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몰랐지? 남산의 숨은 명품 산책길
“달 달 무슨 달 / 쟁반같이 둥근 달 / 어디 어디 떴나 / 남산 위에 떴지~♬”
어릴 때 불렀던 동요 ‘달달 무슨달’의 노랫말이다. 이처럼 남산은 동요에도 있고 애국가에도 나온다. 방방곡곡 고을마다 크고 작은 남산이 있고, 수도 서울에도 남산이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마음 속의 산이다.
서울의 ‘남산’은 볼 것과 찾을 것이 많아 목멱산(木覓山)이라 불리었다. 해발 270.85m로서 큰 산은 아니지만 아버지 산이라 불리는 북악산과 대비된 서울의 어머니 산이다. ‘남산’하면 사람들은 케이블카와 N서울타워, 봉수대, 사랑의 열쇠를 떠올리지만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요즘에는 이런 볼거리보다는 산책길이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남산이 코로나로 쌓인 시민들의 갑갑함을 들숨과 날숨으로 오롯이 해소해주는 까닭같다.
광희문에서 남산정상에 이르는 한양도성, 신라면세점 입구의 도성모습, 계단을 오르면 성곽 안쪽을 걸을 수 있다 ⓒ최용수
남산에서 걷기 좋은 길을 말하라면 북측순환로, 산림숲길, 야생화원길, 자연생태길, 역사문화길을 꼽는다. 그런데 남산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명품 산책길도 숨어있다는 걸 아는가. 바로 장충체육관에서부터 한양도성 안팎의 성곽길을 따라 서울중심점에 이르는 구간이다. 오랜 기간 시민들의 출입이 불가하였던 도성 안쪽 길과 웅장한 성체의 속살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바깥 길, 그리고 원시처럼 자연이 살아있는 호젓한 오솔길로 구성된 3색의 3km 탐방 코스이다.
한양도성 신라호텔구간에서 내려다 본 장충체육관, 빵모자를 눌러쓴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최용수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장충체육관을 지나면 오른편 오르막에 계단길이 보인다. 신라호텔 뒤뜰로 향하는 안쪽 성곽 길의 시작점이다. 계단을 오르니 장충체육관이 내려다보인다. 흡사 빵모자를 눌러 쓴 듯 한 모습의 체육관 지붕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부터 민주평통까지 이어진 안쪽 성곽길은 오랜 기간 금단의 구역이어서. 두터운 소나무 숲과 잘 가꾸어진 정원, 아담한 정자와 조각 작품이 공원길 느낌을 준다.
신라호텔 뒤편 한양도성 성곽길에서 바라본 호텔 후정 모습 ⓒ최용수
휘감아 용틀임하는 성곽 위를 걷는 탐방의 맛은 옛 선비의 순성의 맛 그대로이다. 서울클럽과 민주평통 구역을 지나면 ‘성곽마루’가 나타난다. 시원한 바람이 머무는 성곽마루는 남산자락과 한강을 굽어보는 멋진 조망을 펼쳐 보인다.
탐방로에서 만나는 ‘성곽마루’ 정자, 남산자락과 한강일대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최용수
성곽마루에서 반얀트리클럽, 국립극장을 지나 순환로에 접어들면 오른편의 웅장한 성벽에 압도된다. 이곳부터 남산정상을 향하는 성곽길은 가파른 오르막이다. 다양한 크기의 성돌들이 10m가 넘는 거대한 성벽을 받치고 있다.
한양도성 외부 성곽길, 시대별 축성기술을 비교할 수 있는 현장박물관이다. ⓒ최용수
한양도성을 최초 건설한 태조 이래 세종, 숙종, 순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축성기술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현장박물관이다. 탐방로 중간쯤에 각자성석(刻字城石)과 안내판이 있다. 세종 때 성벽을 쌓은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인데 무너지면 불러서 다시 쌓게 한 요즘의 공사실명제 같은 것이다.
남산 동남쪽 구간의 한양도성 성곽길 중간쯤에 있는 각자성석과 안내판 ⓒ최용수
650여 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 전망대에 오르니 눈 아래 도심풍경이 파노라마가 된다. 가까운 중구와 용산 일대는 물론 멀리 강남 일대도 훤하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깊은 산속 같은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무성한 숲 사이에 황토색 코코매트가 깔려있다. 진초록의 산바람과 야생화 꽃향기가 길을 안내한다.
성곽 전망대에서 순환버스정류장까지 이어진 코코매트 오솔길 ⓒ최용수
주인을 따라 나선 아기 바둑이가 뜀박질을 하며 오솔길을 즐긴다. 남산에서 이런 길을 만나다니 행운이다. 오솔길을 벗어나면 순환버스 정류장이다. 시내로 돌아갈 때 이 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정류장에서 남산정상을 향하는 길은 넓은 포장도로이다. 저만치에 우뚝 선 N서울타워가 보이고 이내 남산 정상의 팔각정 광장이다. 광장 동쪽 끝에는 시민들이 잘 모르는 특별한 표지돌이 하나 있다. 바로 ‘서울의 중심점’ 조형물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광화문 사거리의 도로원표나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중심점 표지돌을 서울의 중심점으로 잘못 알고 있다. 광화문의 도로원표는 일제강점기 한반도 18개 도시의 거리를 표시한 것이고, 인사동의 중심점 표지돌은 1896년에 설치한 것으로 현재의 서울 중심과는 맞지 않다.
남산순환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면 편하게 시내로 갈 수 있다. ⓒ최용수
2010년 서울시는 지리정보시스템 프로그램과 위성위치 확인시스템으로 정확한 서울의 중심점을 확인했다. 경도 126˚59´30˝, 위도 37˚33´6˝인 남산 정상의 서울중심점이다. 둥근 원형의 표지돌에 25개 자치구를 표시하였고, 서울과 한강의 모습을 투영하여 역동적인 ‘문화 서울’의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남산 정상 팔각정광장 동쪽 끝에 있는 서울중심점 표시돌 모습 ⓒ최용수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이 심상치 않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철저한 거리두기를 생활화해야 할 상황이다. 사람간 거리두기는 그만큼 갑갑함과 우울감, 스트레스를 쌓이게 한다. 이럴 때 거리두기 걱정 없이 마음껏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중심점 앞 남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도심 풍경 ⓒ최용수
장충체육관에서부터 한양도성 성곽의 안팎을 걸으며 서울중심점에 이르는 탐방로는 코로나 상황에 특별히 추천하고픈 길이다. 운동 만을 위해 걷는 몸을 위한 길이 아니라 스트레스에 눌린 마음을 깨어나게 하는 숨어있는 명품 산책길이기 때문이다.
▶ 장충체육관~서울중심점 코스 : 장충체육관(동대입구역 5번 출구) – 신라호텔 뒤뜰로 이어지는 계단 – 성곽마루 – 한양도성길 계단길 – 남산순환버스정류장 – 팔각광장(중심점)
▶ 남산도시자연공원 홈페이지 : https://parks.seoul.go.kr/template/sub/namsa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