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 “타인의 상처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문학”
“필요해서가 아니라 열정이나 그리움 때문에 자발적으로 찾아 읽게 되는 책이 있어요. 제게는 『작은 아씨들』?이 그런 책이었어요. 이 책은 제가 마음이 힘들 때, 각박하거나 위태로울 때마다 다시 찾아보게 되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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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예스24 오프라인 독서모임 북클러버 2기의 세 번째 모임이 진행되었다. 이번 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다. 『작은 아씨들』?은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를 배경으로 마치 가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전쟁에 나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마치 부인과 네 자매가 각기 다른 매력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따뜻하고 헌신적인 어머니와 여성적이고 자애로운 성격의 첫째 메그, 진취적이고 독립심이 강한 조, 자기보다 남을 더 위하는 성격의 셋째 베스와 질투심과 허영심이 많지만, 솔직한 매력을 보여주는 에이미에게 벌어지는 일상을 통해 사랑과 희망, 삶의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책이 쓰인 배경과 현재는 여성 인권을 두고 생각하는 지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선택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데 18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굉장히 급진적인 페미니즘 소설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페미니스트 엄마와 딸의 모습이 흥미롭게 보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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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러버 2기 세 번째 모임이 진행된 예스24 홍대 중고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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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와 생태주의라는 배경
『작은 아씨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가정환경과 시대적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올컷의 아버지인 브론슨 올컷은 초월주의 사상가이자 작가, 교육자였다. 올컷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상에 영향을 받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랠프 왈도 에머슨 등과 친구이자 이웃으로 지내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들은 모두 보스턴 콩코드에 살았는데, 아직도 초기 미국의 이상주의적인 분위기가 대부분 남아 있고, 여전히 월든 호수가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생태주의와 인간의 평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라면서 작가는 아버지를 인간적으로는 매우 존경했지만, 아버지로는 원망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된다. 올컷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상과 꿈을 펼치는 데 골몰하여 늘 가정에 소홀했고, 올컷의 집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어머니가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고, 루이자 메이 올컷은 거기에 대한 연민이 컸어요. 아버지의 이상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집안이 기우는 게 힘들었던 거죠. 어쩌면 그래서 『작은 아씨들』 에서는 아버지를 처음부터 전쟁터로 보내버린 걸지도 몰라요. (웃음)”
아버지에게는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어머니에게는 늘 아낌없는 존경을 표현했다. 책에 등장하는 네 자매의 어머니인 마치 부인은 실제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집안도 늘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식들을 돌보며, 강한 생활력으로 가계를 꾸려나간 어머니 덕에 가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설 속 마치 부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나무라지 않는다. 조는 자라면서 한 번도 ‘왜 여자답지 않게 구느냐’는 말을 뜨지 않았고, 내성적이고 세상 밖보다는 안으로 침잠하는 모습 때문에 걱정스럽기까지 한 셋째 베스는 ‘왜 그렇게 내성적이냐’고 비난받지 않았다. 마치 부인은 흔히 자식을 교육시키면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인 ‘비교’를 하지 않고, 자기 마음에 맞춰 자식들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에이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마치 부인은 ‘홈스쿨링’을 생각해요.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다수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식을 탓하기 마련인데, 마치 부인은 언니들이 에이미를 더 잘 가르칠 거라고 판단한 거죠. 소설 속 등장인물 중 누구도 ‘올바른 방향’이라는 걸 설정해서 이 아이들을 길들이려고 하지 않았어요. 각자의 셀프를 변형시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이 소설의 핵심적인 매력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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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독립하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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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 앞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소설 첫 장면은 네 자매의 특성을 단번에 보여준다.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냐며 투덜거리는 조와 ‘가난한 건 지긋지긋하다’며 혼자 중얼거리는 첫째 메그, 다른 소녀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의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막내 에이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도 우리에게는 가족이 있다’며 위로하는 베스의 모습은 네 자매의 다름을 여실히 드러낸다.
“네 자매의 성격이 단번에 드러나는 명장면인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라는 상징적인 날을 통해서 이들이 가난에도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을 더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이런 네 자매의 성정은 올컷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비전인 것 같아요.”
이 중에서도 조는 많은 여성의 롤모델이 되었던 인물이다. 언니가 가난으로 한탄하며 슬퍼하자 자신이 돈을 벌어 언니가 예쁜 옷과 구두를 마음껏 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실제로 극 중에서 조는 글쓰기로 돈을 벌어 가계를 돕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는 꿈을 향해 간다.
“아직 여성이 혼자서 독립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시대였기 때문에 『작은 아씨들』?의 조에 자신을 동일시하며 영향을 받은 작가들이 많았어요. 시몬느 보부아르는 ‘조처럼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극찬하기도 했죠. 조는 굉장히 힘든 상황에서 글쓰기를 통해 존재 자체의 독립을 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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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작가와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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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변화
1800~1900년대까지만 해도 루이자 메이 올컷뿐만이 아니라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샬럿 브론테 등 많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우호적이지 않은 시대였으며, ‘소녀적이고 감상적’이라고 깎아내렸다. 이는 글을 쓰는 여성이라면 피할 수 없는 평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박완서 작가나 전혜린 작가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요. 저 역시도 글 쓰면서 들어야 했던 이야기였어요. 심지어 어떤 평론가들은 ‘전혜린 작가의 글이 불완전하고 불안한 문장이 많아서 내가 고쳐줬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많은 여성 작가들이 글을 쓰면서 어떤 굴레에 갇혀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있었던 거죠.”
그래도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문학상 최종 심의에 올라가는 작가의 90% 이상이 여성이다. 글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와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이다. 문학?에세이 부분의 독자층이 여성이 많다는 점도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남성들도 『빨강머리 앤』 이나 『작은 아씨들』 같은 문학작품을 읽고,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데미안』 이나 『허클베리 핀』 처럼 남성이 주인공인 문학 작품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잖아요. 『빨강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은 읽기만 하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재미있기도 하고, 여성의 심리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풍부하기 때문에 남성들이 많이 읽고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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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
그런 조였기에 정여울 작가는 조와 바에르 교수의 연애가 탐탁지 않게 느껴졌다. 조가 더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것에 열중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하고, 메그나 에이미도 자신의 꿈을 찾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품기도 했다.
“조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작가로만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이루지 못한 것을 조에 투사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또 달리 생각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편협한 이해일 수 있어요. 페미니스트는 결혼하지 않고 싸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잖아요. 이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그들다운 모습으로 끝났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올컷은 작품을 통해 ‘셀프’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수많은 에고의 열망이 있겠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며, 사랑 이외의 것들은 부차적이라는 다. 이는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가족들 사이에서도 보인다.
『작은 아씨들』 속 마치 집안은 늘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아주 사소한 일화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눈다. 함께 있어도 전자기기로 늘 다른 곳에 접속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이는 곧 현대인이 잃어버린 가치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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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편지를 쓰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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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이야기를 마치고 정여울 작가는 『작은 아씨들』?을 읽으며 감정 이입했거나 닮고 싶은 인물을 찾아 글을 써 볼 것을 권했다. 등장인물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 참가자들은 편지로 등장인물에게 말을 걸었다.
많은 참가자가 마치 부인과 조에게 편지를 썼다. 딸들의 잘못을 그대로 지켜봐 주고, 혼자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인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아이에게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참가자가 있었고, 절대 부인처럼 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으며 웃음을 주었던 참가자도 있었다.
조에게 편지를 쓴 한 참가자는 로리와 결혼하지 못한 조에게 안타까움을 표했고, 집안의 경제 상황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던 조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다는 인사도 전했다.
에이미, 메그에게 편지를 쓴 참가자도 있었다. 등장인물이 겪은 사건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보며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떠올렸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등장인물의 상처에 공감하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문학작품을 읽는 이유이기도 해요. 융 심리학을 바로 나에게 적용하면 옷장이 한꺼번에 우르르 쏟아지는 느낌이 들면서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반면에 문학작품을 통하면 하나하나 옷을 입어보는 느낌이 들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편지를 쓰면서 자기 자신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어 말씀하신 분이 많았어요. 책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나 자신을 더 깊이 있게 보고, 몰랐던 내 마음을 알게 되는 거죠. 오늘 이 느낌을 잘 기억하시고, 좀 더 긴 글을 써보는 걸 권합니다.”
북클러버 3기는 2020년 1월부터 진행될 예정이다. 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모임은 ‘헤르만헤세 읽기’라는 주제로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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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루이자 메이 올콧 저/공보경 역 | 윌북(willbook)
새로운 매력을 선사한다. 4인 4색 개성 강한 네 자매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인물들이다. 인생에는 부침이 있고 누구나 자기만의 ‘짐’을 지고 살아간다는 어머니의 말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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