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애의 그림책 읽는 시간] 『지금이 딱 좋아』
정신을 차려보니 마흔이다. 마흔이면 어른이어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서툴고 어설프다. 내 모자람을 알아서일까? 새로운 도전 앞에 나는 아직도 망설여진다. 도전 자체가 버거울 때도 있고 실패의 무게가 감당되지 않아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데 그나마 그런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건 ‘육아’라는 양해였다. “아이 때문에 힘듭니다.” 이 말에는 강력한 당위가 있어 듣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의 양해를 수긍하고 때로는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아, 당연히 그렇겠지요. 아이 키우느라 힘드시잖아요. 고생 많으세요.” 그래, 난 육아로 고생하고 있잖아. 여기서 무언가를 더 하는 건 무리인 게 분명해. 지금이 딱 좋아. 그렇게 나는 ‘나의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 버리는 건 아닌가?’ 이런 의심이 들 즈음에 좋아하는 선배를 만나게 됐다.
몇 해 만의 만남이었다. 완벽한 일 처리를 자랑했던 선배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커리어 우먼’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선배는 자신의 일을 모자람 없이 해냈고 청소년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에게 부족함 없는 엄마였다. 무엇보다 선배에게는 일종의 철학이랄까 신념이랄까 그런 종류의 생각이 묻어났다. 궁박한 처지 때문에 별수 없이 하는 선택이 아닌 수많은 고민 끝에 내리게 되는 최선의 선택. 그래서 후회가 없는 진짜 선택 말이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질문을 쏟아냈다. 요즘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대화 끝에 선배가 최근 전혀 새로운 일을 제안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궁금했다. “그런데 좋은 기회인데 왜 그 일을 택하지 않았어요?” 잠시 생각을 한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좋은 기회였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침을 꼴딱 삼키며 선배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앞으로 몇 년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이게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아. 내 최선의 선택이지. 나는 지금이 좋고, 지금으로 충분해.”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느낌. 나는 육아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지낸다고 여겼는데, 선배는 자신의 선택을 포기가 아닌 최선으로 여기고 있었다.
“지금이 좋다.”는 선배의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선배의 말은 밑도 끝도 없이 과거 자기 자랑만을 늘어놓는 꼰대스러움도 아니었고, 이러나 저러나 인생 별것 없다는 치기 어린 위로와도 결이 달랐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했으니 그 선택을 믿고 한 발 더 내딛으려는 의지이자 용기였다. 내가 딛고 있는 자리의 정당성과 가치를 왜곡하지 않는 어른의 태도였다.
선배를 만나고 난 뒤 하수정 작가의 그림책 『지금이 딱 좋아』를 읽었다. 주인공인 고애순 할머니는 홀로 살아가는 노인이다. 세상을 겪을 만큼 겪었고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할머니는 세상 밖으로 나갈 마음이 없다. 할머니는 “여기서 세상 다 보인다. 여기에 다 있는데, 뭐하러 밖에 나가.”라고 중얼거리며 집 안에만 머무른다. 유일한 취미라면 집 안 가전제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세탁기며 청소기며 전기밥솥에 정성스레 이름까지 지어줬다. 미식이, 영철이, 진선이. 할머니는 가전제품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마음을 나누고 정을 느꼈다. 세탁기에게는 “우리 민철이. 뽀얗게도 잘 빨아놓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냉장고인 ‘영순이’와 과거 그리운 기억을 나누기도 한다. 귤껍질을 까며 자신의 삶도 지금처럼 이렇게 쭈그러들다 곧 없어질 것이라 한탄한다. 스스로를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저 집에서 눈뜨고, 집에 머물며, 집에서 잠드는 삶에 만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작스레 쓰러졌다. 자식 같았던 가전제품들이 저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조를 요청했고 굳게 닫혀 있던 할머니의 집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고애순 씨! 고애순 씨!” 오랜만에 들어본 자신의 이름. 할머니는 세상이 불러주는 자신의 이름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오늘은… 좀 다르게 해…볼까?” 할머니는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갔고 눈부신 햇살과 볕에 말린 이불 냄새를 맡으며 깨닫게 된다. “아이고, 딱 좋네. 여기가 딱 좋아. 지금이 딱 좋네.”
내가 속한 세계가 편안하고 아늑했다. 아마도 익숙해서 그랬을 것이다. 아이를 돌보고, 무리 되지 않을 만큼의 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돌보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이었지만 적지 않은 일에 육아에. 그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이 범위를 벗어나는 일에 문을 열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던 ‘육아’라는 핑계가 범주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차단하는 문지기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오랜만에 만난 선배와 그림책은 말해 주었다. 포기하지 말라고. 겁먹지 말고 한 발만 더 앞으로 내딛어보라고. 좋다. 이제 나도 용기 내 조용히 한 발 내딛어보려 한다. 고애순 할머니와 나에게 찾아온 초여름이 진정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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