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융 “책 읽고 여행할 때는 나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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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서 있음’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비엔나의 아름다운 광장에서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나’의 행복을 찾는 중이었다. 그 비일상적인 행복이 좋았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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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행복은 장소가 아닌 내가 만든다고 믿는 사람. 소설가이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대학교 한국문학 교수인 강병융이 책을 들고 유럽의 거리를 걸었다. ?『도시를 걷는 문장들』 은 강병융 저자가 유럽을 여행하며 틈나는 대로 읽고, 커피를 마시며 ‘일상의 행복’을 누린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떠나서 읽음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의 시선을 거쳐 22개의 책과 도시가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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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성남 ‘좋은 날의 책방’에서 ?『도시를 걷는 문장들』? 북토크가 열렸다. 여행, 독서, 그리고 강병융.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모인 독자 10여 명이 책방 곳곳의 자리를 채웠다. 독자들과 둘러앉은 강병융 저자는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여행과 독서를 주제로 독자들과 질문하고 답하기를 거듭하며 북 토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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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어 생각하는 행복한 일
한국인이 여행을 주저하는 이유는 뭘까. 강병융 저자는 “많은 한국인이 시간과 돈 다음으로 언어를 걱정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려는 강박감이 두려움을 낳고 이 때문에 여행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더 의식하는 태도를 꼬집으며 그는 “’외국어 못하면 좀 어때?’하는 마음으로 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또 다른 이유로 ‘경계’를 꼽고 “한국 사람들은 경계 안에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 엄마, ‘우리 가족과 같은 한국인 특유의 표현이 이러한 특성을 나타내고, 경계를 넘는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어 여행을 망설이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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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역이 없습니다. 모스크바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어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 부산역이 있는 거예요. 낯설지 않나요? 유럽 사람들의 생각은 종착점에 닿아 있어요. 이름을 지을 때 기차역의 위치가 아닌 종착지에 방점을 찍죠. 이름이 곧 정체성인 ‘비엔나로 가는 길’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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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주로 상업 영화를 본다고 밝힌 강병융 저자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본 알라딘과 분당에서 본 알라딘은 다르다”며 “여행을 소환할 수 있는 나만의 장치를 만들라”고 권했다. 이에 더해 “여행은 멈춰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고 멈추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며 멈춤을 동반한 자기만의 여행법을 찾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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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멈추는 걸 두려워해요. 가만히 있는 걸 힘들어하죠. 그러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없고 행복이 뭔지도 몰라요.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이 내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살죠. 독서와 여행을 하면서 멈추고 내 방식대로 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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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좋은 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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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틀에서 빠져나와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를 위한 여행과 독서에 더욱 집착했다. 그것이 우리에서 벗어나 나를 가장 온전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이기에(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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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가져갈 책을 고를 때 읽기 편한 책, 읽었던 책을 가져간다고 밝힌 강병융 저자는 “책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TV 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보다가 재미없으면 안 보지만,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며 독서에 관한 여러 가지 편견이 우리가 ‘나답게’ 책을 읽는 것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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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대단함을 내려놓고 빵 고르듯 책을 골랐으면 좋겠습니다. 빵을 살 때 최저가를 찾아서 비교하고 사지는 않잖아요. 그냥 지나가다 들러서 빵을 사는 것처럼 책도 그렇게 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를 만드세요. 그것을 구심점 삼아 내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뻗어 나가는 게 중요해요. 여기에 독서 모임 같은 외적인 네트워크도 갖추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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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여행에는 가벼운 시집 한 권이 제격이다. 나는 가난하지만 여행을 사랑하고, 여행만큼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소설을 끔찍이 사랑하지만 잠시 소설은 사치라고 믿어버리고, 시와 함께 떠나는 것이 진리라고 믿어버리자.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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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좋은 책, 좋은 독서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뒤 강병융 저자는 그가 강조한 대로 이기적으로 생각하여 얻은 자신만의 답을 소개했다. 그의 기준은 ‘나’. 내가 좋아하는 책이 좋은 책이고 내가 좋아하는 여행, 좋았던 여행이 ‘좋은 여행’이다. 그는 좋은 독서의 기준을 친한 친구에 비유하며 “친한 친구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지 못한다면 이상하지 않나. 여행도, 책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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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인간관계는 비슷합니다. 상대와 얼마나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 진심으로 공감하는지가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듯 독서도 그렇습니다. 인간관계에 가장 꼴 보기 싫은 유형이 뭔가요? 잘난 척하고 인맥 자랑하는 사람 아닌가요? 마찬가지예요. 책을 읽을 때도 많이 읽는 것보다 한 권이라도 깊고 정확하게 읽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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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질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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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부모가 직접 책을 보는 방법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아내와 제가 책을 봅니다. 물론 아이들이 바로 보지는 않겠죠. 그리고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아이들이 책을 안 읽으면 안 읽는 대로 둬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이런 믿음이 있는데요. 처음에 소설에 대한 인식이 어땠나요? 우리가 지금은 소설이라고 하면 책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만, 사실 소설이라는 단어에는 ‘하찮다’는 뜻이 있잖아요. ‘대설’이 아니고 ‘소설’이잖아요(웃음). 이런 것처럼 지금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들도 과도기에 있을 뿐 시간이 흐르면 소설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냥 두고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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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행 에세이를 쓸 계획이 있나요?
저는 소설가이기 때문에 에세이를 많이 쓰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제가 이런 대답을 했어요. 저에게 소설가의 모습이 있고 또 다른 편에는 수필가의 모습이 있다고요. 예를 들면 ‘헐크’ 같은 거예요. 변하기 전에 헐크, 변한 후에 헐크. 변하기 전에 헐크는 박사죠. 수필가의 모습이에요. 에세이는 누군가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책, 딸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소설은 선물하면 싸움 나는 책, 부모님이 걱정하는 책이에요. 사실 ?『도시를 걷는 문장들』 은 기획물입니다. 제가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획되었고, 할 수 있었을 뿐이에요. 제가 여행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여행에 관하여 쓴 이유는 각자의 여행을 하기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여행 에세이를 쓸 생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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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쓴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언제 쓰인 글인가요?
『도시를 걷는 문장들』 은 모 인터넷 서점에서 운영하는 웹진에 2년 동안 연재한 글을 묶은 책입니다. 연재한 내용을 보고 한겨레에서 계약하자고 한 건데요. 2년 동안 한국의 여러 상황이 바뀌기도 했고, 일관성이 느껴지도록 현재 시점에 맞게 다시 편집했어요. 고은 시인의 이야기가 대표적이죠. 순서와 상관없이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편히 읽을 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렇게 느끼셨을 거고, 그렇게 느껴지도록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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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했는데 최근 들어 의욕이 줄었습니다. 여행하게 만드는 동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일에는 부침이 있죠. 그럴 때는 그냥 안 해도 괜찮아요. 여행 말고도 재미있는 게 많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다시 하고 싶을 때가 온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책은 비교적 부침이 덜한 것 같아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지식이고, 끝없이 확장이 가능하니까요. 반면 여행은 아우라가 중요하잖아요. 원본이 가지는 특별한 힘이요. 사실 책은 아우라가 중요하지 않죠. 초판이든 2쇄는 비슷하니까. 근데 여행은 달라요. 여행만큼 아우라가 중요한 게 없죠. 그러니까 언젠가 다시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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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는 문장들강병융 저 | 한겨레출판
유럽의 곳곳을 느긋하게 방황하고 아무 골목에나 앉아 책을 읽고 치열하게 생각을 정리하며 소중한 행복을 느끼던 소설가 강병융이, 이제 우리에게 소소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에 대해 살며시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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