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세렝게티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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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여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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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 국립 공원에 사는 암사자 이야기를 쓰겠어!


그렇게 말하면 이어지는 대화는 대략 이런 식이었다. 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써? 쓸 수 있거든!


맘에 없는 큰소리가 아니었다. 과거 이야기도 쓰고, 미래 이야기도 쓰고, 심지어 우리 우주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태연하게 일어나는 판타지도 쓰는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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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는 내게 너무 멀었다. 세렝게티 여행 경비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0~400만원, 그러니까 동화책 3,000~4,000부 인세에 달한다. 여행 기간도 최소 열흘은 잡아야 한다. 사실 한국에서, 더구나 요즘 같은 출판 상황에서 3,000부 이상 나가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오늘도 잊지 말고 책을 삽시다.) 그런데 나는 이슬만으로는 살 수 없는 작가인 데다, 고등학생을 키우는 엄마였다. 그렇다고 내 일상의 울타리에 갇히기는 싫었다. 그동안 부인에게 아이를 맡겨 두고 자유롭게 다니는 남성 작가들을 볼 때마다 약이 올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저 발을 구르는 걸로는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한국에서 가장 멀게 느껴지는 아프리카, 그중에서도 야생 동물의 천국이라 불리는 세렝게티 이야기를 써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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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무엇이든 책으로 배워온 지 어언……. 하여간 긴 세월, 과연 책장을 여니 야생이 펼쳐졌다. 세렝게티에 관한 책도, 사자에 관한 책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괜찮은 다큐멘터리들이 있었다. 유튜브에는 동영상이 넘쳐 나지만,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서 거의 보지 않았다. 끝으로 세렝게티 지도를 구해서 책상 옆에 붙여 두었다. 그렇게 알게 된 조각들을 맞추어 머릿속에 세렝게티라는 무대를 세우고 사자를 비롯한 동물들을 풀어놓았다.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무리에서 가장 작고 약한 암사자를 주인공으로 세웠다. 세렝게티를 비롯한 아프리카 남동부의 공통어 스와힐리어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주인공 암사자에게는 ‘왜’라는 뜻의 와니니, 카리스마로 무리를 이끄는 가모장 암사자에게는 ‘존경하는 어른’이라는 뜻의 마디바, 사자의 습성을 거스르며 횡포를 일삼는 수사자에게는 세렝게티 동물들의 공적 ‘인간’이라는 뜻의 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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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푸른 사자 와니니』 를 썼다. 와니니가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만나러 갔다. 고맙게도 어린이 독자들이 와니니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항상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그래서요?” “무투는 어떻게 되었나요?” “마디바는 어떻게 되었나요?” “와니니는 어디로 갔나요?” 한마디로 결말에 대해 의문이 많다는 거였다.


나도 슬슬 뒷이야기가 궁금해졌다. 후속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이나 다큐에서 꺼내 쓸 수 있는 건 이미 다 썼다. 바닥이 훤히 보였다. 이제 책상에서 일어나 멀리, 아프리카로, 와니니가 살고 있는 세렝게티로 가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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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사파리-전용-차량-1.jpg

사파리 전용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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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여행은 엄두가 나지 않아 패키지여행 상품을 알아봤다. 대체로 기간은 보름 이상, 비용도 1,000만원을 예사로 넘겼다. 그 와중에 배낭여행 전문 여행사에는 괜찮은 상품이 있었다.


기간은 5박 8일에, 비용은 399만원. 쇼핑이나 다른 관광을 위한 시간은 조금도 없이, 세렝게티 국립 공원(2일)-응고롱고로 국립 공원(1일)-레이크만야라 국립 공원(1일)으로 움직이며 인접한 야생 동물 보호 구역만 깔끔하게 둘러보는 코스였다. 마침 세렝게티에 관심 있는 지인들이 있어서 4명으로 한 팀을 이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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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프리카, 그것도 야생 동물 보호 구역으로 가는 여행은 부담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상황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해외여행을 난생처음 가는 것 같았다. 여행사 오리엔테이션까지 자청해서 받았고, 준비 사항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사진이 중요한 여행이라 원래 가지고 있던 디카에 장착할 수 있는 렌즈를 샀는데, 망설이다 두 개 중 저렴한 쪽을 골랐다. 그게 결국 여행에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었다. 숨겨 둔 옥가락지(는 없지만)를 팔아서라도 좋은 렌즈를 샀어야 했거늘!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예방 접종도 챙겨야 했다. 말라리아, 장티푸스는 보건소에서도 접종이 가능한데, 대학 병원이나 종합 병원에 가야만 한다. 무려 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의사와 마주 앉았는데, 뜻밖에도 의사가 구체적인 것들을 물어 왔다. 아프리카는 무슨 일로 가나요? 얼마나 체류하나요? 어디서 머무나요?


하나씩 대답을 할 때마다 어쩐지 좀 민망해졌다. 여행, 엿새 그리고 리조트……. 고작 며칠, 그것도 리조트에 있다 올 거면서, 사람 못 사는 데라도 가는 것처럼 호들갑이라나. 있지도 않은 아프리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튼 콜레라약을 2차까지 착실히도 먹었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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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18년 11월 29일, 인천공항에서 에티오피아항공 비행기를 탔다. 기내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아프리카로 간다는 실감이 났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프리카인의 비율이 높은 곳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 아시아 대륙을 쭉 횡단하여 마침내 아프리카. 일단 아디스아바바의 뽈레 국제공항에 내렸다.

드디어 아프리카다!


그러나 아직 현실은 세계 어디나 똑같은 국제공항이었다. 게다가 인파 사이로 익숙한, 아니 오래전에 익숙했던 그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노란 바탕에 초록색 클로버가 그려져 있는…… 그건 바로 새마을운동 로고였다. 새마을운동 모자를 쓴 단체 관광객, 그것도 아프리카인들이었다. 한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고 돌아가는 길인 듯했다. 아프리카와의 첫 만남이 새마을운동이라니…….


도망치듯 새마을운동을 지나 음료수라도 마시려고 자판기로 갔는데, 세상에, 우리에겐 단돈 100비르도 없었다. 그 대신 바로 눈앞의 유리 벽 너머로 면세 구역이 보였다. 하지만 뽈레공항 면세 구역은 그림의 떡, 아니 커피와 빵이었다. 환승 대기장에서 면세 구역으로 가려면 검색대가 있는 입국장을 통해야 했다. 그러기엔 환승 시간이 빠듯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닌가. 달러와 신용 카드를 챙겨 든 외국인들과 면세 구역 사이에 벽을 세워 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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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배고프고 목마르고 지친 몸으로 다음 비행기를 탔다. 세렝게티 국립 공원으로 가는 관문인 탄자니아 아루샤의 킬리만자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가이드 줄리어스가 사파리 전용 차량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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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밖 아루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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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로 세렝게티에 왔다!


일단 아루샤 시내에서 하룻밤 머물러야 했다. 그러고도 세렝게티까지 자동차로 다섯 시간을 가야 했다. 하지만 지구를 반 바퀴 돌고 보니 그 정도 거리쯤 간단하게 느껴졌다. 목청껏 외치면 세렝게티까지 인사를 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보!


마음으로 그렇게 외쳤던 것만은 틀림없다. 세렝게티에게, 그곳의 동물들에게, 멀리서 소식만 주고받았던 와니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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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렝게티로-가는-길-1.jpg

세렝게티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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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사자 와니니이현 글 | 창비
무리를 위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디바와 부족한 힘이나마 한데 모아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와니니의 모습을 나란히 보여 주면서, ‘함께’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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