이라 어른들이 진지하게 듣지 않아서 내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경험이 있죠. 혹은 나한테 있어 너무 중요하고 경이로운 경험인데, 어른들이 보기에는 그냥 별거 아니어서 넘어간다거나 하는 경험이요. 그게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약간 외롭기도 해서 그 마음을 안고 잤던 밤들을 보냈던 어린아이들이 있을 텐데요. 그 경험이 조금 더 쓰라렸던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혹시 옛날의 나처럼 내가 어떤 아이의 진심이라든지 이 아이가 전달하려고 하는 마음을 모르고 확 지나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되게 쓰라린 밤을 안겨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이 있고요. 혹시라도 놓친 게 있을까 봐 자꾸 주변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은 : 2022 서울국제도서전 테마가 ‘반걸음’입니다. 코로나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이 시기에 다음을 향한 두 분 만의 반걸음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보여주실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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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 : 사실은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특히 영화 산업은 굉장히 휘청거렸고요. 극장도 실제로 문을 많이 닫았어요. 정말 유례없는 상황이어서 영화인들은 진짜 많이 놀랐던 것 같아요. 저도 이곳에 이제 막 들어왔는데 직업이 없어지나, 하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2년 동안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요. 여기서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주문 걸듯이 많이 하고 있고요. 이런 시대를 겪은 만큼 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빨리 관객분들 만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다음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제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면서 하는 진짜 직업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혼비 : 올해와 내년은 최대한 글 쓰는 시간을 줄이자고 결심했던 시기예요. 뭐랄까 어느 순간 모순된 걸 느꼈던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다 보니까 쓸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한정적이잖아요. 이 시간을 쪼개 글도 쓰고, 술도 마시고, 만나기도 하는데요.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얘기를 쓰느라고 그 친구들과 정작 즐거운 시간을 만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순간을 딱 겪고서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읽으면서 보낼 생각입니다. 



*김혼비

여전히 백지 앞에서 낯을 많이 가린다. 조금이라도 더 친해지고 싶어서 자꾸 그 위에 뭘 쓰는 것 같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아무튼, 술』, 『전국축제자랑』 등을 썼다.



*윤가은


영화감독.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장편영화 〈우리들〉 (2016)과 〈우리집〉 (2019)을 쓰고 연출했다.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53회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시나리오상 등을 수상한 바있다.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영화 말고도 좋아하는 게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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