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평론가 이용재 “생활인에게는 ‘무던한 식재료’ 이야기가 필요하다”
‘스테이크는 한 면을 구운 뒤, 뒤집은 면은 1분 덜 구워야 균형이 알맞게 익는다. 달걀이 가장 맛있게 삶아지는 시간은 6분 30초. 딸기는 뜨거운 물에 데치듯 담가주면 보관기간을 느릴 수 있다.’
모두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펴낸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에서 얻은 ‘요리 꿀팁’이다. 책장이 아니라 찬장에 꽂아두어야 할 듯한 이 책에는 60여 가지 식재료를 ‘더 맛있게’ 조리해먹을 수 있는 요령이 담겨 있다.
저자 이용재는 음식평론가로 활동하며 ‘감정적인 맛’에 치우쳐 있던 우리의 식문화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비평해왔다.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조리 도구의 세계』 등 다수의 책을 썼고 『실버 스푼』, 『철학이 있는 식탁』 등을 번역했다. 여러 매체에 음식 관련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일상의 식재료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
한국일보에서 3년간 연재한 칼럼 ‘세심한 맛’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어떻게 시작된 기획인가?
음식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다뤄지지 않는 영역이 있는 것 같다. 식재료에 관한 논의는 보통 미식적인 관점에서만 다뤄진다. ‘고급 식재료 어디까지 먹어봤니?’라거나 국산 식재료, 제철 식재료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거기서 나아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를 잘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담담히 전하고 싶었다. 칼럼을 100회 연재했는데, 칼럼을 일상의 체로 거른다는 느낌으로 우리와 아주 가까운 식재료만 선별해 책에 담았다.
“무던한 식재료 이야기(10쪽)”를 쓰고 싶었다고.
직접 밥을 해 먹는 생활인에게는 무던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흔한 식재료인 ‘오이’도 굉장히 다양한 종류와 조리법이 있는데, 한국 마트에는 1-2종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식에 입각한 식재료 콘텐츠는 비현실적이다. 당장 오늘 저녁에 뭐 해 먹을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고급 식재료 이야기는 덧없지 않나. 이들에게 필요한 건 지금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잘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정보다. 실제로 책을 읽은 분들이 ‘계란을 이렇게 삶을 수 있는지 몰랐다’는 말을 많이 했다. 지금까지는 요령 없이 계란을 냄비에 넣어 10~15분간 끓는 물에 펄펄 삶았던 거다.
일상에서 제일 자주 쓰게 될 것 같은 팁은 “소금 간은 습관보다 한 발짝 더(39쪽)”였다.
직접 요리를 하며 체득한 법칙이다(웃음). 소금은 신기하게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뿌릴 때 간이 잘 맞는다. 평소 소금 넣는 습관에서 아예 벗어나는 게 아니라, 습관을 무릅쓰고 한 발짝 더 나아간다는 느낌으로 넣으면 된다.
설탕에 재운 딸기에 후추를 뿌려 먹는 레시피도 인상적이었다.
딸기에 후추를 뿌리면 딸기의 향이 더 살아난다. 딸기를 워낙 좋아해서 여러 방식으로 먹어봤는데,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된 레시피다.
여름에 빼놓지 않고 사는 식재료는 무엇인가?
천도복숭아. 늘 2등 취급을 받는 슬픈 존재이지만, 나는 천도복숭아를 훨씬 더 좋아한다. 일반 복숭아는 저렴한 것을 사면 맛이 없을 때가 많지만, 천도복숭아는 가격에 상관없이 맛의 편차가 고르다는 장점이 있다. 구매 경쟁도 치열하지 않고(웃음). 베이킹을 할 때도 활용도가 높다.
천도복숭아는 시고 떫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알았다. 그동안 후숙을 하지 않고 먹었더라.
많은 종류의 과일이 덜 익은 채로 유통된다. 그래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도복숭아는 과육이 씨에서 뚝 떨어질 정도가 되어야 잘 익은 것이다. 그걸 알고 사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특별히 매력적으로 느끼는 식재료가 있다면?
마늘종, 가지, 완두콩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채소들을 좋아해서 책의 상당 부분이 ‘어떻게 하면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식에서 채소라고 하면 조리하지 않은 채 생으로 먹는 경향이 있는데, 채소를 잘 익히면 농축된 맛이 난다. 채소를 맛있게 요리하는 요령들을 최대한 많이 소개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꼭 따라서 했으면 하는 레시피는 무엇인가?
책에 소개된 방법으로 달걀을 삶아보면 좋겠고, 가지 손질법도 따라해 보셨으면 한다. 물컹한 식감때문에 가지를 싫어하는 분이 많은데 잘 손질하면 정말 맛있는 채소다.
‘맛’에도 객관적 담론이 필요하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가족이 먹을 음식을 해서 가져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음식이라는 게 늘 만드는 사람만 만드나 싶어서 마음이 불편했다. 굳이 집밥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15쪽)”고 썼다. 집밥의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집에서는 어머니를 제외하면 나만 요리를 한다. 한식은 굉장히 성편향적이다. 요리와 맛에 대한 담론도 그렇다. ‘엄마의 밥상’ ‘할머니의 손맛’처럼 여성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스스로 음식을 조리해 먹는 건 생존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문제다. 어떤 여성이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데 시어머니가 “그럼 우리 아들 밥은 어떻게 하냐”고 했다는 말들이 농담처럼 만연하지 않나. 이런 상황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 밥은 그냥 밥이다. 음식을 특정한 누군가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사회에도 부담이 된다.
‘할머니의 손맛’이라는 표현처럼 ‘맛’은 주관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 객관적인 맛의 담론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면처럼 대량생산해서 판매하는 음식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호소를 하기 위해 맛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외의 일상적인 음식에서는 맛에 대한 평가를 잘 안 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15년 가까이 음식평론가로 일했지만, 굉장히 넘기 어려운 벽이다. 외국에는 음식을 평론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운데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음식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차원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
음식 평론을 할 때 지키는 원칙은 무엇인가.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먹기(웃음). 그리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평가하지 않는 게 정말 중요하다. 어떤 이유로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면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요리책을 번역할 때도 애로사항이 있을까?
어디까지 한국어로 옮겨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제일 어렵다. 경계선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느 순간부터 ‘식초’를 ‘비니거(vinegar)’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떤 요리책에는 ‘저민다’는 표현을 ‘슬라이스(slice)’라고 쓴다. 한국어에도 요리에 대한 수많은 어휘가 있는데 외국어가 업계의 표준처럼 굳어질 때 아쉽다. 내가 한국어로 번역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적합한 한국어 표현을 찾는 데도 오래 고심하는 것 같다. 『실버 스푼』을 번역할 당시, 소금의 단위 ‘Pinch’를 ‘꼬집’이라고 하기엔 적절치 않게 느껴져 ‘자밤’이라는 단어를 찾아 번역했다는 일화가 책에 실렸다.
‘소금 한 꼬집’이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고, ‘소금 적당량’은 명확하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담당 편집자가 ‘자밤’을 찾아줬다. ‘나물이나 양념 따위를 손가락을 모아서 그 끝으로 집을 만한 분량을 세는 단위’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이다. 이렇게 더 나은 어휘를 찾다 보면 답이 있다. 번역은 결국 도착지점이 있는 일이고, 그 도착지점으로 가기 위해 상응하는 한국어가 대부분 존재한다. 요리책을 번역하면 할수록 음식을 안 해본 사람들이 번역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만, 번역은 쉽지 않다. 번역은 옮긴 언어의 발이 땅에 닿는 게 중요하다.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어떤 계기로 음식평론을 하게 됐나?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의 한 건축회사에서 일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 일을 계기로 한국에 돌아와 지내면서 충동적으로 글을 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몇 년째 블로그에 음식 관련 글을 쓰고 있던 상태였다. 이력서와 몇 편의 글, 미국에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의 번역 기획안 등을 만들어 출판사와 잡지사에 보냈고 그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최근 다녀온 음식점 중, 추천해줄 만한 맛집이 있다면?
연남동 ‘연교’에서 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만두는 사실 어려운 음식이다. ‘소’와 ‘피’가 분리되는 경우가 많은데, 연교는 그렇지 않고 딱 적당하게 익힌 만두를 내어준다. 강서구에 ‘오복순대국’이라는 식당도 추천하고 싶다. 순댓국도 좋지만, 수육이 정말 맛있다.
“이 책이 특히 생존의 차원에서 조리에 관심을 가지려는 이들에게 닿기를 희망한다(11쪽)”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음식은 특정한 계기가 생기면 누구나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배달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바깥 음식을 먹는 건 더 이상 못하겠다거나, 삶의 기술을 익히는 차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은 분들이 있을 텐데, 요리 초보자의 입장에서는 출발점을 잡기가 어렵다. 레시피에는 써있지 않은 정보가 많아서 행간을 읽는 게 중요하다. 보통 레시피는 읽는 사람이 음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거라고 전제하고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전에 이 책을 읽는다면 훨씬 요리와 친숙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는 에세이이면서 요리의 기초를 다지는 이론서 같기도 하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길 바라나.
책을 읽고 음식을 하지 않아도 좋다. 당장 몸이 움직이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기를 바란다. 그저 책을 덮고 ‘마트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성공이다.
*이용재 음식 평론가, 번역가. 한양대학교에서 건축 학사,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에서 건축 및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고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 tvsdesign에서 일했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온 한편, 『한식의 품격』, 『외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미식대담』, 『조리 도구의 세계』, 『식탁에서 듣는 음악』을 썼으며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인생의 맛 모모푸쿠』, 『철학이 있는 식탁』, 『식탁의 기쁨』, 『모든 것을 먹어본 남자』 등을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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