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뉴욕과 파리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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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지내고 있는 친구가 파리에 오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살면서 가장 가까이 지내며 많은 대화를 나눈 친구였다. 내가 파리에 유학을 오면서 그 이후로 딱 한 번 서울에서 짧게 얼굴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향했다. 패션 전공으로 파리로 가겠다는 꿈을 가졌던 친구였다. 프랑스어를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며 어학 시험을 보았지만, 2008년 가을 갑작스레 찾아온 리먼 쇼크는 큰 충격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1유로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침마다 크루아상과 바게트를 살 때면 대수롭지 않게 내밀던 1유로짜리 동전을 주머니 안에서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동전 하나가1800원이 넘는다는 생각에 주머니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고는 했다. 집 근처 빵집에 들르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빵집 앞 골목 가득 퍼지는 버터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학비가 비싼 의상 전공을 목표로 하는 이에게는 더욱 부담스러운 변화였다. 게다가 프랑스어는 생각만큼 쉽게 느는 언어가 아니기도 했다. 따로 어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뉴욕에 간다며, 친구는 설렘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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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대에 만나 서로의 꿈, 좌절과 소소한 성취를 모두 함께 나눈 사이였다. 어느 해 가을, 뉴욕에 불어닥친 태풍 샌디는 기세가 대단했다. 단어 그대로 재앙이 지구에 닥친 형상이었다. 며칠간 친구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나는 실시간으로 미국발 기사를 검색했다. 뉴스 동영상을 연달아 클릭하다 보니 어느덧 새벽이었다. 절망과 무력함은 몸의 통증으로 다가왔다. 심장이 오그라든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길을 걷다 보면 자꾸만 몸이 아래로 꺼지는 것 같았다. 갓 출시된 스마트폰 덕분에 서로가 연락하는 것이 수월해 졌다고 좋아했던 것이 엊그제였다. 막상 전기와 통신망이 끊기고 나니 스마트폰은 전혀 스마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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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락도 닿지 않은 채 며칠이 흘러갔다. 아무일 없겠지, 하면서도 얇은 습자지를 잔뜩 뭉쳐 구긴 것처럼, 심장이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전기, 물, 전화, 인터넷이 없는 도시라니. 그간 애써 쌓아온 일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을 것이었다. 그냥 파리로 유학 오라고 할걸, 하는 후회는 무용한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타국에서 혼자인 친구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혼자 지내는 삶의 무게에 나는 얼마쯤 익숙해 있었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살면서 이유 없이 전기가 끊긴다거나, 인터넷 박스가 먹통이 된다거나,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사건들이 닥치고는 했다. 새카만 방에서 초를 켰고, 와이파이가 잡히는 카페와 바를 전전했고, 생수를 끓여 머리를 감으며 버텼던 나날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닥친 재난 상황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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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통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친구는 답이 없었다. 메시지가 과연 도착이나 하는 걸까, 의문마저 들었다. 이메일, 아이메시지, 왓츠앱… 일반 전화조차 먹통이 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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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 대서양을 사이에 둔 채로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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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서야 걱정 말라는 짤막한 메시지가 왔다. 열흘 가까운 시간이 더 흐르고, 우편함에는 뉴욕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태풍의 여파로 전기가 다 끊긴 상태에서 촛불을 켜고 쓰는 중이라면서 친구는 태풍 덕에 우리가 오랜만에 손편지를 쓴다, 고 편지를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친구의 성공을 빌며 선물한 만년필에 잉크를 채웠다고, 이어진 편지는 10장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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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메시지로 주고받던 것과는 다른 밀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친구는 냉장고가 작동하지 않으니 우선 상하기 쉬운 재료부터 하나씩 먹고 있다고, 굶고 있는 건 아니니 걱정 말라며 오히려 냉장고와 냉동실에 쌓여 있던 식재료들을 비우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주고받던 손편지를 이렇게 쓰는 것도 오랜만이라 좋다고 했다. 환한 형광등 대신, 낮이면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느끼고 밤이면 촛불을 켜는 것이 세상을 다르게 보게 한다며, 새로운 경험이라고 했다. 평상시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햇빛에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고 있으니 경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촛불 아래 만년필을 손에 쥐고 있으니 지금까지 정신 없이 스스로를 몰아치며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스쳐 간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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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문장은 담담하고도 간결했다. 이런 생각들을 했구나, 미처 모르던 속내가 담겨 있는 문장들이었다. 역대 최강의 태풍이 휘몰아치면서 모든 것을 다 무너뜨려 버렸지만, 친구는 예기치 못한 재난을 마주하고도 절망하지도 겁먹지도 않은 듯 의연했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학교를 마쳐도 여자와 동양인이라는 조건은 어디서든 유리하지 않았다. 이방인으로서 남들보다 얼마나 더 많이 애썼을까. 씩씩하고 밝은 내용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그 너머가 헤아려졌다. 기회의 땅에서 꿈을 크게 꾸면서 알 만한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기까지 친구가 보냈을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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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이라고도 불리는 현실의 벽과 불리한 조건들.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고, 더 잘해야 하고, 더 부지런하고, 더 꼼꼼하며, 더 업무에 몰입한 모습이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잔뜩 긴장한 채로 스스로 쓸모 있음을 끝없이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들을 지나온 친구의 고백을 읽다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채로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있지만 아무도 의지할 것이 없는 곳에서 그 사회의 일부에 포함되고자 갖은 애를 쓰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크게 다르게 살지 않는구나. 생각하니 자꾸 눈앞이 흐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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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속 대서양을 사이에 둔 채로 살아갈 것이다. 친구는 숨가쁜 일상 속에서 카네기홀이나 메트 오페라의 포스터에서 내가 인터뷰한 음악가들의 이름이 얼마나 반가운지 말한다. 나는 생토노레, 생제르망 데프레의 골목을 천천히 걷다가 의류 매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쇼윈도 안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유명 디자이너의 타계 소식이 들려오면 슬프고 안타까운 애도의 마음이 일고, 의상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에 들러 주말 오후를 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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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매혹시키는 세계의 일부와 마주했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잠시 응시하다가 돌아오는 시간은 마치 다른 도시에 있는 친구를 눈앞에서 만난 것 같은 반가움, 설렘과 충만감을 선사한다. 친구 역시 공연장이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에 이윽고 나를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서로를 생각한다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으나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도시 사이의 시차도 별것 아닌 것 같다.


더위를 견디며 이브 생로랑의 영화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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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로랑베르트랑 보넬로 / 가스파르 울리엘, 레아 세이두, 루이스 가렐 | 나연미디어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전성기 시절 화려한 컬렉션과 의상들을 만나볼 수 있는 세련된 패션영화일 뿐만 아니라 언제나 아름다움을 갈망했던 천재 예술가의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았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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