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UN 인권위원이 들려주는 새로운 인권 이야기

66701.jpg서창록 교수 

고려대학교 교수이자 한국 최초의 UN 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알려진 서창록 교수. 그러나 그는 다양한 직책보다 ‘인권활동가’로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실제로 그는 30년 넘게 인권을 연구해온 학자인 동시에 인권 NGO를 설립해 아시아 지역의 인권 활동을 펼치는 활동가다. UN에서는 인권 침해 사건을 직접 심사하는 한편, 인류가 함께 풀어야 할 미래의 인권 화두를 제기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고민과 성찰이 담긴 책 『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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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팬데믹 초기 코로나19에 감염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나는 감염되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습니다. “내가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은, 남을 배려할 때 진정한 자유가 온다는 사실이다.” 자유와 배려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요? 이를 인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빠르게 변화해왔고 격동의 세월을 거치면서 사회규범도 빠르게 변화했습니다. 그러느라 예전에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 지금은 옳지 않다고 보게 된 것도 많습니다. 책에도 예를 들었지만, 예전에는 청소년 운동선수들에 대한 체벌이 훈련의 일환이라 생각했고, 오히려 매를 드는 엄한 지도자가 존경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랬다가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고 법적인 처벌까지 받지요. 문제는 변화가 빠르다 보니 저마다 옳다고 여기는 윤리와 규범의 기준이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갈등도 첨예해지고, 인권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기도 쉽습니다. 현재의 잣대로 과거는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재단하기도 하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새 지구촌 규범을 선도할 책임이 있는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이라는 대변혁기에 미래를 이끌어가야 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공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시야를 넓혀 인권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시대와 환경이 변함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이해와 관련 규범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다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토론의 장에 초대하는 의미로 이 책을 썼습니다. 나의 인권을 넘어, 여기의 인권을 넘어, 오늘의 인권을 넘어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타자에 대한 존중ㆍ배려와 더불어 양심과 양보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대로 인권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합니다. 인권 침해 문제도 여전히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고요. 그럼에도 ‘그래도 나아간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권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과거 노예제도가 있을 때는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권 침해자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노예제도는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 폐지되었고, 지금은 인간을 노예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 되었습니다. 인권의 증진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조금씩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겪으면서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이 도출되지만, 그것을 조율하고 장기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의 인권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독재가 없어졌고 여성의 인권이 향상되었으며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 높아졌습니다. 한국에서도 아직도 갈 길이 멀고 갈등이 증가하는 듯 보이지만 그사이 조금씩 인간 존중의 의식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을 폭력과 체벌로 훈육하는 교사는 거의 없습니다. 논문을 표절하는 교수도, 오염물질을 마구 버리는 기업도 과거에 비하면 현저히 줄었죠. 우리의 인권 기준이 높아지고 관련 법규도 마련되면서 자정 작용이 일어난 결과입니다.

국제 사회의 인권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대전 직후 탄생한 유엔은 지구촌의 인권 증진에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전쟁과 빈곤, 차별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과연 유엔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8년간 유엔의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전 유엔의 역할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인권은 하루아침에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사람들의 뜻이 모여 증진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엔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시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14년부터 6년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자문위원회 위원이자 개인 진정 실무그룹 위원으로, 2021년부터는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는 인권 관련 연구를 수행하는 그룹으로, 일종의 유엔인권이사회의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반면 개인진정실무그룹은 특정 개인이 제출한 인권 침해 진정 사건을 직접 심사하고 해당 국가에 권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저는 좀 더 직접적인 실무를 해보고자 진정 실무그룹에 참여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서 전체 선거를 통해 뽑혔죠.

인권이사회가 유엔 회원국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면, 자유권위원회는 유엔 인권조약을 비준한 국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범위가 좁은 대신 구속력은 훨씬 강하죠. 각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 개인 진정을 받겠다는 선택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들에게는 회원국의 국민이 인권 침해를 당하고 국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자유권위원회는 유엔의 다양한 인권조약기구 중 가장 많은 개인 진정을 받고 있습니다. 매년 세 차례, 총 14~17주 정도 유엔 인권 최고 대표부가 위치한 제네바에서 위원회가 개최됩니다.

‘배려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로 책이 시작되고 끝납니다. 특별히 이 키워드를 꺼낸 이유가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 코로나19 초기 감염되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인권에 있어서 배려가 왜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고 그 점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개 인권을 생각할 때는 집단의 권리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개인의 자유가 억압당했고, 그것을 힘겹게 쟁취한 역사가 있기에 개인의 자유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곤 하죠. 그러다 보니 많은 부작용과 갈등도 생겼습니다. 서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하느라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도 생기고 있죠.

이제는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 구성원 간의 평등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중 한 가지로 ‘우애’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프랑스혁명의 3가지 정신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인데, 우애를 일상적인 의미로 풀어 쓰면 배려의 정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휴먼아시아라는 인권 NGO를 설립해서 대표를 맡고 계시죠. 연구만 하시는 게 아니라 인권 활동에 직접 뛰어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네, 한 편의 칼럼이 제게 큰 영감을 줬어요. 2005년 1월에 베이징 대학 교수가 칼럼을 실었는데, 제목이 ‘한국과 일본은 사명이 있다’였습니다. 아시아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이룬 나라가 한국과 일본뿐이니 두 나라는 아시아 지역에서 사명이 있다는 겁니다. 그 칼럼이 국내에 머물러 있던 제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인권에 관심을 돌리지 않는 나라는 영혼이 없는 나라다’라고 썼는데, 영혼이 없는 국민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서 2006년에 아시아인권센터를 설립했고, 이후 단체명을 휴먼아시아로 바꾸었습니다. 아시아의 이주노동자, 난민의 보호와 인신매매, 기업과 인권 등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인권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인권학자로서 다양한 직책을 거쳤지만 개인적으로는 인권활동가로서의 역할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활동이 현지 사람들을 과연 행복하게 하는가 계속 성찰하면서 저 스스로도 많이 배웁니다.

현재 가장 주목하고 계신 인권 현안은 무엇인가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아시아 인권 보호 체제를 증진하는 것입니다. 대륙별로 지역 인권 보호 체제가 갖춰져 있는데 아시아에만 아직 없습니다. 아시아는 난민도 가장 많고 인권 문제가 심각한 지역인데 정치나 문화 등에 편차가 커서 지역 인권 보호 체제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아시아 인권법원 설립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적 상황 때문에 녹록지 않은 형편입니다. 정부가 하기 어렵다면 시민사회가 주축이 되어보면 어떨까 가능성을 모색하는 중입니다. 휴먼아시아의 장기적인 비전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신기술이 미래사회의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가입니다. 유엔인권이사회에도 이와 관련한 주제의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한 바 있고, 이 책의 3부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더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는 문제는 벌써 일어나고 있죠. 여기에 인권의 근간인 생명권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도 심각합니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대변혁의 시기입니다. 과거 급변하는 시기에 인권에 대한 토론이 부재해 많은 갈등을 겪었는데, 그런 과오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변화의 한가운데에 평범한 나와 이웃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지, 다가올 미래에 인간의 존엄은 어떻게 지켜낼지 더 늦기 전에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권'이라는 단어가 어렵고 복잡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희망을 가지고 생각하는 긍정의 단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권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있지만 우리 공동체의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새로운 변혁의 시기에 자기의 권리와 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남의 입장에 공감해보고 남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조율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인권을 함께 증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창록

고려대학교 교수, 유엔 자유권위원회 위원. 1989년 미국 유학 시절, 인턴으로 4개월간 제네바의 유엔본부에서 일하며 국제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며 청년 시절의 꿈을 뒤늦게 이루었으며, 2020년에 한국인 최초의 유엔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최근 주요 관심사는 신기술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과 지역인권보호체제 증진방안으로 이와 관련한 주제의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바 있다.




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
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
서창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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