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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이와 마주했다…’빈둥지증후군’ 극복기

작년 12월초 수시 합격자 발표가 난 직후부터 일찌감치 대학에 합격한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만나러 집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못해본 것들을 친구와 하나씩 하기로 했다면서 서울 시내 곳곳에서 친구들과 찍은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고교 3년 간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와 학원, 자습실을 오가면서 보내는 아이와 제대로 눈 한 번 마주치기 어려웠다. 늘 아침잠이 부족한데다 소화불량이어서 아침을 거르고 등교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수능시험이 끝나고 난 뒤 모녀가 단란하게 보내는 시간을 상상하곤 했다. 졸업식이 끝나는 2월 중에 모녀가 바닷가로 여행하는 것도 계획했다.

막상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니 아이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예전보다 더 얼굴을 마주하기 어려웠다. 느지막이 일어나 눈 뜨면 자리를 박차고 나간 아이의 방을 들여다보면서 왠지 모를 공허함에 자꾸만 울컥했다. ‘아, 이런 게 흔히 말하는 빈 둥지 증후군이겠구나.’ 나보다 먼저 아이를 대학에 보낸 친구의 위로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2월말부터 사정은 바뀌었다. 아이가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의 친구들도 코로나19 감염이 무서워서 다들 집안에 꼭꼭 숨어서 지내고 있단다. 그러니 약속을 정해서 만날 친구가 없었다. 며칠 간 아이는 집안에 있는 상황이 적응이 안 되는지 심심해했다. 나도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는 한동안 무료해진 시간을 달랠 겸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다운로드해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소리도 없이 방안에 꼼짝 않고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이는 방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왔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아이는 “엄마 지금 뭐해?”라면서 물었다. 아이는 “엄마, 이과생인 나는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배우지 못했어.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가 세계사를 공부하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엄마가 추천해줘.”라고 말한다.

?아이에게 건네준 세계사 책?
아이에게 건네준 세계사 책 ⓒ윤혜숙

필자는?지난 10년 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사와 세계사 수업을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적합한 한국사나 세계사 책을 자신있게 추천해 줄 수 있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책장으로 달려가 한 권의 책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엄마의 역사편지’다. 초등 고학년 때 처음 세계사를 접하는 아이가 읽으면 무난한 책이다.

나는 아이에게 “이 책이 대학생인 너에겐 아주 쉬울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그동안 세계사 책을 제대로 읽었던 적이 없으니 이 책부터 읽어봐. 이 책을 읽고 난 뒤 다른 책들을 차례대로 소개시켜 줄게.”라고 했다. 아이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응. 엄마 그럴게.”라고 말했다.

그 이후 아이는 책을 읽다가 나에게 책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서 물었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라는 제목이 나온 건가봐.?우리 집 책장에 ‘사피엔스’가 있던데 엄마가 읽었어?”라고 아이가 물어보자마자 나는 “응. 3년 전에 독서모임할 때 읽었지.”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와아~ 우리 엄마 대단하다. 그런 책도 다 읽고 말이지!”라면서 나를 추겨 세운다. 나를 향해 엄지를 들어서 최고라는 표시를 한다. 아이로부터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달라졌다. 2월 중순부터 모임과 약속이 연기되었다. 2월 중순만 해도 2, 3주 지나면 사태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의 모임이나 약속을 취소하지 않고 뒷날로 연기했다. 그런데 2월 19일부터 코로나19 감염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3월 2일에 있을 개학도 연기되었고, 공공기관이 잠정 휴원에 들어갔다. 마침 ‘사회적 거리 두기, 잠시 멈춤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이 문을 닫는 바람에 꼼짝없이 집안에 있어야만 했다.

아이를 위해 요리한 음식??
아이를 위해 요리한 음식 ⓒ윤혜숙

집안에 갇혀 있어서 답답하다는 생각도 잠깐이었다. 나와 아이가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를 위해 온라인으로 주문한 제철 식재료로 주방에서 맛난 음식을 요리했다. 아이가 말만 하면 뚝딱이었다. 등갈비김치찜을 하고, 쑥국을 끓이고, 들기름막국수를 비비고, 고등어무조림을 해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지난 고교 3년 간 아이는 아침을 거르고, 점심과 저녁은 학교 급식으로 해결했다. 주말에 겨우 한두 끼를 집에서 먹었던 아이였다. 주말에도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늦게 일어났다. 어느덧 아이는 짜고 매운 음식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엄마가 차려주는 집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와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서 세계사를 주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만약 코로나19 사태가 없었더라면 아이는 1월까지 그랬던 것처럼 2월에도 집밖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3월부터 대학캠퍼스에서 하루를 보내느라 바빴을 것이다. 대학 신입생인 아이는 지금 한창 대학캠퍼스에서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맞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무늬만 대학생이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아이는 지금의 상황을 불평하지만, 나는 속으로 ‘코로나19로 갇혀서 지내는 건 답답하지만 모처럼 아이와 마주앉아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것도 감사한 일이네’라면서 위안을 삼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즘 빈 둥지 증후군을 느낄 새가 없다.

?아파트 화단에 핀 동백꽃?
아파트 화단에 핀 동백꽃 ⓒ윤혜숙

봄날이다. 거실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기에 현관문을 열고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아파트 정원 곳곳이 온통 봄꽃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매화, 동백, 목련이 차례대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이제 완연한 봄날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도 따스한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아파트 정원을 느릿하게 걸으면서 화창한 봄날에?뒤늦게?꽃놀이를 즐겼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급적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꽃구경을 다녀왔다. 올해는 아파트 정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듯이 코로나19로 위축된 우리도 예전의 평온했던 일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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