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성동구치소에서 특별한 반나절 체험
9월 마지막 토요일?가락동 162번지 일대에서는 이색적인 시민참여 행사가 열렸다. 40년 동안이나 일반시민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옛 성동구치소가 시민에게 그 내부시설을 공개한 것이다.
독립운동가를 수용하였던 서대문 형무소와 영화에서 교정시설을 관람한 적이 있지만, 우리나라가 만든 구치소 내부는 어떨까 하여 개방행사에 참여하였다.
구치소는 확정판결을 받기 전 미결수들을 수감하는 곳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피고들이 수감되는 교도소와는 구별된다.
성동구치소에 가까이 접근하자 눈에 다가오는 것은 사방을 볼 수 있는 위압적인 사각형의 망루(감시탑)와 아무도 넘지 못할 회색 콘크리트담이었다.
이곳에서 33년을 근무한 남형길 교도관의 안내로 투어가 40분 간 진행되었다. 투어에 앞서 구치소의 개황과 유의사항 안내가 있었다. 이어?1977년부터 2017년까지의 역사를 되짚고 세상과 철저히 격리되었던 시간과 공간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시민들이 구치소 외부를 관람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시승
육중하고 차가운 이중으로 된 육중한 철제문을 열고 들어가니 입소와 출소 때 거쳐가는 보안청사와 의무실이 나타났다. 이어 수감자들이 생활하던 수용동이 나왔다. 황량하고 을씨년 스럽다고 할까? 철문과 쇠창살로 이어진 좌우 똑같은 방과 방의 연속이었다. 수형번호가 부착된 복장과 공동시설 이용, 동일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수감자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다짐하였을까? 조용히 자기를 반성하고 미래를 설계할 공간이 되었을까??
3평 남짓한 방에서 수감자 현황에 띠라 5~6명정도 생활했는데 수감자수가 많을 때는 8명까지도 생활하였다니 시루 교도소라고 하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라고 느꼈다.
독방도 있었다. 독방은 수감생활 중 문제를 일으킨 수형자에게 징벌방에 갇히도록 하여 ‘공포의 방’이라고도 한다. 반면 힘있는 사람들이 쓰는 독방에는 샤워시설, 싱크대, 문있는 화장실, 매트리스, TV 등이 갖춰져 부러움을 살만도 했다.
수감자들이 생활하였던 수용동 내부 모습 ?조시승
일반 재소자가 있는 수용동 방의 내부는 어떨까? 좁은 방 한쪽 구석에 있는 화장실은 지저분하고 칙칙하다. 혼자 사용해도 좁을 만한 방의 벽은?선반을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고 개인사물함으로 아주 작은 칸이 제공되었다. 수용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화장실도 반투명문이고 방문 밖은 쇠창살이 박혀 있다.
생존을 위한 음식이 제공되는 한뼘 남짓 투입구에는 간신히 식기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이 작디작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수감자들의 사연이 간직되어 있을까? 수용자들의 권익보호와 교정교육, 직업훈련 등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오히려 사회에 대한 적대감과 자포자기가 증식되는 것은 아닐까?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용동 방의 내부 모습. 최대8명까지 입소했다. ?조시승
감상에 젖을 시간도 잠시. 구치소 투어의 필수 코스인 망루 감시탑에 이르렀다. 이동 구간의 중간중간에 악기연주를 하는 연주자들을 배치, 부드러운 분위기를 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망루 감시탑은 멀리서 보아도 육중하고 위압적 모습이었다. 이곳은 수감자들의 탈출이나 행동을 감시하는 곳이다. 2005년부터는 직원이 철수하고 전자감시시스템이 도입되었고 아직 이 구치소 탈출에 성공한 수용자는 없었다고 한다.
성동구치소는 처음에 1,400명 규모의 시설로 출발하였다가 수용인원이 많아져 수용동을 추가로 지어 2,000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관람객이 물었다. “이곳은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데 왜 성동구치소입니까?” 해설을 맡은 교도관은 “이 곳의 행정주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중대면 오금리”였고 “1963년 서울 성동구에 편입되었기에 성동구치소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임”을 알려주었다.
다시 공동 세탁장과 작업장으로 향해 투어를 진행했다. 넓다란 공간에는 빨래 말리는 줄이 널려져 있고 세탁기도 있었다. 사회복귀와 근로정신 함양을 위한 공동작업장도 있었고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나 수용인원이 많으니 매일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세탁장과 작업장 앞으로 넓고 스산한 운동장이 ?있다. 이곳 운동장에서 수감자들의 건강과 체력보강을 위해 축구 등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으나 탁트인 공간은 수감동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중간 중간에 부착되어 있는 문구들…‘다정하고 조용한 말은 힘이 있다.’ ‘매화는 추운 겨울의 고통을 겪어야 맑은 향기를 낸다.’ ‘불이 물로 다스려 지듯 화는 순한 말로 다스려 진다.’ 구치소 곳곳에 부착된 좋은 문구로 이곳 수감자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하였기를 바란다.
?수감자들이 운동할 수 있었던 대운동장 ?조시승
면회실로 옮겼다. 1평 남짓 좁은 공간에 작은 구멍의 유리가 가로막혀 있다. 수감자와 부모 등 가족과 친지와 면회는 길어야 10분이라 한다. 오전8시부터 오후 4시까지인데 토요일은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처음 면회오는 사람과 재소자와는 눈물만 흘리다 가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역시 죄는 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장소였다.
마지막으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수임번호를 받고 수의옷을 입은 후 사진을 찍는 ‘머그샷’이라는 촬영기회도 희망자에게 부여된다. 특히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에 인기가 많았다.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의복을 입은 한 어린이는 “흔치않지만 흥미로운 기회였고 바르게 살아 죄수복을 입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어른스러운 답변을 했다.
수의복의 색갈은 연두식이며 명찰 색깔은 하얀색이 기본이다. 사형수는 빨강색, 마약사범은 파란색, 강력사범은 노란색, 나머지 일반 사범들은 하얀색 명찰을 붙인다.
밖으로 나오니 40년 교정시설이었던 성동구치소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사진전과 문화공연, 캘리그래피, 캐리커쳐 등 다양한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부모와 함께 온 자녀들은 블럭으로 ‘내가 만드는 도시’를 창작 시연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오후에는 음악으로 치유하는 시간여행이 있었고 투어 중간 중간 대기자를 위한 버스킹공연이 있어 세심한 배려의 투어행사를 느낄 수 있던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