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박하령 “독서가 서툰 아이들이 문학을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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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 블루픽션 수상작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 살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의자 뺏기』 등으로 많은 청소년을 만나온 박하령 작가. 그가 이번에는 '장애인 부모와 비장애인 자녀의 남다른 가족 이야기'를 선보인다. 이 소설은 쫓기듯 달아나는 소녀 유나로부터 시작된다. 유나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를 뜻하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 간신히 말을 배운 때부터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를 오가며 부모의 통역사 노릇을 해왔다. 박하령 작가가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는 남다르다. 주인공 유나에게 '부모님이 장애인이니까 네가 잘해야지'라며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나를 비롯한 모든 10대들이 가족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발버둥 쳐야 한다며, 가족 간의 거리 두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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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령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이 땅의 오늘을 사는 아이와 청소년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본격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작가는 앞으로도 재미와 의미가 잘 어우러진 양명한 청소년소설을 쓰기 위해 계속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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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와 살림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청소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분으로 자리매김하셨는데, 처음 청소년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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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논술 지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들과 접하며 그들이 가진 ‘애로사항’에 뼈저리게 감정이입을 했어요. 제가 본 아이들이 가진 어려움이란 건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이라기보다는, 아직 어려서 미처 알지 못해 혼란 속에서 길을 헤매는 경우가 많았어요. 또 부모님에 의해 주조된 목적 때문에 경주마처럼 달리는 아이들이 가진 무기력, 또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가치관에 짓눌려 본의 아니게 아이들이 자기 학대를 하는 일 등이 많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은 가치관 교육을 받을 기회는 없고 오로지 입시 교육에만 매진해야 하니,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힘을 얻을 기회가 전혀 없는 거죠.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라도 삶의 진리를 엿보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할 기회를 줘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계기는 저 역시 늦게 깨인 어른이라 그들의 입장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그래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청소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게 가장 적확한 답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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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발버둥치다』 『의자 뺏기』 『기필코 반드시 돌아온다』 등 장편소설을 주로 쓰셨는데, 이번에는 단편을 묶은 소설집으로 독자를 만나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첫 소설집에 대한 감회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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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앤솔러지에 실을 단편소설을 처음 쓰면서 그 매력에 빠져서 내달리듯 쓰기 시작했죠. 단선으로 직진하면서 오밀조밀한 설정 안에 이야기를 잘 저며 넣고, 임팩트 있게 주제를 드러내는 묘미가 정말 맛깔났으니까요. 어느 중학교에 강의를 갔는데 한 학생이 그 작품을 읽고 “책인데도 재미있어서 다 읽었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사명감을 가지고 단편을 써야겠다는 확실한 명분이 섰어요. 학생들의 자발적 독서가 부진한 건 스마트폰이나 웹툰의 활성화, 유튜브 같은 영상 매체에 현혹되는 시류에 의한 것도 있지만, 또 하나는 ‘책 = 공부’라는 도식으로 재미없다는 선입견이 강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독서가 서툰 아이를 문학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으로 재미와 의미가 잘 버무려진 짧은 소설로 접근해야겠다는 목적이 생겼고 이후로 단편소설 쓰기에 매진 중입니다. 책 읽기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제 단편이 일명 ‘독서 촉발의 문학’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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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작품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발버둥치다』 는 물론이고 이번 소설집도 외예는 아닌데요, 소년 소녀의 애틋한 사랑을 다룬 「여름을 깨물다」조차 이야기의 발단은 아버지가 연루된 사건입니다. 특별히 가족 관계를 섬세하게 다루는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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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제일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말이 있죠. 가족은 잔뼈에 붙은 살처럼 밀착된 관계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애증으로 범벅이 되어 분리가 힘들어요. 가족에게 우리는 힘을 얻기도 하지만 동시에 할킴을 당하면서도 거리를 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강의를 다니다 보면 부모가 정해 놓은 극히 주관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도 있는 당위에 갇혀 허덕이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런 아이들은 대개 부모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 속에 자신을 가두거든요.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예를 많이 봤어요. 부모에게서 받은 감정의 틀은 스스로 의지를 갖고 개보수하지 않으면 평생을 지니고 살게 되거든요.


‘가족 구성원이 각자의 건강한 독립과 경계선을 지킬 때 가족은 진정한 안식처가 된다. 가족 판타지로 인해 가족이란 늪에서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자아 분화를 권유하고자 한다. 혈연은 운명이지만 무조건 감싸 안고 뒹굴기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 그 안에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음을 깨닫고 발버둥 쳐야 한다. 내가 바로 서야 가족도 사랑하게 된다.’ 저의 일관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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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소설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나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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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갈급한 주제들, 혹은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주제들을 모아 이야기로 지은 소설집이라 모두 소중한 캐릭터입니다. 편애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여름의 깨물다」를 쓰면서는 유난히 감정이입이 되어서 저 역시 사춘기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어른이 되어야 하는 그 지난한 과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아파했던 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거든요. 삶은 아픔과 부조리를 딛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어른이 된 지금도 인정하기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성장이 뿌듯하고 한편 대견하기도 하고요. 죽는 날까지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으려는 건 아주 건강한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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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자기다움’을 잃지 않기를 당부하셨는데요, 자기답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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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치다』 속 화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태어난다’는 말을 외치고 있어요. 저는 사람마다 외모가 다르듯이 자기만의 달란트와 색깔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부모는 아이가 자기다운 건강한 성인으로 클 수 있도록 경제적, 정신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여야지 절대 본인의 욕심으로 아이의 삶을 뒤틀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게 필요한 거죠. 아이를 믿고 인정해 주면 아이는 쫒기는 쥐처럼 강박으로 달리지 않게 되죠. 그러면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생겨요.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좌충우돌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자산이므로 그 시간을 인정해 줬으면 좋겠어요. ‘자기 페이스’로 ‘자기 동력’으로 달려야 인생이란 전 과정을 즐겁게 통과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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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장편소설 『발버둥치다』 가 ‘2020 서울시 올해의 한 책’에 선정되었는데요, 작가님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꼽는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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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치다』 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절절하고 절박한 가족 문제를 다룬 작품이기에 토론하기 좋은 책으로 뽑힌 것 같아요. 너무 익숙해서 혹은 당연해서 되짚어 볼 생각조차 없이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가족 문제를 거리를 두고 되짚어 보는 작품이니까요. 그리고 제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를 제 입으로 굳이 말한다면…… 속도감 있는 문체라 쉽게 읽히는 데다 지인과 나누고 싶은 익숙하지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룬 소재가 많아서가 아닐까 싶어요. 화자는 청소년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관계 속 미세한 감정을 다룬 공통의 주제들이 많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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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꼭 쓰고 싶은 이야기나 다뤄 보고 싶은 주제가 있을까요?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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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의 스파링 파트너』 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들을 더 모아서 단편집을 한 권 더 낼 작정입니다.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꼬드기는 이야기들을 재미로 빚어내 쓸 겁니다. 그리고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반드시 다뤄야 할 ‘그루밍 성폭력’에 관한 글을 써서 다듬는 중입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아이들이 오롯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성인문학으로 내야 하는지 어떤지 갈등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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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일은 제 자신을 뒤돌아보며 제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종의 오답체크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안에서 해결이 안 된 삶의 문제들을 연구하고 문학 작품으로 만드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그건 아마 살면서 제가 발견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으니 아직 미개봉의 주제겠죠.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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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버둥 치다박하령 저 | 자음과모음
작품 속 인물들이 가족과 거리를 두며 진정한 독립으로 향하는 발버둥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서로의 상처를 발견하고 모른 척하지 않고 마주 보고 맞서며 아파하고 힘들어하지만 그 모든 과정 끝에 가족은 성장한다. 곪은 염증이 터진 후에야 비로소 새 살이 돋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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