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da Shingen 武田信玄(무전신현), 1988 (TV mini-series)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시나노의 다이묘들을 제압해 통일한 것을 시작으로 영토를 계속 확장했고, 우에스기 겐신과 5차례에 걸친 격렬한 전투를 하기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노부나가 연합군과의 전투 중 급사했다.
다케다 신겐 [Takeda Shingen, 武田信玄(무전신현)]
본명은 다케다 하루노부[武田晴信]이며, 신겐[信玄]은 불교에 입문하여 지은 이름이다. 1521년 12월 1일 지금의 야마나시현[山梨縣]에 해당하는 가이[甲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인 노부토라[信虎]이다. 13세에 처음으로 출전하였고, 16세 때에는 300명의 적은 인원으로 큰 성을 빼앗기도 하였다.
그러나 격렬한 성격으로 인해 아버지의 신임을 받지 못하다가, 1541년 가신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아버지를 스루가[駿河]로 추방하고 정권을 획득하였다. 이후 지금의 나가노현[長野縣]에 속하는 시나노[信濃]의 다이묘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시나노를 통일하였다.
이로 인해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과 대립하게 되어, 1564년까지 총 5차례의 대전을 치른 끝에 승리하였다. 이 5회의 전투가 바로 유명한 가와나카지마전투[川中島合戰]로, 특히 4번째 전투는 일본 전사(戰史)에서 전설적인 전투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영토를 빼앗긴 오가사와라 나가토키[小笠原長時],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義淸] 군대와 싸운 이 전투에서 승세를 타기 시작한 신겐은 이후 스루가·미카와[三河]·코즈케[上野] 등지로 계속 영토를 확장하였다. 1569년에는 지금의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 있는 오다와라성[小田原城]을 포위한 뒤, 1571년 호조 가문과 강화를 맺었다.
그 무렵 오케하자마[桶狹間]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를 패배시킨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결혼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노부나가의 연합군에 맞서 대립하던 중, 1572년 미카다 가하라전투[三方が原戰鬪]에서 연합군을 대파하였다. 이어 이에야스의 여러 성들을 잇달아 함락시켰으나, 1573년 초 노부나가와 대립하던 중 진중에서 병이 들어 급사하였다. 그뒤 다케다 가문은 나가시노전투[長篠戰鬪]에서 노부나가에게 패한 뒤,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본 전국 통일의 길을 연 인물로,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도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최고의 전략가, 가이의 호랑이 등으로 불리며, 일본의 민간설화나 연극, 소설의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