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 “4200km를 완주한 단 하나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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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사람들은 ‘나’를 찾고 싶어서, 생각할 시간을 갖고 싶어서 길을 걷는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걷기와 길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열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5배나 되는 길이의 길이 있다고 한다. 바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멕시코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걷는 이 길을 완주한 여성이 여기 있다.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에는 조금 더 솔직한 내 모습을 마주하고 싶어 걷고 또 걸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길을 걸어낸 이수현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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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줄여서 PCT를 걸어낸 이야기죠. 4,300km나 되는 길이라고 하는데, 독자분들은 생소할 수 있으니 어떤 길인지 소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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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장거리 하이킹 중 3대 하이킹이라 불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AT(The Appalachian Trail), PCT(Pacific crest trail), CDT(Continental Divide Trail)인데 그중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태평양 연안의 산맥을 따라 4,300km 걷는 하이킹입니다. 사우스캘리포니아, 하이시에라, 노스캘리포니아, 오레건, 워싱턴 총 5개의 주를 넘어 캐나다에 도착하는 하이킹 코스예요. 국내에 잘 알려진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5배에 이르죠. 길을 모두 걷는 데에 6개월이 걸리고, 주를 넘을 때마다 시시각각 계절이 바뀌어요. 종일 사막을 걷는 날도 있고, 한동안 매일 산과 강을 건너는 날도 있고요. 야생 그 자체라고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저는 먹을 것과 물, 텐트를 등에 지고 눈과 비 온갖 자연을 뚫고 걷는 그 길이 어쩌면 고된 수행의 길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어떻게 길을 걷기로 마음먹으셨는지가 궁금해요. 가늠도 안 될 정도로 무척 긴 거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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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T 하이커가 되기 전에 가난한 배낭여행자였어요. 23살에 대한민국을 떠나 세계여행을 하고 있었죠. 매일 신날 것 같지만 2년째 되던 해 여행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죠. 그즈음, 자전거 여행을 하는 부부를 만났는데 그들이 PCT의 존재를 알려줬어요, 제게 보여준 길 사진 한 장에 이 길을 걸어야겠다는 운명적인 직감이 온 거예요. 사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채워지지 않던 욕망이 있었는데 바로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거였어요.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주인공처럼 길 위에서 자유를 얻고 싶었죠.
제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이점은 무언가를 실천하기 위해 변명을 줄이게 됐다는 거예요. 조금 더 추진력이 생겼달까요? 덕분에 변명 없이 길 위에 서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실 책 첫 장에 나와 있듯이 길을 잘 몰라서 생겼던 무모한 용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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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이킹 여행도 그렇고, SNS를 보아도 작가님 여행 스타일은 다른 여행 크리에이터분들과 확실히 다른 것 같은데요. 보통 어떤 여행을 선호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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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여행 스타일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히피’예요. 일상에서 잘 드러내지 못한 자유로운 모습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실현하는 짜릿함을 좋아합니다. 사나운 도시의 건물보다는 나무와 강이 있는 자연을 추구하는 편이고요.
책을 보면 PCT 길 위의?매 순간이 인상 깊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어요. 돌아와서 유독 오래도록 생각나는 장면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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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의식주가 완전히 충족될 때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저도 오랜 여행 끝에 한국에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식사를 할 때, 텐트가 아닌 천장을 바라보며 잠이 들 때, 바짝 마른 옷가지를 입을 때가 안정감이 느껴져서 좋아요. 하지만 날것의 모습이라 사랑했던 길 위의 순간들을 돌아보면 또 다른 행복을 느끼게 돼요. 지극히 평범한 지금의 날들과 정반대인 그 당시에 평범했던 일상이라고 여겼던 날들이요. 매일 스리라차 소스에 밥을 말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난 후 마셨던 물 한잔, 무서운 산속에 나 혼자 잠이 들 때면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 한바탕 내리는 소나기를 맞고 몸을 덜덜 떨며 마시던 코코아 한잔과 같은. 그때는 불편했던 일상이 가끔 모닥불의 잔향처럼 은은하게 제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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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다녀온 뒤에 이것만큼은 달라졌다, 싶은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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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녀와서 취향에 대한 확고한 고집이 생긴 것 같아요. 저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됐기 때문이죠. 여행은 사람들과 함께하기도 하고, 때로는 외로운 길 위에서 고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해요.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모이고, 혼자만의 시간에서 내가 어떤 걸 그리워하고 있는지에 대한 작은 단상들이 모여 저에 대해 차근차근 알게 되는 거죠. 그 때문에 여행을 다녀와서 제가 어떤 것을 하고 싶고,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에 대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그 길이 너무 어려워서 사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저 자신이 종종 빛나 보여서 묵묵히 걸을 힘으로 삼곤 해요. 그리고 취향에 대한 고집이 아집이 되지 않도록 늘 배우려는 자세를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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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작가님은 또 걸을 계획이 있으실 것 같네요. 다음으로 걷고 싶은 길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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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티베트를 걷고 싶어요. 티벳인들은 카일라스 산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신체의 다섯 부위를 차례로 땅에 대고 절하는 수행 방법인 오체투지를 합니다. 카일라스 산 자체를 신처럼 여기거든요. 전 그 산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 풍경을 보며 매일 걷고 싶어요. 신성한 그 길을요.
그리고 제가 아직 걷지 않은 미국 3대 트레일 중 AT와 CDT도 걷고 싶어요. 3곳을 모두 걷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해 꼭 트리플 크라우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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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PCT를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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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청춘이 걸었으면 합니다. 나이에 국한되지 않고, 열정과 용기가 있는 모든 분이요. 물론 지켜야 하는 일상이 있기 때문에 6개월을 온전히 걷기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인생에 한 번쯤 어떤 수식어 없이 오로지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 길을 추천해 드립니다. PCT는 인생의 작은 축소판 같거든요. 때로는 건조한 대지를 걷기도 하고, 때로는 매일 오는 비에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어떤 날은 푸르고 싱그러운 풀밭을 걷기도 하고요. 마치 우리 인생처럼요. 그 위에서 온전한 자신을 만나고 싶은 분들 모두 그 길을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야생이기 때문에 사전에 잘 준비를 해간다면 말이죠! 자유로운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우리가 만나길 바라며, See you on the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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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현
1992년 경기도 평택 출신. 현재 홍제동에 살고 있지만 몇 년 동안 여행을 하며 나름 전 세계에 나만의 은신처, 고향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까 필연적인 고향이 아닌, 선택과 우연으로 머문 곳들을 상상하며 버티고 삶을 설계한다. 기억을 토대로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 진짜였던 세상이 거짓말 속으로 들어와 다시 또 세상을 만드는 일이 대단하다고 느껴 최근에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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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솔직해졌다이수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다양한 계절을 맞는 길에서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감정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스스로 한 뼘 만큼은 자란 여정이 아닐까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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