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랑받는 배우,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의 박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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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뮤지컬 <라흐마니노프> 가 3월 14일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개막합니다. 2016년 초연돼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2인극으로, ‘보칼리제’, ‘피아노 협주곡 2번’ 등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가 라흐마니노프가 겪어야 했던 오랜 슬럼프와 당시 그를 치유한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삼연까지 무대를 구축해온 든든한 초연 멤버들이 아닌 새로운 6명의 배우가 또 다른 라흐마니노프와 달 박사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라 더욱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워낙 사랑받았던 작품인 만큼 바통을 이어 받은 배우 입장에서는 부담감도 클 텐데요. 오랜 슬럼프를 딛고 요즘 그 어느 배우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곧 라흐마니노프로 무대에 설 박규원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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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제 실력이 부족했던 거겠죠. 그런 부족한 경험들이 쌓여서 감사하게도 지금은 많은 작품을 하고 있고. 요즘 저한테 언제 쉬느냐고 많이 물어오시는데, 35살까지 많이 쉬었으니까 지금은 많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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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최후진술> 앙코르 공연 이후 연이어 무대에 서고 있는 만큼 힘들 법도 한데, 박규원 씨는? <라흐마니노프> 의 개막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무대에 서고 싶고, 잘하고 싶어요. 첫 장면이 3년째 은둔 중인, 곡이 안 나와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인데. 모든 인물을 구현할 때는 ‘나라면 어땠을까’에서 시작하잖아요. 저도 작품이 없어서 오랫동안 쉰 적이 있고, 그때 내 모습은 어땠을까... 일단 예민하고 날카롭고,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기 바라지 않았을까. 그런 걸 잘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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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잖아요. 라흐마니노프는 익숙한 음악가인가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들에게 더 익숙하죠. 러시아 가곡이 있지만 국내에서 많이 불리지는 않거든요. 이태리나 독일 가곡을 많이 접하고, 요즘은 미국 가곡도 많이 하니까. 하지만 클래식 음악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도 있고,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쳐서 곡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 작품을 더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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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연주하는 장면도 있는데, 원래 피아노를 배웠으면 큰 부담은 없겠네요.
예고를 나왔는데, 처음에 피아노과로 준비했어요. 중 3때까지는 친 거죠. 그런데 노래 부르는 게 더 좋아서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에서도 성악을 전공했어요. 이번에 라흐마니노프 곡을 다시 연주하는데 어렵더라고요. 원래 손이 커서 그분이 작곡한 음악을 일반 사람이 구현하는 게 물리적으로 힘들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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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에 성악까지, 예술가의 삶을 뮤지컬로 잘 만드는
HJ컬쳐와 박규원 씨의 연결 고리가 많아 보이는데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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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의 갈릴레이도 그렇지만,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 남다른 부담이 있죠?
인물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있으니까 ‘이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볼 것인가, 나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할 것인가’ 많은 배우가 고민하게 되죠. 그런데? <라흐마니노프> 는 그것과는 다른 부담이에요. 라흐마니노프라는 인물 자체는 대중이 잘 모르지만,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는 관객들이 명확히 알고 있고, 삼연까지 같은 배우들이 구축해 놓은 게 있잖아요. 그분들이 연기해서 사랑받았고, 저는 최선을 다해도 분명히 다를 테니까... 그런 부담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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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에 대한 두려움은 없을 것 같네요. 워낙 많이 하셨잖아요.
어떤 극을 하든 떨지 않았던 적이 없고, 부담이 없었던 적도 없어요. 작품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있는데, 시스템적으로는 익숙해진 면이 있죠. 2인극을 4~5개 작품을 하다 보니, 혼자 어떤 장면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은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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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극은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세 명의 달 박사는 친숙한 분들인가요?
세 분 모두 인연이 깊어요. 일단 유성재 배우님은 <최후진술>을 쭉 같이 했고, 정민이 형은 워낙 유명한 배우라 제가 연기 시작할 때부터 롤모델이었고요. (임)병근이 형은 서울예술단 시절 지방공연 룸메이트였어요. 예술단을 통해 뮤지컬을 처음 접할 때라 병근 선배님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죠. 당시 (김)도빈이 형, (박)영수 형, (조)풍래 형 등과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덧 스타가 됐잖아요. 나도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싶다는 큰 목표가 있었는데, 작년에 <미아 파밀리아>를 함께 공연했고, 이번에 병근 선배님도 만나게 된 거예요. 정말 신기하고 기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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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과 활동 시기가 같으면 배우로서는 늦게 두각을 드러낸 거네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그렇죠. 앙상블 등으로 계속 공연을 하고 있었고, 노래를 전공했으니까 기회를 주려던 분들도 있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 기회를 못 잡은 것 같아요. 솔직히 2년 전만 해도 여수에서 카페나 편의점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공연을 하면서 2~3달 머문 적이 있는데, 표면적인 이유는 그때 여수가 좋아서, 속마음은 공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려고 했죠. <최후진술> 초연 때까지만 해도 (양)지원이는 주목을 받았지만, 저는 5개월 뒤 앙코르 들어갈 때까지 별다른 소식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접을 생각이었고, 마지막 공연이니까 ‘마음껏 즐기자’라는 마음이었는데, 그게 오히려 편안하게 보였나 봐요. 극장을 옮겨서 똑같은 작품을 하는데, 1~2주 만에 제 손에 대본 10개가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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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작품에서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겠네요. 박규원 씨에게 달 박사 같은 존재는 없었나요?
지금의 아내요. 당시에는 여자친구였는데, 제 목소리가 미성이라서 배우 생활을 포기하려던 면도 있었어요. 미성은 어린 느낌인데 제 나이는 더해지고, 그 차이가 커질수록 무대에 서기 더 힘들겠다는 판단을 스스로 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장점이었던 예쁜 목소리를 원망하게 됐는데, 여자친구가 ‘오빠의 목소리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고 말했어요. <라흐마니노프> 대본을 보면서도 그 생각이 났고, 달 박사가 ‘나는 사랑 받는 음악가입니다. 새로운 곡을 쓰면 관객들이 나를 사랑해줄 겁니다.’라고 알려주는 대사를 읽고 울었어요. 저 역시 제가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이 작품은 그냥 대본만 읽어도 힐링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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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배우로서 사랑받게 돼서 힘든 점도 있을 법한데요.
글쎄요. 좀 늦은 나이에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급성장’ 하다 보니, 피드백도 그만큼 많이 받는 것 같아요(웃음). 제가 더 열심히 해야죠. 개인적으로는 유일한 취미생활이 여행과 야구 보는 거였는데, 요즘은 둘 다 못하고 있더라고요. 코인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는데, 공연 안 할 때는 목을 쉬어야 하니까 이것도 못하고. 어찌 보면 꿈을 이룬 대신 가장 좋아하는 걸 못하게 됐죠. 저도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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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한동안은 그 취미생활을 접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도 많은 공연을 하게 될 텐데, 남다른 ‘자기 최면’이 있나요?
‘최대한 즐겨보자’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그러다 보니 자꾸 뒤를 생각하게 되고. 지난 걸 생각하지 않으니까 연기하는 게 좀 편해진 것 같아요. 물론 무대 밖에서 더욱 노력해야죠. 그만 하려던 일을 요즘은 ‘이게 가능한 스케줄인가’ 싶게, 인생의 보너스처럼 하고 있잖아요. 무대에서 정말 행복하거든요. 제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도 기분 좋게 관람하실 수 있도록, 그런 역량 있는 배우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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