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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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아가씨여,
우리 헤어지기 전에 돌려주오.
오, 내 마음 돌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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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는 연인에게 훔쳐간 내 마음을 돌려달라던 이 스윗한 남자는 누구일까? 바로 영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이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워대, 참다못한 아내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때 엄마 품에 안겨 집을 나온 뒤 외갓집에서 자란 아이가 『프런티어 걸들을 위한 과학자 편지』 첫 번째 주인공, 에이다 러브레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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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다의 어머니는 딸이 아버지의 초상화를 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엔 이혼하면 아버지가 양육권을 가져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바이런은 오히려 아내가 딸을 데려간 것을 반기는 듯했다. 딸을 찾아오지도, 양육비를 보내지도 않은 채, 오지랖 넓게 이웃나라 그리스까지 가서 그리스 독립운동을 하며,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그 여인들 중에는 이복누이도 있었으니, 바람기 성향이 정말 다분했던 듯하다. 에이다의 어머니는 전남편을 미워했고, 딸이 아버지를 닮아 감정에 휘둘리는 시인이 될까봐 걱정했다. 그래서 에이다가 네 살 때부터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배우도록 했다.
여자들은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던 시절, 이런 교육이 가능했던 것은 에이다의 외가가 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진 귀족 집안이었던 덕분이다. 아무튼 에이다는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에이다는 아버지 바이런만큼이나 언어를 다루는 데 천재였다. 그런데 그 언어는 다행히도 어머니가 걱정했던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여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데 썼던 시인의 언어가 아니라, 거대한 계산 기계에 명령을 내리는 데 쓰이는 아주 논리적인 언어였다. 또한 에이다의 어머니가 그토록 어린 딸에게 심어주려 했던 논리적인 사고가 찰스 배비지란 수학자를 만나면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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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유명한 학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였던 찰스 배비지는 어느 날 자신의 집 창고에 귀족들을 불러모았다. ‘차분 기관’이라는 자동 계산기의 모형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에이다도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갔고, 증기엔진으로 움직이는 계산 기계를 보고 큰 흥미를 느꼈다. 대부분 귀족들은 어렵기만한 배비지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구리와 철로 된 기계가 저절로 움직이는 모습을 신기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에이다는 달랐다. 기계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했고, 자신이 새롭게 탐구할 영역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그날 이후 배비지와 에이다는 나이차와 성별을 뛰어넘어 수학과 발명에 대해 토론하는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차분 기관’과 그 뒤를 이어 발명된 ‘해석 기관’에 대해 토론하며. 거의 유일하게 서로의 말을 알아듣는 파트너였다. 1833년 배비지는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해석 기관’의 설계도만 겨우 완성했다, 이제 이 기계의 훌륭한 점을 널리 알려 제작비를 모아야 했다. 마침 이탈리아의 한 수학자가 해석 기관에 대한 논문을 프랑스어로 발표했고, 배비지는 에이다에게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 논문을 읽고, 제작비에 투자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에이다는 논문을 번역하면서 본문의 세 배에 가까운 주석을 첨가했다. 입력된 명령을 기억했다가 아주 복잡한 계산도 재빨리 하는 해석 기관의 무한한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석 기관은 오늘날 컴퓨터로 치자면, 중앙처리장치와 기억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에이다가 특히 주목한 점은 이 기계가 답을 얻을 때까지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고, 조건에 따라 가장 알맞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늘날 컴퓨터 연산에서 쓰이는 ‘if’나 ‘or’와 같은 계산까지 가능한 기계였다.
에이다는 해석 기관을 통해 ‘베르누이 수’를 구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도표로 그려 주석에 첨가했다. 해석 기관 속에서 복잡한 계산이 이루어지는 알고리즘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준 이 부분은 오늘날 세계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에이다는 해석 기관에 입력하는 명령을 통해 계산 장치와 기억 장치를 적절히 움직이면, 계산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도 처리할 것이라 주장했다. 작곡도 할 수 있고, 날아다니는 기계나 배의 설계도도 그릴 수 있으며, 음악이든 문자든 숫자로 바꾸어 나타낼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이든 다룰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적절한 알고리즘으로 프로그램을 잘 짜는 것이 해석 기관을 움직이는 핵심이고, 그 핵심을 공략하면 괴물처럼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만능기계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배비지는 해석기관을 완성하지 못했고,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계를 위해 프로그램을 짰던 에이다의 혁신적인 생각 역시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암호문을 풀기 위한 초기 컴퓨터가 개발되기까지는 말이다.
200여 년 전에 죽은 에이다를 다시 소환해 낸 사람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었다.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옛 자료를 들추던 튜링은 누구보다 빨리 에이다가 짠 최초의 프로그램이 지닌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 힌트를 얻어 미래의 컴퓨터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공지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에이다 러브레이스를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키운 힘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다면,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으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에이다 곁에는 남편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어머니 밀뱅크 여사가 있었다. 그녀가 보여준 자유롭고 당당한 이혼녀로서의 삶과 적극적인 교육이야말로 에이다에게 더 없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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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걸들을 위한 과학자 편지유윤한 저 | 궁리출판
세계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에이다 러브레이스부터 아프리카의 종교와 문화를 연구한 탐험가 매리 킹슬리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여성 과학자들을 선정하여 그들의 감동적인 삶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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