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스트레칭이 필요할 때, 30분 걷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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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그런 날.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직장인은 산더미 같은 업무와 연이은 회의를 소화해야 하고, 수험생은 각종 시험을 위해 장시간 자리에 앉아 공부해야 한다.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여행이 있다. 짧게는 30분 정도로 즐길 수 있는 ‘작은 여정’ 걷기 여행이다.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할 때, 짬을 내어 짧게 떠나보자. 준비물은 운동화 한 켤레, 음료수 한 병 정도면 끝. 오랜 시간 여행 작가로 활동한 임운석 작가에게서 걷기 여행의 매력을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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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년 만에 신간을 내셨습니다. 여행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작가님처럼 여행이 직업이 되고 일상이 되면 지치는 순간도 올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권태기'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요. 오랜 시간 여행 작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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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떠나는 여행과 여행 작가가 떠나는 여행은 많이 다르죠. 부담 없이 떠나 즐기다가 돌아오는 게 보통 사람들의 여행이라면, 여행 작가의 여행은 항상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떠납니다. 물론 여행이 직업이 되고 일상이 되면 지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죠. 여행 작가 생활을 시작한 무렵에는 이런 권태기에 빠져 힘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여행의 목표’보다 ‘여행의 여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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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사진과 좋은 글에 집착하기보다 여행지에서 ‘그때 그 순간’을 어떻게 보내고 누릴 것인가에 집중하다 보니 여행이 즐거워졌습니다. 똑같은 장소를 다시 방문해도 다른 영감과 시선을 갖고 바라보면 여행지도 새롭게 느껴졌고요. 오랜 시간 여행 작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취재 여행을 갈 때마다 일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놀러 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여행을 떠나서도 가능한 한 많이 감동하고 즐기고 누리다가 옵니다. 물론 집에 돌아와 밤샘 작업하며 원고를 마무리할 때도 있지만요.
걷기 여행뿐만 아니라 모든 여행의 시작은 두 발로 걷는 행위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걷기 여행'의 매력을 알아차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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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걷기’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감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자신의 두 발로 온전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감사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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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반월상 연골 손상으로 오른쪽 무릎을 수술했습니다. 수술 후 일주일간 입원하고 한 달 동안 휠체어 신세를 졌고, 2달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녔습니다. 이후 수술받은 다리 근육이 줄어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멀쩡하게 두 다리로 걷는 데까지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예전에 무심코 걸어 다녔던 제 모습이 다시 보였습니다. 두 발로 온전히 땅을 딛고 서서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재활 치료에 성공하고 다시 떠난 ‘걷기 여행’은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실존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걷기 여행의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소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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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수술 후 작업실 인근 대학교를 찾아 봄날을 만끽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무릎 수술은 쉬어갈 수 있는 징검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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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준비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늘 설레고 즐겁지만, 최고의 순간은 제각각 다릅니다. 작가님만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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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은 3번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여행을 떠나기 전, 여행지를 사전 조사하면서 1차로 여행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합니다. 가고 싶은 곳과 체험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등을 체크하며 설렘을 안고 출발합니다.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먼저 조사했던 것과 다른 점들을 확인합니다. 기대 이하 혹은 기대 이상인 곳도 있지만 생각지도 않았는데 뜻밖의 멋진 여행지를 발견할 때는 무척 기쁩니다. 여행지에 가서 현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역시 즐겁습니다. 그분들은 그곳의 진짜 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니까요. 돌아와서는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여 사진과 글로 남기는 작업을 합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여행을 기록하며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은 여행 작가로서 굉장한 보람을 느끼게 해줍니다. 꼭 그곳을 가지 않아도 제 사진과 글을 보며 여행의 묘미와 힐링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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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때 최고의 순간을 꼽아보자면, 흠, 질문이 어렵군요. 여행지에서 완벽한 날씨에 완벽한 피사체, 이 외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해도 제가 그 순간 여행을 즐기지 못한다면 최고의 순간이 되지 못할 겁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여행이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최고의 순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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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살기', '3달 살기'와 같이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여행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걷기 여행은 반나절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되지요. 저는 이것이야말로 걷기 여행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걷기 여행의 장점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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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여행의 최고 장점은 부담이 적다는 점입니다. 한 달을 살든 3달을 살든 장기 또는 단기로 여행을 떠나든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지라면 시간과 금전적인 투자가 필수일 것입니다. 하지만 걷기 여행은 시간과 금전적인 면에서 큰 부담이 없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반차를 쓰거나 하루 월차를 내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습니다. 물론 주말이나 공휴일을 이용해도 되고요. 언제든 떠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습니다.
걷기 여행은 시간과 돈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합니다. 걷는 행위도 중요하지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며 사색을 즐기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걷기 여행의 참 묘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걷는 동안 주변의 풍광을 보면서 힐링하고 몸의 건강을 회복하고, 복잡했던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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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거창한 일, 준비 과정이 필요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걷기 여행은 그런 마음을 털어버리라고 말해주죠. 제 주변에도 "여행은 기가 빨리는 일"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여행할 때 어떤 마음가짐, 태도여야 여행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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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사람은 여행 계획도 촘촘하게 세웁니다. 또한 여행하면서 뭔가 목표를 달성하려고 애씁니다. 유명 관광지에 가서 인증 샷 남기는 것을 도전과제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인가 꼭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여행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여행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간략한 여행 정보를 얻고 행선지를 정하되 그다음부터는 걷기 여행 자체를 즐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곳, 새로운 환경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낯선 것에 하나하나 부딪혀 보길 바랍니다. 사전 정보가 다소 부족해도 막상 현장에 가면 더 많은 정보를 구할 수도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호기심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표지판 하나도 꼼꼼하게 읽어본다면 여행이 더 깊어집니다. 걷다가 몸이 피곤해지면 반드시 쉬어가세요. 오늘 이 길을 다 못 걸었다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음에 또 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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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걷기 여행지 40곳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이 중에서 작가님이 꼽는 최고의 걷기 여행지는 어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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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제각기 색다른 매력을 품은 걷기 여행지여서 한 곳을 추천하기는 무척 힘드네요. 지금 시즌이 가을이니만큼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두 곳을 추천해드릴게요.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을 찾는다면 창덕궁 후원을 추천합니다. 조선 왕실의 비밀 정원이었던 후원은 그야말로 조선시대 정원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임금의 정원을 마치 내 뜰처럼 산책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호사죠. 가을에 가면 단풍이 물들어 쨍한 달력 사진을 방불케 합니다. 사전 인터넷 예약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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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유가 있다면 함양 상림을 들러보길 바랍니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인공 조림(造林)으로 가을의 정취가 특별합니다. 만추의 상림은 가을을 가장 가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숲길의 수종 대부분이 낙엽 활엽수인 까닭에 가을이면 고운 색동옷을 갈아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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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운치가 전해지는 동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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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책에는 담지 못했지만, 이곳만큼은 소개해주고 싶다! 라는 걷기 여행지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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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상림 인근에 있는 ‘선비문화탐방로’를 이 책에 담지 못해 아쉽습니다. 거연정에서 농월정까지의 6km의 1코스와, 농월정에서 광풍루까지 4km의 2코스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길은 옛 선비의 풍류가 그대로 묻어나는 곳입니다. 화림동 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줄기가 이어지고 데크 길을 따라 울창한 수목들 사이로 정자가 연이어 등장합니다. 옛 선비들은 숲과 계곡의 조화가 멋들어진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곳에 정자를 세웠습니다. 예스러운 정자에 앉아 잠시 쉬면 장쾌하게 펼쳐진 경치에 반해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것 같습니다. 옛 선비들의 풍류와 멋에 흠뻑 취해 걸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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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세상을 읽고, 눈에 보이는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기도하며, 글로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큰 힘이 있다고 믿는다. 아내와의 배낭여행에서 ‘평생 여행만 하자’고 약속한 뒤, 15년 직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은 각종 매체에 여행에 관한 글과 사진을 기고하고 있으며 여행 전문 강연가로도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객원사진가를 역임한 바 있으며 사진전 <세대공감>을 비롯해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면서 사진작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주었다. 저서로는 『내가 선택한 최고의 여행』, 『최고다! 섬 여행』, 『여행의 로망, 캠핑카 스토리』 외에 다수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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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다녀오겠습니다임운석 저 | 시공사
각각의 콘셉트가 살아 있는 여섯 개의 장을 먼저 확인한다. 혼자서 걷는 길, 동행과 걷는 길, 수도권에서 가까운 길,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걷는 길 등 당신이 원하는 걷기 여행지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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