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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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1950년작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미후네 토시로 주연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을 만들었을 때 그는 아직 오즈 야스지로나 미조구치 겐지의 이름에는 못 미치는 약관의 감독이었다. (라쇼몽)은 일본 내에서 잘 이해받지 못했다. 제작자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라고 일갈하며 시사회장을 떠난 일화로 유명한 (라쇼몽)은 그러나 제작 다음해인 51년에 베니스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구로사와 아키라와 일본영화의 존재를 서구에 알렸다. 일본적인 유미주의의 틀 안에서 영화를 만들었던 오즈와 미조구치와 달리 구로사와 영화는 서구적인 스타일의 모방으로 일본 내에서 이해됐지만 서구에서 구로사와 영화는 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구로사와는 존 포드와 윌리엄 와일러,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기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일본적인 감성과 호흡으로 녹여내는 데 탁월한 면을 보였다. 숲 속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풀어가는 (라쇼몽)은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면서 동시에 천황제가 절대적으로 우상시되던 군국주의 시대를 벗어나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가 도입한 서구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하루 만에 신이었던 천황이 인간으로 격하됐던 전후 일본이 처한 역사적 맥락과 빙 둘러 가 닿는 영화이기도 했다. 구로사와는 또한 이 영화에서 여러 등장인물의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절충주의의 교본을 보여줬는데 카메라 움직임과 음악, 플롯 구성은 서구적이었지만 때로는 일본식 연극의 양식을 적절히 따온 것 같은 정적인 화면으로 일본적인 미학과 서구적인 스타일을 종합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라쇼몽)은 부당하게 과대 평가받은 작품이 아니었다. 오늘날 그것은 동양과 서양의 고전주의가 만난 기념비적 작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