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_(칼럼)호주 산불은 예고편에 불과? 앞으로 우리가 해야할 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3) 호주 들불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만리장성은 우주선에서도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만리장성이 아무리 길어봤자 폭이 불과 몇 미터밖에 안 되는데 그게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인간의 활약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우주에서는 티도 안 나지요. 그런데 자연의 변화는 우주에서도 관찰됩니다.
요즘 인공위성에서는 호주 상공에서 거대한 갈색 구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에 갈색 구름이 있나요? 갈색 구름의 정체는 호주 남서부에서 뉴질랜드로 향하는 거대한 연기입니다. 위 사진에서 호주가 빨갛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호주 대륙이 온통 빨갛게 불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호주는 해안가 일부를 제외하면 온통 붉은 사막이라서 그렇게 보일 뿐이죠.
호주가 불타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저는 작년 9월 말부터 거의 3주 동안 호주 북동쪽의 해안 도시 케언스에서 시작, 대륙 중심에 있는 거대한 돌덩어리 울룰루를 거쳐 남서쪽의 해안 도시 퍼스까지 자동차 여행을 했습니다. 일정의 3분의 1을 들불과 함께 했습니다. 밤에 야영을 할 때는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 불타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낮에도 흰 연기를 쉽게 봤죠. 사막의 고속도로 주변은 이미 불탄 곳이 많았고 매일 소방차와 마주쳤습니다. 소방대가 도로를 차단해 수백 킬로미터를 돌아가야 하는 일도 있었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유소에서 만난 한 소방대원에게서 재밌는 화재 예방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쪽에서는 들불을 끄고 다른 쪽에서는 들불을 낸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자기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에 들불이 다시 날 게 분명하니까 이동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들불을 내서 (자신들의 통제 하에) 일대를 다 태워버린다는 것이죠. 아무리 사막이라고 하지만 듬성듬성 덤불들이 있어서 탈 것들은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회복력도 엄청 좋다고 하더군요. 이때까지만 해도 들불이 이렇게 오래 가고 거대해질 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호주 들불은 지난 주말까지 스위스 국토 면적의 땅을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시 면적의 80배가 초토화된 것입니다.
들불의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까요? 들불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식생의 변화에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실제로 호주 정부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11월부터는 들불이 시드니 주택가까지 확장됐습니다. 배우 러셀 크로의 별장 두 채도 불탔죠. 그제야 소방당국은 들불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임을 인정했습니다. 이미 주택 2,000채 이상이 불에 탔고 24명이 숨졌습니다.
헬리콥터와 군함까지 동원해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의 사정은 어떨까요? 놀랍게도 호주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주변의 땅들은 수많은 철책으로 구역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물론 그 구역이 엄청나게 크기는 합니다. 동물들도 어떻게든 도로로 나와야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얼마나 많은 로드킬이 있겠습니까? 저는 여행 중에 차에 치여 죽은 캥거루를 매일 3~5마리씩 봐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포유류, 파충류들이 죽었습니다. 캥거루 새끼들은 철책을 넘지 못했습니다. 철책에 걸린 채 까맣게 타죽었습니다. 코알라는 원래 느림보인데다가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화재가 코앞에 왔을 때야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고 죽었습니다. 수많은 앵무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다가 질식해서 추락한 후 불에 탔습니다. 도마뱀 같은 파충류들에게 철책은 장애가 되지 않지만 그들보다 들불의 전파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지금까지 4억 8,000만~5억 마리의 척추동물이 불에 타서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제는 이 동물들 가운데 87%는 오직 호주에만 사는 동물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설사 곧 화재가 진압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코알라의 30%가 불에 타서 죽었지만 그들의 서식지는 80%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0% 남은 서식지에 70%의 개체가 살 수는 없습니다.
이 사건은 그냥 가슴 아프고 슬픈 사건이 아닙니다. 미안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불안한 전조입니다. 왜냐하면 이 들불의 원인은 바로 지구 가열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지구 온난화’라는 마음 편한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의 결과입니다. (과학자들은 더 이상 ‘기후 변화’라는 모호한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단지 호주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죠. 그리고 우리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1.5도! 산업화 이후 지구 대기 온도 상승을 1.5도에서 막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온 지구가 지금 호주 대륙처럼 될 것입니다. 이미 1도 올랐습니다. 10년! 딱 10년 남았습니다.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제로로 만들지 못하면 늦습니다. 호주 들불은 앞으로 매년 목격하게 될 예고편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