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vs.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흔히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 등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뿌리로 하는 선진적 민주주의국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인 인권이 무엇보다 존중되고, 모든 시민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공유하며 누리는 나라.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 또는 모든 시민은, 구체제를 거침없이 뒤집어엎은 프랑스혁명의 시대에조차,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불행하게도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때로는, 오직 남성만을 의미한다.
프랑스혁명기에 많은 여성들이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남성 정치인들은 ‘뜨개질이나 하는 여자들’의 정치 참여에 공공연하게 거부감을 드러냈고,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은 ‘살림살이에 힘씀으로써 남편들과 아이들이 권리를 행사하도록 환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여성들에게서 정치적 목소리를 제거했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자유롭게 태어난 모든 인간’을 언급하지만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남성만의 이런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며 불공정한 사회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 바로 올랭프 드 구주다. 그는 남성만을 인간으로 전제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형식을 빌려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어머니, 딸, 누이는 국민의회의 일원이 되기를 요구한다. 여성의 권리에 대한 무지, 망각 또는 멸시만이 공공의 불행과 정부의 부패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원인들이기에, 여성의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성스러운 천부적 권리들을 이 엄숙한 선언을 통해 공표한다.
(…)
제1조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_26쪽 /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중에서
그 결과 올랭프 드 구주는 인간-남성 정적들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형은 판결 후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집행되었다.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출간한 지 불과 2년 만의 일이었다. 감히 남성과 동등한 인간이 되려 한 ‘여성’의 죽음이었다.
당시 일간지 『르 모니퇴르 위니베르셀』은 올랭프 드 구주의 처형 일주일 뒤에 “올랭프 드 구주는 국가의 (남성) 수반이 되고자 했다. 이번 판결은 자신의 성별에게 주어진 덕성을 망각한 음모자들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잘 알려준 사건이다”라고 썼다.
_118쪽 / 옮긴이의 말 ‘올랭프 드 구주, 이토록 인간적인 혁명주의자’ 중에서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전위적 인권운동가
여성에게 결혼이나 매춘 외에 다른 선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남편과의 사별 후 남편의 성을 따른 과부로 불리기보다 새로운 이름으로 독립적 삶을 추구하고, 재혼보다 사회계약 형태의 동거를 택한 올랭프 드 구주.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발표하기 한 세기 반 전에 이미 ‘사회 발전을 막는 여성 혐오의 해악’을 지적했을 만큼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문제의식은 성차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중의 빈곤과 고통,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 즉 여성은 물론 빈민, 병자, 과부, 노인, 고아, 사생아,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가 겪는 부당한 처우는 올랭프 드 구주의 주된 관심사였다. 공공 보조 체계, 과부와 노인과 고아를 위한 돌봄 기관, 실직 노동자를 위한 공동 작업장, 재산 규모에 따른 부유세 도입 등 사회보장 기획을 제안한 「애국적인 고찰」 같은 글에서 보편적 인권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인종차별의 극단인 흑인 노예제의 폐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흑인종’에 관하여」를 통해 노예제 폐지를 직접적으로 주장했고, 노예무역을 다룬 희곡 「흑인 노예 시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노예무역의 즉각적인 폐지 및 노예제의 점진적 폐지를 주장하는 ‘흑인의 친구들’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808년 ‘흑인 노예제 폐지를 위해 행동한 용기 있는 자들’의 명단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다.
그들을 그 끔찍한 노예 상태로 단죄한 것이 힘과 편견이었음을, 여기에 자연은 아무 책임이 없으며 오직 백인들의 부당하고 강력한 욕심이 모든 걸 야기했음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 인간 무역이라니! 세상에나! 자연이 전율할 만하지 않은가? 그들이 동물이라면 우리도 동물이 아닌가? 백인은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가? 차이점이라고는 피부색뿐이다……. (…) 보편적인 자유는 백인과 마찬가지로 흑인을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 추측한다.
_52~55쪽 / 「‘흑인종’에 관하여」 중에서
단편적인 남녀평등의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독재에 항거한 전방위적 인권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의 사상과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부당한 차별과 혐오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유언을 곱씹게 되는 이유다.
나의 조국에는 나의 심장을, 남성들에게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나의 정직함을 남긴다. 나의 영혼은 여성들에게 남긴다. 그녀들에게 별것 아닌 것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_91쪽 / 「유언을 대신하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