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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명당, 조선 왕실 묘역 ‘영휘원과 숭인원’

지난 주말 동대문구 홍릉로에 있는 영휘원과 숭인원을 찾았다. 원(園)으로 쓴 조선 왕실 무덤 13개소 가운데 서울에 남아 있는 단 두 군데의 원이다. 원은 왕의 실제 어버이나 왕세자, 왕세자빈 등의 무덤을 말한다.

영휘원(永徽園)은 1911년 조선 26대 임금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원황귀비 엄 씨를 모신 무덤이다. 순원황귀비는 이른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로 불리는 의민황태자(영친왕)의 생모다. 양정, 진명, 숙명 등 학교 설립과 운영에 큰 공헌을 한 인물로도 회자된다.

숭인원 정자각과 원침을 끼고 목책을 따라 걸으면 영휘원으로 이어진다
숭인원 정자각과 원침을 끼고 목책을 따라 걸으면 영휘원으로 이어진다. ©염승화

숭인원(崇仁園)은 태어난 이듬해인 1922년에 요절한 의민황태자 아들 이진의 무덤이다. 그러니까 두 원은 할머니와 손자의 묘역인 것이다. 사적 제361호로 지정되어 있는 두 원은 같은 경내 좌, 우편 언덕 위에 각각 조성되어 있다. 전체 약 5만 5,000㎡ (약 16,600평) 규모다.

도로변에 맞닿아 있는 돌담길을 지나는 재미가 제법 삼삼하다
도로변에 맞닿아 있는 돌담길을 지나는 재미가 제법 삼삼하다. ©염승화

숭인원은 순종황제가 특별히 명하여 원으로 조성되었다
숭인원은 순종황제가 특별히 명하여 원으로 조성되었다. ©염승화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에서 내렸다. 두 원은 도보로 14분쯤 거리에 있다. 정문 앞에 다다르기 전 큰길에 바짝 붙어 있는 돌담길을 걷는 운치가 제법 쏠쏠했다.

경내로 들어서자마자 오른 편으로 제례 공간임을 나타내는 홍살문이 가깝게 보였다. 그 뒤편으로는 제향을 모시는 건물인 정자각과 고인의 일생 등을 새긴 표석이 들어 있는 비각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이는 숭인원의 전각들이다. 발길이 자연스레 홍살문 쪽으로 향했고 정자각 옆까지 수직으로 곧게 놓인 돌길인 참도를 따라 걸었다. 길이가 짧기도 하거니와 향로와 어로의 구분 없이 하나의 통로로 설치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영친왕의 첫째 아들 원손 이진의 원에 세워져 있는 표석
영친왕의 첫째 아들 원손 이진의 원에 세워져 있는 표석 ©염승화

표석 표면에 ‘원손 숭인원’이라고 새겨져 있는 비각 안을 둘러보았다. 갓난아이인 채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주인공이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이는 듯했다. 비각 앞에 선 채로 봉분이 있는 원침 위를 올려다보다가 원침을 둘러싸고 있는 목책을 따라 경내 안쪽 영휘원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임금님께 드릴 물을 긷는 소중한 우물
임금님께 드릴 물을 긷는 소중한 우물 ©염승화

필자는 숭인원과 영휘원 사이에서 두 가지 볼거리를 만났다. 하나는 ‘우물’이고 다른 하나는 ‘고사목’이다. ‘어정’이라고 불리는 이 우물은 이곳에 행차한 임금님께 올릴 물을 길어 올린 곳이다. 고색 풍기는 얕은 담장 안에 있다. 이 앞에서 행행(行幸, 궁궐 밖으로 행차하는 것) 나온 고종황제가 우물물을 마시며 먼저 보낸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았다. 

영휘원 우측 공간에서 만난 귀한나무 고사목
영휘원 우측 공간에서 만난 귀한나무 고사목 ©염승화

고사목은 160년쯤 된 산사나무다. 천염기념물 506호로 지정된 귀한 나무였으나 2015년에 해제 되었다고 한다. 태풍 등으로 피해를 입어 안타깝게도 말라죽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듯이 위용과 기품이 넘쳐 보였다. 필시 고사목의 후손으로 보이는 젊은 나무들이 그 둘레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영휘원 전경. 정자각,비각, 참도 등 왕릉과 구조가 비슷하다.
홍살문 앞에서 바라본 영휘원 전경. 정자각,비각, 참도 등 왕릉과 구조가 비슷하다. ©염승화

원침 좌측 하단에서 올려다본 영휘원 원침,봉분 앞에 놓인 석물들이 보인다.
원침 좌측 하단에서 올려다본 영휘원 원침, 봉분 앞에 놓인 석물들이 보인다. ©염승화

영휘원 참도는 여느 왕릉들과 비슷하게 향로와 어로 등 좌우 2단으로 놓여 있다. 다만 숭인원에 설치되어 있는 홍살문 앞 배위가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아 허전했다. 판위라고도 불리는 배위는 제례에 참석한 제관이 위치하는 자리를 말한다. 정자각과 비각 둘레를 한 바퀴씩 돌아본 필자는 다시 홍살문 앞으로 이동했다. 봉분이 놓인 원침공간은 비공개 지역이라 먼발치에서라도 살펴보려는 까닭이었다. 곡장 안 원침 주위로 문인석,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등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못해 아쉬웠다.

영휘원 하단 호젓한 장소에 자리하고 있는 재실과 전사청
영휘원 하단 호젓한 장소에 자리하고 있는 재실과 전사청 ©염승화

제사 준비 장소나 해당 관리들의 집무실로 활용되는 재실과 전사청은 영휘원 아래 도로 부근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었다. 팔작지붕으로 지은 크고 작은 두 개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실 뒤뜰에서 담장 및 굴뚝과 어우러지며 활짝 피어 있던 감국이 인상 깊었다.

재실 뒤편을 비롯해 경내 곳곳에 감국 등 아름다운 가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재실 뒤편을 비롯해 경내 곳곳에 감국 등 아름다운 가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염승화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서울 영휘원과 숭인원은 구한말의 왕실 묘제를 연구,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자, 당시 위태로웠던 국운과 관련된 스토리가 오롯이 간직된 무대다. 뿐만 아니라 숲과 쉼터도 마련돼있어 조용히 걷거나 쉬기에 그만이다. 가을 정취를 즐기며 나홀로 사색을 하고 싶다면 영휘원과 숭인원 방문을 권하고 싶다.

■ 영휘원과 숭인원 관람
○ 위치: 서울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청량리동 205)
○ 교통: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2번 출구 > 약 850m(도보 약 12분) > 영휘원 입구,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 > 약 530m 세종대왕기념관 삼거리  > 약 370m 돌담길 지나서 > 영휘원 입구
○ 운영: 2~5월, 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11월~1월 (09:00~17:30), 매주 월요일 휴관
○ 입장료: 1,000원(25세~65세), 800원(단체 10인 이상)
○ 영휘원과 숭인원 이야기 바로보기: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35&mn=RT_01_07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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