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혼자여서 좋은 ‘나’를 발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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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수많은 ‘혼자’들이 있다. 그 ‘혼자’들은 각자 1인분의 몫을 하면서 1인분의 시간을 누리려고 애쓴다. 도시는 필연적으로 삭막한 곳이지만, 그래도 혼자서 살 만한 곳이기도 하다. 그 ‘혼자’들은 취향을 벗 삼아서 평온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누리며, 때로는 느슨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타인과 교류한다.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연재하는 박민진 작가는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을 통해 그런 ‘혼자’의 삶에 대한 수줍은 애정을 내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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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은 브런치(www.brunch.co.kr/@mjmovie)에서 연재되었던 에세이를 묶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글을 쓰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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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괴테의 말처럼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파우스트』 중)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요. 종일 찌들어 퇴근하면 머릿속이 복잡하죠. 지금 잘살고 있는지, 오늘 느낀 감정이 뭔지 헷갈려요. 그런 찜찜한 마음은 동료들과 술 한잔을 걸친다고 사라지진 않더라고요. 숙취는 미역국에 풀려도 어느새 음침한 기분이 다시 찾아와요. 고민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항상 불안에 시달려요.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형체 없이 떠다니는 상념을 정확히 알고 싶은 맘에 브런치에 글을 올렸죠. 퇴근하고 늦은 밤 잠들기 전에 적은 글들이 모여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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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언어의 한계를 절감해요. 특히 글을 쓸 때 자주 허공을 응시하는데, 그건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가 버거워 그래요. 볼품없는 문장을 적고 나면 절로 무력감이 들죠. 하지만 끝내 뭐라도 적으면 어느 틈엔가 생각이 가지런해져요. 복잡한 현실은 변함없지만 어쩐지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그러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남발하면서라도 어찌할 바를 적으면 어느새 여력이 생겨요. 고민에도 근력이 붙는 느낌이에요. 사실 늘 한계에 봉착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문장을 보면 어쩐지 한결 나아진다는 느낌에 편해져요.


책을 보면 영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영화에 대한 평론이 아닌, 삶을 이야기하시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삶과 영화의 관계는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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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늘 고민해요. 컴컴한 극장에 앉아 이야기를 통과하지만 사실 남는 게 많이 없어요. 뭔가 대단한 걸 봐도 사색할 틈도 없죠. 독서라면 노트 귀퉁이에 뭐라도 끄적일 테지만, 영화는 책과 다르게 그냥 흘러가 버려요. 애써 살피지 않으면 속절없이 잊히고 말죠. 불이 켜지고 극장을 나오면 그걸로 끝이에요. 하지만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영화는 제 일상에 파고들어요. 전 영화가 제 삶에 남긴 여파를 곱씹어서 글로 적어요. 좋으면 좋은 대로 별로면 별로인 그 자체로 정확하게 적으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비로소 저만의 고유한 감각이 글에 드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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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늘어놓은 문장엔 평소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저라는 사람이 있어요. 도시를 에워싼 무수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홀로 들판을 걷는 오롯한 제가 글에 녹아있는 거죠.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저만이 가진 1인분을 글에 드러내고 싶어요. 이제는 그게 버릇이 돼서 삶과 영화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어요.


글을 보면 도시에서 산다는 것을 고민하신 흔적이 묻어 나오는 듯합니다. 글을 쓰실 때 염두에 두시는 포인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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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수많은 고독이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온 이들은 고독을 마치 삶의 조건처럼 여겨요. 전 도시인에게 영화와 책만큼 좋은 친구도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도시인이 관계에 지칠 때 숨을 돌릴만한 시간을 선사해요. 그래서 전 문화생활을 무척 중요시합니다. 사회의 부속품이 아니라 각자의 취향을 드러내고 일상을 벗어나 생각의 폭을 넓히는데 제격이죠.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은 도시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며 사는 '혼자'에 관해 적은 글이에요. 도시의 고독이 비록 행복한지는 모르겠지만 세간의 염려만큼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법 숨이 가빠도 나만의 리듬을 지키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는 1인분의 몫을 드러내는 일상의 애틋함을 글에 풀었어요.


글에서 아날로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한 어떤 향수 같은 게 느껴지는데 작가님께 아날로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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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눈을 뜬 동안 스마트폰을 두드려요.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에 둥지를 틀고, 카톡 메시지에 아침잠을 깨는 식이죠. 멜론이 만들어내는 음악으로 하루의 기분을 판가름해요. 이제는 희미해진 과거가 그리울 때도 회상을 하기보다는 아이클라우드에 새겨진 흔적을 찾는 데 더 익숙해요. 전 인터넷과 멀어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껴요. 오직 샤워하러 들어가는 순간을 제외하곤 늘 연결된 셈이죠. 이런 삶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 결국 이렇게 살고 있어요. 제게 아날로그는 끊긴 상태예요. 이제 아날로그적인 삶이란 의식하지 않으면 취하기 어려운 먼 이야기가 됐어요. 그래서인지 바삐 돌아가는 세상과 잠시 떨어지고 싶을 때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아날로그 물체를 찾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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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몰스킨과 연필, 페이퍼백과 레코드판은 불편하고 번거롭지만 어쩐지 세상과 동떨어진 단독자의 시간을 선사하죠.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시간을 얻는 기분이랄까요. 터치와 반응으로 이루어진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사색을 선물하는 오프라인이죠. 일상의 속도전에 지친 분들에게 멈춰 설 여유를 가져다줘요. 최근 많은 사람이 저와 비슷한 이유로 아날로그를 찾으시는 것 같아요. 덕지덕지 붙은 연계를 떼어내고 스스로 고립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제 글 역시 분리된다는 것이 주는 기쁨을 자주 언급해요. 저는 글쓰기를 통해 효율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진 잊힌 것들의 가치를 말하고 싶어요.


유독 겨울을 배경으로 한 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겨울이라는 계절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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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겨울이 와서 좋아요. 어김없이 이맘때쯤 겨울이 온다는 건 축복이에요. 겨울은 지겨워질 때쯤 사라졌다 되살아나요. 겨울엔 커피를 들고 종종걸음으로 영화관을 들어갈 때 느낌이 좋고, 세탁소에서 두꺼운 옷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을 어여쁘게 만들죠. 겨울이 오면 올 한 해가 썩 나쁘지 않았다고 합리화할 수 있어요. 이제 끝나가니까 너그러워지는 거죠. 다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저를 자축하는 시간이에요. 발도 못 맞추고 어영부영 좇기 바빴지만, 그럭저럭해냈다고 안도해요. 곧 올해만 같은 내년이 오길 바라는 새해가 올 거라는 믿음이 생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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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겨울이 오면 어딘가에 틀어박히는 경우가 많아요. 스타벅스, 시네큐브, 대형 서점에 가면 저를 찾을 수 있어요. 사진작가 척 클로스는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간다”라는 말을 했다죠. 전 뇌수가 내리치듯 쏟아지는 영감을 믿지 않아요. 결국 궁둥이를 붙이고 키보드를 두드릴 시간이 많아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걸 알아요. 겨울은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에 있어 최적의 조건을 가진 계절인 셈이죠. 틀어박혀서 제가 뭘 하겠어요. 읽고 생각하고 쓰다 보면 겨울도 금세 지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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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유로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엔 겨울을 배경으로 한 글이 많아요. 누군가는 가을이야말로 글을 쓰기 좋은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가을은 놀기 좋은 계절일 뿐 글을 위한 계절은 아니에요. 하늘이 그렇게 맑고 날이 선선한데 누가 허구한 날 앉아서 글을 쓰겠어요. 겨울이야말로 쓸쓸하고 처연해서 절로 뭔가를 적고픈 계절이에요. 입김이 쏟아지는 날씨에 뜨거운 커피와 함께 잡념이 백지로 쏟아져요.


낡은 아파트 단지, 수더분한 동네 미용실 같은 도시 속의 공간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서울이란 도시에서 작가님께 가장 인상적인 공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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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모두 아시겠지만, 저는 극장과 카페, 서점에 애착을 가져요. 하지만 그 외에도 마음을 준 공간들이 더 있어요. 요즘엔 점심시간에 들르는 헬스장이 그래요. 하루에 한 시간, 일주일에 4번 이상 규칙적으로 들르죠. 제가 꾸준히 하는 몇 안 되는 취미 중 하나예요. 마치 글을 쓰고 소설을 읽듯 같은 시간에 체육관에 발을 디뎌요. 편한 옷을 입고 운동화를 묶으면 삶이 잠시나마 단단해진 것처럼 느껴져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준비해온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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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엔 저마다 생각에 잠겨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눈을 흘깃거리며 그들을 훔쳐봐요. 표정은 누구라도 죽일 듯이 심각하지만, 그들에게도 지금만큼은 평온이 찾아온다는 걸 잘 알아요. 그리 넓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작은 헬스장이지만 각자 위치에서 힘을 쏟는 광경은 정겹게 느껴지죠. 온전히 개인이 되기 어려운 일상이잖아요. 현대인의 삶이라는 게 늘 부대끼고 서로에 생채기를 내죠. 그럴 때 전 도시를 혐오해요. 그런 의미에서 체육관은 보기 드문 사유와 사색의 공간이에요. 맑은 공기와 개울, 드넓은 대지는 아니지만, 바벨 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어요. 오로지 통증만 생각하며 정해진 세트 수를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가요. 의심의 여지 없이 온전한 내 1인분을 보장받는 시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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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위치에 선 우린 서로 눈도 잘 마주치지 않지만, 적정한 거리에서 근면하게 움직여요. 누군가의 아버지, 어느 사무실 김 대리, 저 옆 식당 사장님. 전 이렇게 느슨한 연대로 묶인 공동체에 애정을 가져요. 이런 마음을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에 넣으려고 노력했고, 그게 '우리'와 '각자'가 책 제목에 같이 들어간 이유예요.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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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소중한 시간을 제가 쓴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에 투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독자들을 생각할 때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은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일상이 담긴 책이에요. 대단한 걸작이라고 결코 말할 순 없지만, 마음을 붙잡는 일상을 글에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냥 스쳐 가기 쉬운 별거 아닌 것들에 대해 실컷 떠들다 보면 어느새 우리 삶도 꽤 괜찮아 보여요. 늘 큰 가치를 울부짖는 사회생활에 지친 분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숨을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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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진


현 공군 소령. 어려서부터 극장과 서점에서 놀았다. 글쓰기를 좋아해 평소 느끼고 생각한 바를 틈나는 대로 적는다. ‘카카오 브런치’에 에세이를 연재하며 제3회, 제6회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수상했다. 그밖에 'YES24 블로거 축제' '제8회 문학동네 리뷰대회'에서 입선하고, 『부산외대 신문』 『하퍼스 바자』에 기고했다. 최근엔 문화 콘텐츠 전문 매거진 <인디포스트>에 영화와 책에 관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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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박민진 저 | 북스토리
그것은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의 복도, 동네 미용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 속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툰 형이 사준 옷, 친척 누나 방 벽에 붙은 포스터처럼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기억들을 돌아보는 과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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