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를 혼자 남겨둘 생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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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이 먼저 터져버렸다. 여자 아이돌의 연이은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소식에 죽음을 상상할 만큼 약하지 않다고, 정서적으로 충분히 안정되어 있다고 말했는데. 단단하다고 했는데, 울어버렸다. 엄마와 힙하다는 찻집(요즘 말로는 티하우스)에 찾아가 차 두 잔과 다과 두 접시를 시킨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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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늘 걱정을 안고 산다. 모 보험회사가 걱정을 먹고 산다는 걱정 인형을 광고에 들고나왔을 때,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을 정도다. 자녀교육 책을 읽으면서 알아챈 엄마의 실수는, 자신의 불안을 자식에게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불안은 옮는다. 엄마의 걱정은 늘 우리 문제보다 세 발 앞섰다. 밭은기침만 해도 ‘목 아파? 감기니?’로 시작해 내가 어린 시절 목감기에 시달렸던 역사를 훑은 뒤 도라지 배즙을 시켜 먹으라는 잔소리로 이어지고, 조금만 힘든 내색을 해도 이마부터 짚기 시작하는 게 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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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엄마의 동력은 늘 불안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엄마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애썼다. 불안을 두려워하는 마음. 그것이 나의 동력이었다. 그게 싫어서 점점 거리를 두었다. 불안 그 자체보다는 불안의 범위랄까 방향성이 문제였음은 거리를 두고 나서야 깨달았다. 항상 엄마의 불안은 ‘나’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살아남고자 하는 걱정들. 엄마의 ‘우리’는 너무나 좁아서 그 바깥은 보지 못한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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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서 멀쩡히 사회생활 하는 자식을 보며 엄마의 만사(萬事) 염려증도 점차 잦아들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사회적으로 황망한 소식이 자주 들려오고 그에 따라 내가 며칠 침잠하는 모습을 보이면, 엄마는 안절부절못하며 다산 정약용이 술을 즐기는 아들에게 격언이 담긴 편지를 보낸 것처럼 마음이 어지러울 때 읽으면 좋은 명상 글귀 같은 글을 메신저로 보내는 것이다. 그날도 나는 불안을 두려워하는 마음에 자주 이야기를 흐렸다. “차가 맛있네.” “이게 뭐니?” “개성주악이라는 다과래. 찹쌀떡을 튀겨서 조청에 담근 거라는데 맛있네. 츄러스 같아.” “정말 맛있다. 엄마 어릴 적에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거랑 비슷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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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엄마는 확인하고 싶어 했다. “엄마는 네가 지나치게 그들에게 동료 의식을 느끼고 힘들어 하나 싶어서 걱정했어.” 나는 그 문장이 엄마 머릿속에서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알고리즘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화를 냈다. 익숙하지만 매번 진심인 화.
“지나치게 동료 의식을 느낀다는 말은 무슨 뜻이야?”
“아니, 걔네는 연예계를 선택해서 그런 일을 겪은 건데, 그렇지 않아도 되는 네가 흔들릴까 싶어서…. 그리고 매니저나 가족 같은 주변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못 챙긴 거잖아.”
“엄마는 그럼 그들의 죽음이 자신의 선택에 따른 잘못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사회적 타살을 당한 거야. 자살은 ‘죽고 싶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인데 다른 삶이 안 보여서 죽음을 떠올린 거야. 얼마나 힘들면 그랬겠어. 엄마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해? 엄마는 내가 죽었을 때 주변에서 엄마보고 딸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면 얼마나 슬프겠어? 엄마는 엄마가 하는 말이 어떤 힘을 가지는지 너무 몰라. 한창 아픈 사람들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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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다 쏘아붙이는 동안 주룩 눈물이 흘렀다. 정말 슬펐다. 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이 들었을 말과 겪었을 나날이 상상되어 자주 울었지만, 이번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울음이 나는 또 다른 이유는, 엄마가 그렇게 말한다는 건 곧 엄마 삶의 어떤 실패나 실수를 자기 탓으로만 생각한다는 말인데, 그게 너무 슬프고 속상해.”
언제야 엄마는 불안과 자책이 아닌 새로운 동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 곁에는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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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똑바로 마주하면서.
“잘못된 선택으로 힘든 적이 많았지. 하지만 정연아. 엄마는… 엄마가 잘 살아왔다고 생각해.”
그 말이 위로는 되지 않았지만… 자리를 정리한 후 가게 사장님에게 ‘잘 먹었습니다’ 소리 내어 인사하고 나올 힘을 주었던 것 같다. 어쩌면 엄마는 내 생각보다도 자신을 잘 다독이고 부쳐왔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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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 인아야. 세상에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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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자취집에 들어와서 도착했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는 앞으로 말을 조심해서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믿지 않는다. 엄마는 또 개인의 탓을 하고 말 것이다. (이건 엄마의 뿌리 깊은 불신이라서 내가 고칠 수 없다. 엄마가 넘어졌을 때, 엄마는 혼자서 일어나야만 했으니까.) 그러면 나는 또 익숙하게 화를 내겠지. 나는 엄마를 혼자 남겨둘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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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고, 친애하는백수린 저 | 현대문학
엄마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속에 차오르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감정들, 애정과 미움, 고마움과 서운함, 동경과 연민의 파고를 감당하면서 이 소설은 엄마에게 해야 할 말, 하지 않으면 후회할 그 한마디 말을 빚어내기 위해 진지하게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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