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찬이와 섭이, 그리고 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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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면 연말에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사라고 했다. 반마다 안 사는 아이가 없었다. 하지만 쓸모는 다들 알지 못했다. 분명 나도 그 때마다 씰을 사면서, 이런 걸 대체 언제 쓸까 생각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첫 책을 내고, 내게도 독자라고 생각할 분들이 생기고, 그 중 누군가 내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연락할 때까지의 일이다. 지방에 사는 독자 희선 씨와 펜팔 친구가 된 후 예쁜 엽서나 편지지, 카드를 보면 무심코 사고 만다. 해외에 나갈 때면 우표를 사고 싶어진 것도 이맘때의 일이다. 마음 놓고 편지를 쓸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사실은 참 행복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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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쓰다 보니 깨닫는다. 책을 쓴다는 행위는 편지를 쓰는 일과 닮은 꼴이라는 사실을. 내 책을 읽는 누군가는 내가 보낸 편지를 받는 누군가이며, 그가 쓰는 서평은 답장이 된다는 생각 말이다. 여기서 나아가 나는 또 생각 하고 만다. 누군가와 함께 쓰는 책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어쩌면 한 권의 책에 서로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느낌과 비슷하지 아닐까. 여기, 그렇게 3년간 편지를 주고 받듯 글과 그림을 쓰고 모아 책을 낸 동갑내기 작가가 있다. 김효찬, 정명섭 작가. 별명하여 찬이와 섭이. 이들은 3년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서울의 골목길을 함께 걸은 기록을 모은 책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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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참 다르다. 책의 프롤로그를 빌려 소개하자면 찬이는 자기 사업을 하다가 그림을 시작했고, 섭이는 바리스타를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찬이는 차 한 잘 마실 시간이면 그림을 뚝딱 그려내지만, 섭이는 온종일 그려도 그림 한 장 완성하지 못한다. 이런 찬이와 섭이가 함께 서울을 걷기 시작했다. 동갑내기의 산책은 늘 둘만 한 것은 아니다. 가끔 이들에게는 함께 가는 동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노진구 아니고 노명우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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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 니은서점이라는 작은 동네서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서점을 차린 노명우 교수란 사람이 누군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채널예스>에 연재되는 노명우 교수의 칼럼을 읽고 나서야 “와, 재밌는 칼럼을 쓰시는 서점 주인이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이런 니은서점에 어쩌다보니 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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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명섭 작가 덕이다. 지난 여름, 정작가는 자신의 또다른 책 유품정리사』?가 나와 북토크를 하게 되었다며 “떡볶이를 사줄 테니 같이 가자”며 나를 비롯해 몇 명을 니은서점에 데리고 갔고, 나는 떡볶이 대신 돈까스를 먹고 니은서점에 갔다가 만화 도라에몽에서 빠져나온 듯한 노 교수를 만나고 만다. 대관절 어디서 저런 옷을 구해 입으셨는지, 바로 옆 책장 가장 높은 곳에 나란히 줄지어선 만화 속 주인공 노진구와 꼭 닮은 코스프레를 한 노 교수에게(의도는 아니었다는데 하필 이 날 나라는 덕후가 서점에 들른 바람에 눈에 띠고 마셨다) 나는 흥미를 느꼈다. 이후 나는 니은서점의 객 중 한 명이 된다. 이때까지 듣도 보도 가도 않은 동네 연신내, 구비구비 골목을 들어가 나온 초록색 페인트칠을 한 작은 서점을 남양주에서 몇 시간을 걸려 몇 번이고 찾았다. 그런 니은서점에서 함께 찬이와 섭이의 북토크가 열린다니 빠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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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니은서점은 다른 계절과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텐더들은 제자리에 서서 수수한 웃음으로 객을 맞아주었고, 이런 북텐더를 놀리듯 찬이와 섭이는 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두 동갑내기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운치 넘치면서도 정다워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나왔다가도 다음 순간이면 아, 하고 감탄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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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책의 풍경과도 꼭 닮은 꼴이었다. 북토크가 끝난 후로도 서울 곳곳을 지나치다 문뜩 생각났다는 듯 책을 펼칠 때면 어디선가 찬이와 섭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지금 이 순간만 해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무심코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마는 것이었다. 아, 여긴 서울 아니고 남양준데, 서울의 골목은 한참 먼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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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조영주의 적당히 산다>를 사랑해주신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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