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윤희에게> 새봄, 새롭게 찾아올 봄을 향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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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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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윤희’가 아니라 ‘윤희에게’이다. 윤희라고만 했다면 윤희라는 인물에 집중하면 되지만, 윤희’에게’로 향하는 제목이라는 점에서 윤희가 중심에 놓인 ‘관계’를 떠올리며 봐야 하는 영화다. 누군가를 떠올린다는 것, 그 감정은 대개 그리움과 맞닿는다. 그 심정이 향하는 대상을 직접 만나면 그리움은 쉽게 해결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간접적으로 해소할 방법은 펜을 들어 감정을 꾹꾹 눌러 쓰는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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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에게>는 누군가 윤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오랫동안 이렇게 묻고 싶었어. 너는 나를 잊었을 수도 있겠지. 벌써 20년이나 지났으니까. 갑자기 너한테 내 소식을 전하고 싶었나 봐.’ 그러니까, 윤희(김희애)에게로 20년 만에 당도한 편지. 기쁨과 설렘이 앞설 것 같은데 윤희의 얼굴에는 애써 무덤덤한 표정이 일상의 피곤함과 더해지면서 무언가 비밀의 기운을 은은히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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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처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새봄(김소혜)은 고지서와 광고 전단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 편지함에서 도드라진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일본에서 날아온 편지. 더군다나 수신인은 엄마. 아빠와 이혼하고 연애라고는 해본 적 없는 엄마에게 온 편지라니! 몰래 편지를 읽은 새봄은 엄마 윤희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그런데 아무 일 없다는 듯 굴자 편지 내용은 모르는 척 발신인이 사는 일본으로의 여행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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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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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관계와 복잡한 감정. 윤희와 첫사랑 사이, 편지의 발신인과 윤희 사이, 윤희와 새봄 사이에는 사랑과 관련한 상실과 복원과 연대의 감정이 윤희를 수신인으로 한 이 영화의 편지지 한 줄 한 줄에 사연으로 소복하게 쌓여 있다. 그리고 윤희와 새봄 모녀는 얼어붙은 이 사연들이 녹는 날을 목적지 삼은 듯 관계를 찾아가고 알아가는 여정에 동행한다. 이에 관해 임대형 감독은 “사랑의 다양한 모양을 담고자 했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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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영화다. 사랑이라는 큰 테마 안에서 각자 자기 분량의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면서 계속해서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이야기다. 모녀의 여행기를 다루고 있는 여성 버디 무비이기도 하고, 멜로 드라마이기도 하고, 또한 성장 드라마이기도 하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어떠한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보다 타인을 더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용감한 일이다.”라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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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사랑이 첫사랑과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김희애는 “너무 보고 싶어 하는 마음,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안타까움,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한 번에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도, 걱정도 많이 했다. 감성을 말랑말랑하게 운동시키기 위해서 다른 작품들을 많이 보고 최대한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는지에 관해 설명한다. 결국, 이 또한 배우가 자신의 캐릭터에 갖는 사랑하는 마음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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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윤희에게>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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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윤희에게> 속 인물들은 그들과 심정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첫사랑에게, 엄마에게, 딸에게 늘 궁금한 마음을 갖고 의문형의 질문을 던진다. 윤희는 그리운 첫사랑을 향해 “나도 용기를 내고 싶어” 재회를 향한 어렴풋한 희망으로, 새봄은 첫사랑과의 만남에 갈등하는 윤희를 향해 “엄마는 아빠 만나기 전에 연애해본 적 없어?” 퉁명스러움을 가장한 응원으로, 일본의 쥰(나카무라 유코)은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윤희에게로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더는 마음에만 담아둘 수 없어 꺼내든 용기로 진심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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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밝히지 못했던 관계를 향한 야유도, 관계를 숨긴 것에 관한 힐난도, 관계를 몰래 훔쳐본 것에 대한 비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감정을 소비하는 대신 이뤄지지 못한 관계에 대한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결심이 윤희와 연결된 모든 주변 사람들 사이에 얼었던 관계를 녹이는 용기의 감정으로 작용한다. 전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7)에서 부자 관계를 다뤘던 임대형 감독은 이제 모녀 관계를 중심에 놓고, 동성이든, 재혼이든, 이제 갓 관계를 시작한 풋사랑이든, 어떤 형태의 사랑이라도 상관없다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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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답장을 보낼 용기를 얻은 윤희는 자신에게 와닿은 쥰의 감정을 생각하며 오래전에 써둔 편지를 들고 눈이 녹아내리는 길을 걷는다. 새롭게 찾아올 봄을 향해. ’잘 지내니? 네 편지를 받자마자 너한테 답장을 쓰는 거야. 나 역시 가끔 네 생각이 났고 네 소식이 궁금했어. 모든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전 일이 돼 버렸네? 너는 네가 부끄럽지 않다고 했지? 나도 더 이상 내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우리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언젠가 내 딸한테 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용기를 내고 시어. 나도 용기를 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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