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외줄타기의 미래 - 문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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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회째를 맞이하는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12개 다른 국가의 작가들과 한국의 작가들, 그리고 독자가 문학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국내 작가들의 에세이를 통해, 행사의 분위기를 미리 만나보세요.


행사 일정 : 2019년 10월 5일 ~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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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이 저마다의 음악 소리를 지니고 있다면 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나는 가끔 하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이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내 유년의 기억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하늘을 뒤덮는 폭음과 불꽃놀이의 기억이다. 그것은 한국 전쟁에 대한 기억인데 지금까지도 나에게 불꽃과 파열음으로 남아있다.


이 비극적인 파괴와 살상의 소리가 하늘 가득히 피어나는 불꽃과 반짝이며 쏟아지는 폭음으로 기억되는 아이러니에 나는 가슴이 막힌다. 언어의 절망과 불가능에 대해 고통스러운 질문을 하는 것이다.


나의 시 쓰기는 그러므로 예민하고 풍부한 언어 감각이나 사물에 대한 천부적인 투시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기보다 언어의 한계와 허위와 역설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분단으로 막을 내린 한국 전쟁은 오늘까지 휴전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나의 삶은 그런 배경위에서 벌이는 곡예의 시간이고, 나의 시 쓰기는 그런 배경위에서 외줄을 타고 뒤뚱거리는 줄광대의 춤이다.


기실 나의 시 쓰기의 토양은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였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그 어느 사회보다 여성차별이 심한 농경사회였다. 여성에게는 교육의 기회조차 부여되지 않아서 일생 동안 부엌과 안방을 오가며 가사 노동과 육아를 천직으로 남성의 보조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했다. 다행히 나는 이러한 전통보수사회에서 태어났지만 곧 산업사회로 전환하는 시기에 성장하며 차별 없이 제도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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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한국 현대시는 새로운 형태와 운율을 가진 시문학으로 등장했다.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는 큰 상처를 입었지만 우리 고유의 가락과 새로운 감각에 대한 갈망으로 여러 시인들이 절창을 남기었다. 전후(前後)에 보급된 교과서와 함께 교육의 대중화로 한국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와 어린 시절부터 대도시에서 유학을 하며 땅위에 혼자 서야한다는 두려움과 슬픔을 시로 썼다. 이상하게도 시를 쓰고 있을 때만이 두려움과 고독은 사라지고 온전히 숨 쉬고 있음을 느꼈다.


엄혹한 군사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향한 사회 변혁을 치르며 한국은 자본주의 소비사회로 거칠게 전환되어갔다. 물질에 대한 욕망은 극대화 되어갔고 언론은 검열 당했으며 급기야 저항 시인이 투옥되는 상황을 목격했다. 한국은 어느 수준의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룩했지만 압축 성장의 폐해로 극심한 경쟁과 인간 소외와 환경 파괴를 불러왔다.


나는 투사를 꿈꾸거나 정치적인 대결의지를 가진 시인이 아니었지만 늘 정확한 표현에의 갈망과 함께 이러한 현실과 삶을 언어로 왜곡하거나 공소한 정서로 늘어놓지 않으려고 했다. 침묵으로 진실이 은폐되고, 거짓에 대한 저항을 정직하게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했다.


나는 식민지 시대 자유를 부르짖다 죽어간 소녀 유관순의 자유혼과 용기에 초점을 두고 장시를 발표했다. 또한 포악한 왕에게 눈알을 빼앗긴 신화 속의 목수 도미를 상징적인 인물로 설정하여 시극을 써서 공연하기도 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강하게 외쳤던 인권과 차별의 문제가 정치에 국한되고 구호에 그치는 것을 또한 주목했다. 국민의 반수인 여성의 인권과 차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방치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반공(反共)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적인 남성 중심의 정치 언어 속에서 특히 여성에 대한 시각은 거의 인종차별에 가깝다는 것을 빈번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이는 반전, 민권 운동이나 우먼파워와 페미니즘 이론들을 주목했다. 세계사적 의미에서라는 거창한 전제를 하지 않더라도 나의 시와 삶은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시대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기를 원했다. 특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남성 중심의 합법적인 지배 언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나는 나다! 라는 자각과 함께 내가 생명의 태반을 몸 안에 지닌 여성 시인이라는 자각을 했다. 이것은 남성과 상대적인 성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쓰는 존재, 즉 창조 주체로서의 여성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 성스럽다고까지 치켜세운 모성애마저도 굴레일 수 있다는 개념 또한 나를 크게 확장시켰다.


신화나 철학, 과학을 통하여 사유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이론의 수용과 함께 지배 언어가 아닌 포용과?감수성의 언어인 여성언어에 대한 개안(開眼)은 나의 시 쓰기에 큰 전환을 불러왔다.


열한 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온 떠돌이로 호기심 많은 시인으로 나는 세계 여러 곳을 떠돌았다. 80년대 초 폭압적인 군부정권에 의해 내 고향 광주에서 벌어진 민중 학살은 시를 쓰는 손이 부끄러울 만큼 시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체를 회의하게 했다. 나는 한국을 떠나 한동안 뉴욕에 살며 다양한 장르와 실험예술들을 보았고 인간과 예술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세계는 이제 클릭 한번으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이다. 이것은 경이롭지만 한편 소중한 전통과 개성들이 쉽게 파괴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적이다. 나의 시속으로 이런 것들이 새로움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홍수처럼 들어와 내가 또 다른 식민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 사회 변혁들을 경험하며 언어의 불완전성에 저항하며 겁쟁이 시인으로 살았다. 하지만 시인으로서 시를 쓸 수 있는 풍요한 소재를 가질 수 있어 행운이었다는 고백을 여러 번 했다. 더구나 나는 외부적인 것으로 인하여 시 쓰기를 중단하거나 굴복한 적은 없다.


시는 힘이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혹적인 힘으로 나를 혁명하고 세계를 혁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시 내 몸속의 음악소리를 들어본다. 죽음을 품은 생명의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 시로 태어날 수 있을까? 발가벗은 언어들이 자궁 속으로 일제히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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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여성성과 일상성을 기초로 한 특유의 시적 에너지와 삶에 대한 통찰로 문단과 독자 모두의 사랑을 받아 온 문정희 시인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 진명여고 재학 중 백일장을 석권하며 주목을 받았고, 여고생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첫 시집 『꽃숨』을 발간했다. 1969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마케도니아 테토보 세계문학 포럼에서 작품 「분수」로 〈올해의 시인상〉(2004), 2008년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 문학 부문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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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이다문정희 저 | 민음사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시선과 언명은 ‘문이 아니다’라는 부정문과 아귀가 맞다. “응”이라는 언어로 사랑의 체위를 갈구하나, 자신이 살았던 공간인 압구정을 향해서는 ‘도둑촌’이라 칭하며 멸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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