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연극 <맨 끝줄 소년>의 배우 전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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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을 무대에 옮긴 연극 <맨 끝줄 소년>? 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2015년 고 김동현 연출의 초연을 시작으로 2017년 손원정 연출이 바통을 이어받은 무대는 언제나 교실 맨 끝줄에 앉는 클라우디오의 은밀한 글쓰기와 그 글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는 문학교사 헤르만, 그 주변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위험하고도 어쩌면 일상적인 이야기다.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없는, 결국 대본의 끝줄까지 가야 그나마 고개가 끄덕여지는 무대는 조금은 섬뜩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데, 직접 클라우디오를 연기하는 배우는 어떤 느낌일까? 지난여름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를 끝내고 다시 무대에 서는 배우 전박찬 씨를 개막 전 직접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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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출연 이후 많이들 알아보나요(웃음)?


드라마를 길게 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정말 못 알아보던데요(웃음). 심지어 드라마를 본 지인 중에 ‘네가 나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드라마에서는 안경을 쓰고 슈트를 입기도 했고, 무대에서의 제 모습과 너무 달라서 몰라봤다고 하는 팬들도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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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매체 연기는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하는데, 전박찬 씨가 느끼기에는 어땠나요?


연극은 제작진과 배우들이 함께 연습을 하고 무대에서 배우뿐 아니라 관객들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면 드라마는 현장에서 당일 만난 배우와 각자 준비한 연기를 해내야 하는, 그 긴장감이 저한테는 가장 색달랐어요. 그런데 제가 인복이 있는지, 지진희 선배만 해도 처음 만난 저에게 옛날 얘기부터 시작해서 지금 어떤 고민을 하는지 많이 묻고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드라마 환경이 낯설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 똑같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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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익숙한 곳인 데다 ?<맨 끝줄 소년>? 은 초연부터 참여했으니 부담은 없겠네요.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필요한 작품들이 있어요. 이번에도 드라마 촬영 끝나고 한 달 정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동안 대본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죠. 결코 편하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어려운 공연은 아니고 어려운 대사도 없지만, 일단 클라우디오의 글쓰기로 들어가서 무대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아주 지난한 시간을 겪게 되더라고요. 조금만 욕심을 내면 인물이 무너지고 주변 사람들도 무너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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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을 봤는데, 조금 ‘섬뜩한 소년’으로 기억됩니다.


제가 잘못한 부분이 있는 거예요(웃음).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외로운 결핍이 있는 소년의 글쓰기가 저한테는 위로가 됐어요. 클라우디오는 기본적으로 아주 평범한 소년, 작가가 되는 과정에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요. 초연 때는 극을 만드는 게 중요했고 그 인물을 표현하는 데 신나 있었다면, 재연에서는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양이 1/3 정도는 줄었어요. 손원정 연출님이 계속 차갑게 안으로 가두라고 하시는데,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서 무기 없이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무기가 생긴 걸 느꼈죠. 그래서인지 관객들도 더 이상 클라우디오를 무섭거나 음흉하게 보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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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에서 재연이 달라진 것처럼 삼연을 준비하면서 또 달리 보이는 면도 있겠죠?


일단 제가 물리적으로 나이가 들었죠. 초연 때 사진을 보면 피부도 다르고 주름도 다르더라고요(웃음). 그때는 뜨겁고 열정적이었다면 그만큼 미숙했던 것 같고, 4년이 지난 지금은 안 좋은 능숙함이 있어요. 바뀐 제가 접근하기 힘든 지점도 있고요. 처음에는 순수한 글쓰기의 즐거움으로 뜨거웠다면 지금 저는 순수하지 않거든요. 순수할 수 없죠. 다른 가족들에 대해서도 좀 다른 시각을 갖게 됐는데, 예전에는 부러움과 결핍으로 다가갔다면 지금은 어떤 조롱, 중산층의 위선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더 커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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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로서도 다른 시각을 갖게 됐을 텐데, 좀 더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바람도 있겠죠?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으면서 욕도 많이 먹고, 사이코패스 역도 많이 들어오는데, 다음에 드라마를 한다면 멜로의 선에 서보고 싶어요(웃음). 배우로서 비슷한 이미지가 굳어지면 새로워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무대에서는 많은 관객들이 기억하는 저의 소년 캐릭터가 몇 개 있는데, 사람이 아니라 샘의 정령으로 등장한 적도 있고, <이방인>에서는 실존주의적인 존재인 뫼르소도 연기했어요. 그때는 사실 힘들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또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니까 부모와의 관계 등을 다룬 작품도 해보면 지난 10년간의 공연과는 또 다른 것들을 관객들과 고민하고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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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음 공연 계획과 배우로서의 각오를 들어보죠.


이번 작품이 끝나면 내년 1월에는 <구름 한가운데>, 3월에 <대신 목자>라는 연극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에요. 연출님이 ?<맨 끝줄 소년>? 은 ‘맨 끝줄에 앉은 사람들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벼랑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요. 과거에 ‘연극도, 나도 끝났다.’ 생각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런 시간이 다시 찾아올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갖도록 노력해야죠. 그래서 스스로 배우로서 더 느리게 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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