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선을 넘어 생각한다] (2018)라는 책을 내고 나서 고맙게도 몇 차례 강연 요청을 받았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 고민하다가 프리젠테이션 첫머리에 집어넣은게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였다. 만원권 지폐 뒷면에 실리면서 유명해진 이 14세기 조선 초기 별자리 지도를 우리가 흔히 아는 서양식 별자리 지도와 비교하는 걸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국 사람들은 북쪽 하늘에 있는 국자 모양을 한 별들을 보며 마음 속으로 선을 그은 뒤 ‘북두칠성’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유럽 사람이라면 큰곰자리를 구성하는 꼬리와 등뼈 부분으로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세상에 그런 선은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별자리를 기준으로 별을 인식하는건 별자리를 잇는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북두칠성이니 큰곰자리니 하며 연결하는 선이란 그저 우리가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혹은 외우기 쉽도록 상상력을 동원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28수, 큰곰자리, 작은곰자리 같은 별자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일단 별자리를 그리고 나면 그 별자리가 우리 인식을 규정해 버린다. 우리는 별자리가 인위적으로 편의를 위해 만든 거라는 걸 알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특정한 별과 별을 한묶음으로 규정하거나 다른 묶음으로 구별짓는다.
별을 잇는 선은 애초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한다. 별과 별자리의 관계를 현실과 프레임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프레임(Frame; 특정한 언어와 연계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이란 머릿속에서 한번 자리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영화 [인셉션] (2010)에서 주인공이 심어놓은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길 원하신다’는 생각의 씨앗이 자라고 자라서 아버지가 물려준 거대기업을 제 손으로 해체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치다. 선과 선을 잇고 특정한 틀 안에 공간을 인식하게 만드는 각종 ‘지도(地圖)’야말로 그런 효과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지도에 매혹당했다.)
우리는 지도를 볼 때 당연히 윗부분이 북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거 몽골을 비롯해 유목제국에선 전혀 다르다. 이들의 지도는 북쪽이 지도 밑부분에 위치한다.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는 지리 관념을 반영한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흉노에선 좌현왕이 제국의 서쪽을, 우현왕이 제국의 동쪽을 담당했다. 몽골어에서 ‘바른 손’은 방위로는 서쪽을 가리키는데 그건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볼 때 오른손이 가리키는 곳이 서쪽이기 때문이다.
칭기스칸은 맏아들 조치에게 제국의 서쪽 방면을 유산으로 주고 세 동생에겐 동쪽 방면을 나눠줬다. 그 덕분에 조치의 아들이 오늘날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 러시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가 몽골 등 유목제국을 ‘북방’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지극히 우리식 관념을 반영한 것일 뿐이겠다.
지도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틀’
주변에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를 대략 유럽만한 크기를 가진, 북아메리카보다는 훨씬 작은 대륙으로 인식한다. 여기에는 ‘메르카토르 도법’이라는 방식으로 만든 지도가 워낙 널리 퍼진게 큰 영향을 미쳤다. 1569년 네덜란드 사림인 게르하르두스 메르카토르가 발명했다는 이 지도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를 실제보다 훨씬 더 커보이게 하는 정치적 효과까지 덤으로 거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