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표정훈 칼럼] 단?하나의?글쓰기?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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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학교는 1학년 때 독후감을 반드시 써야했다. 200자 원고지 시대였다. 개념어는 한자로 써야했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독후감 쓰기를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 시각 다 되어 애국가 4절까지 가사를 적어 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동해물과’를 ‘東海물과’로 써서. 물론 담당 조교에게 불려가 다시 쓰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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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각해보면 애국가 가사라도 써서 내는 학생이 아예 쓰지 않은 학생보다는 낫다. 한자라도 찾아봤을 것이니 백두산이 ‘白斗山’이 아니라 ‘白頭山’이라는 것, '길이 보전하세'의 보전이 ‘保全’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터이다. 애국가이니만큼 뭔가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다. 정말 뭐라도 쓰는 게 쓰지 않는 것보다는 뭐가 나아도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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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재능이 온다고 해도 그건 오직 번쩍하는 한 순간뿐. 시 몇 편, 얇은 책 한 권 내고 그 남자, 그 여자는 모래 밑으로 가라앉아 조용한 무(無) 속으로 삼켜지지. 내구성 없는 재능은 빌어먹을 범죄요. 그들이 부드러운 덫에 걸린다는 뜻이오. 그들이 칭찬을 믿었다는 뜻이고 그들이 금방 안주해버렸다는 뜻이지. 작가는 책 몇 권 썼다고 작가가 아니오. 작가는 문학을 가르친다고 작가가 아니오. 작가란 지금, 오늘 밤,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을 때만 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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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가 1990년 ‘콜로라도 노스리뷰’의 편집자에게 쓴 편지다. ( 『글쓰기에 대하여』 , 박현주 옮김, 시공사) 작가란 지금 이 순간 쓸 수 있을 때만 작가라는 것. 그러니까 작가는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쓰고 있는 사람이다. 미국에서 ‘작가들의 멘토’로 유명한 바버라 애버크롬비가 『작가의 시작』(박아람 옮김, 책읽는수요일)에서 자신의 작가 생활 초기를 회고한다.


“나는 식탁에서도 글을 썼고, 젖을 먹이면서도 글을 썼으며 침실의 낡은 화장대에 앉아 글을 썼고, 나중에는 작은 스포츠카 안에서 학교가 파하고 나올 아이들을 기다리며 글을 썼다. … 돈이 없을 때에도, 타자기를 두드리는 것 말고는 가계에 도움을 주는 게 없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글을 썼다. 내가 정말 작가인지 아니면 교외에서 미쳐가는 애 엄마일 뿐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진짜 작가’는 그저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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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관한 만고불변의 비법, 어쩌면 단 하나의 중요한 비결은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실천을 하지 않으니 문제지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글을 꾸준히 부지런히 쓰라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성탄절, 독립기념일, 그리고 자신의 생일만 제외하고 매일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걸 알고 난 다음부터 나는 성탄절, 광복절, 그리고 내 생일에도 글을 쓴다. 그래야 스티븐 킹의 발치에라도 다가가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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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넘어지지 않고 탈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꾸 넘어지더라도 자전거를 타야 한다. 물에 빠져버리지 않고 떠서 헤엄칠 수 있으려면? 허우적거리며 물 좀 먹더라도 물에 들어가야 한다. 자전거 타는 법과 헤엄치는 법을 안내하는 책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읽는 것만으로는 자전거를 탈 수도, 헤엄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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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많이 출간되어 있는 글쓰기 안내서들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안내서는 글을 꾸준히 부지런히 쓰고 있는 이에게나 소용이 닿는다. 글쓰기에 관한 최고의 안내서는 자기 자신이 글을 쓰는 행위 그 자체다. 그걸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내가 만일 글쓰기 안내서를 쓴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서문으로 배치하고 마지막에 이 한 마디를 덧붙일 것이다. ‘지금부터 당장 뭐라도 쓰시오.’ 그 서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백지로 놓아둘 것이다. 거기에 뭐라도, 애국가 가사라도 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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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팁 하나만 덧붙이자. 나는 이 글에서 부코스키와 애버크롬비의 말을 인용했다. 정 쓸 게 생각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 인용할만한 글을 찾아 읽어보자. 이 글은 부코스키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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