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은 어디에서 오는가
카페 홈즈에서 사진을 찍는 백민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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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등록금이 너무 아까웠다. 대체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내고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 불만이 많았기에 낸 만큼 가져가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도서관을 찾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작가별로 책을 읽게 됐다. 일주일간 밀란 쿤데라를 읽고 나면, 다음엔 나라를 바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았다가도, 어느새 슈테판 츠바이크를 골몰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이 작가는 ‘○○’이로구나. 그의 수많은 소설은 ‘○○’을 조금씩 변형시킨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여기서 ○○은 화두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고, 주제의식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좁으며, 정체성이라고 하기엔 섭섭한 어떤 것이다. 무어라고 한마디로 정의를 내릴 수는 없으면서도 ○○을 보는 순간 “이건 그 작가의 소설이 분명해!”라고 느끼게 만드는 어떤 것이랄까.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자면 나의 ○○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쉬이 해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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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을 찾지 못했던 스물네 살 무렵의 일이다. 당시 나는 지쳐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았다. 매일같이 수유역에 있는 스타벅스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의구심의 나날, 정말 이대로 영화 시나리오를 써도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날도 그랬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집을 나오며 생각했다. 누군가 지금 날 지켜보고 있다면 사인을 주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옳다고 말해주면 감사하겠다. 그리고 수유역에 들어섰을 때, 나는 마치 응답처럼 노래 한 곡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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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백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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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 순간, 수유역 스타벅스에서 「할렐루야」가 흘러나왔을까. 집에서 듣던 미라 앨범의 「할렐루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고양감이 왜 그 순간, 찾아왔을까. 원인은 알 수 없다. 다만 그 노래가 그 순간 내게 ○○을 얼핏 보여줬다는 사실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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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또 물음이 생겼다. 이번 물음은 차기작의 고민이었다. 가까스로 상을 타고 책을 출간하긴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될지는 계획이 없는 상태였다. 눈앞에 큰 벽이 서 있는 듯 갑갑하기만 했다. 그 때 마침 페이스북에 공지가 떴다.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통하는 백민석 작가가 단편소설 창작 수업을 연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신청했다. 가르침을 갈망했기에 무턱대고 벌인 일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강의에서 백민석 작가는 조금 당황했다. 내게 “아니 왜 프로가 왔어?”라며 웃었고, 나 역시 웃었다. 헤헤거리며 “그러게요, 왜 왔을까요.” 하고 얼버무렸다. 속으로는 웃을 기분이 전혀 아니었으면서. 대관절 프로작가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으면서. 강의 첫날, 백민석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도 백민석 작가가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1Q84』?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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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지 않았다. ?『1Q84』? 는 더더욱 읽을 생각이 없었다. 백민석 작가의 수업을 경청하자니 새삼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고 싶어졌다. 대학 시절 흠뻑 빠졌던 무라카미 하루키, 그 때 나는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토록 읽어댔던 것일까. 그래서 오랜만에 읽었다, ?『1Q84』?. 처음엔 재미가 없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도 이런 치기 어린 느낌을 받았을까 싶기도 했고, 뭔가 상당히 오래된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서서히 감정의 고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세 권, 전권을 모두 읽었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에서 드러낸 ‘○○’은 나의 원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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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페이스북의 백민석 작가 계정에 재미난 공지가 떴다. 백민석 작가가 새 카메라를 산 기념으로 프로필 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연 것. 나는 바로 모델을 지원했다. 3년 전 그때처럼 가르침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덕이었다. 예상대로 나는 이번에도 가르침을 얻었다. 더불어 멋진 사진이란 별책부록도 얻었으니, 그렇게 배운 것과 사진은 모두 차기작에 잘 써먹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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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 작가가 찍어준 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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