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과 고종의길…역사?문화를 따라 걷다
종로 새문안로에 있는 서울역사박물관에 들린 뒤?발길이 자연스레 향한 곳은 길 건너편 동네다. 그곳은 다름 아닌 정동길.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서울시 걷고 싶은 거리 1호이기도 하고, 낙엽 쓸지 않는 길로도 지정된 핫 플레이스다. 어디 그뿐인가. 정동길은 인근 고종의길과 더불어 ‘역사, 문화의 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길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에 상응하는 건축물들이나 조형물들을 여럿 마주하게 된다. 이 두 길을 세트로 한 데 묶어 걷기로 한 것은 지난 주말 오후다.
2015년 서울지역 고등학생들이 세운 평화의 소녀상?ⓒ염승화
정동사거리에서 새문안로와 잇닿아 있는 정동길로 들어선다.?정동교회 앞 사거리까지 약 500m가 이어진다(대한문까지 약 300m는 덕수궁길 돌담길과 중복되기에 생략함). 절기로는 진즉 겨울임에도 입구부터 주변?가로수들이 여전히 붉고 노란 단풍 빛을 잔뜩 발하고 있다. 이 길로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의미 깊은 곳은 성프란치스코수도원교육회관이다. 천주교 신자들의 피정지이나 최근에는?그 앞에서 성 프란치스코 두상 등 색다른 조형물을 볼 수 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일본 위안부 만행과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도 세워져 있다. 이 상은 2015년 서울지역 고등학교 학생들이 뜻을 모아 세운 ‘고등학생들이 함께 세우는 평화비’다. 잠시 그 주위를 둘러보며 추념의 시간을 가져본다.
조선시대 임금의 어필을 보관하던 어서각(御書閣) 터이기도 한 ‘교육회관’에서 100m쯤 더 내려가면 왼쪽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살짝 비탈이 진 쪽 골목으로 조금 올라가면 고종의길로 연결되는 정동근린공원이 나온다. 공원으로 가기에 앞서 길모퉁이 캐나다대사관 앞에 우뚝 서 있는 ‘정동 회화나무’를 만난다. 이 나무는 560살이 넘는 웅장한 고목이다. 높이가 17m이고 둘레 5.16m에 달하는 대단한 위용을 과시한다. 정동의 과거와 오늘을 묵묵히 지켜온 랜드 마크와도 같기에 이 길을 지날 때면 절로 걸음을 멈추곤 한다. 고목 앞 안내문에 따르면 캐나다 대사관 사이 정겨운 일화도 전해진다. 2003년 대사관을 신축할 때 고목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었다고 한다. 때문에 건축 디자인을 바꾸고 지지대를 설치하는 등 고목이 다시 기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대사관이 큰 배려를 한 것이다.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정동근린공원?ⓒ염승화
정동근린공원은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아담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1888년 이방인 수녀들이 이 땅에 처음 와 자리를 잡은 자리, 즉 정동수녀원이 있던 곳으로도 의미가 깊다. 우선 공원 우측 구석에 놓인 조형물로 다가선다. ‘오얏꽃 핀 날들을 아시나요’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대한제국의 길 사진전에 놓인 게시물이다. 이 전시는 고종의길이 다시 열린 지난해 이후로 이곳에 오면 볼 수 있는 상설 전시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대한제국이 출범한 그 이듬해부터 1910년 한일병탄조약까지 13년 간 이어진 대한제국의 역사가 사진과 글로 담겨 있다. 또한 고종황제가 승하한 1919년 그해 3.1독립만세운동과 임시정부 탄생 시점까지 극일의 과정들이 담긴 귀한 사진들도 볼 수 있다.
공원 뒤편 제법 높다란 언덕 위에서 그때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은 ‘하얀 탑’으로도 눈길이 간다. 바로 구 러시아공관과 그 터다. 사적 제 253호인 구 러시아공사관은 원래 2층 건물과 3층탑으로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25동란으로 타버리고 지금 보이는 탑 부분과 지하 공간 일부만 남았다. 건물 앞으로 바투 가서 자세히 볼 요량으로 곧 공원을 가로질러 계단을 오른다.
고종의 길로 출입하는 협문은 러시아공사관을 바라보며 우측 언덕 위에 있다. 고종의 길은 이곳부터 덕수궁길 구세군중앙회 앞 사이 100여 미터에 지나지 않는 짧은 구간이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처럼 1896년 이 길을 따라 피신(아관파천)한 고종황제가 그 이듬해 대한제국 출범 선포를 준비하는 시간을?찾을 수 있었던 소중한 길이다. 이 길은 곧게 뻗은 높은 돌담장 길과 덕수궁길로 내려서느라 U자 모양으로 한번 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지난해 122년 만에 복원된 길이므로 평범하게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이곳에 어려 있는 커다란 역사 의미를 음미하며 걷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듯하다. 다만 이 길은 24시간 연중무휴로 개방하는 정동길과 달리 매주 월요일은 출입을 할 수 없고, 화~일요일만 개방을 한다. 또 관람 시간도 야간에는 다니지 못하는 등 제한되어 불편하다. 곧 정동길과 마찬가지로 언제고 편히 다닐 수 있는 시기가 앞당겨지면 좋을 듯싶다.
운치와 풍광 좋은 정동길. 이화여고 돌담길과 그 부근 모습?ⓒ염승화
극일과 치욕의 역사가 공존하는 유서 깊은 장소, 덕수궁 중명전 정문 앞?ⓒ염승화
이윽고 정동회화나무가 있는 곳으로 다시 되짚어 나온 뒤 길 건너편 은행나무 노거수의 샛노란 단풍이 붉은 벽돌색과 잘 어울리는 이화여고 쪽으로 간다. 그곳부터는 야트막한 돌담이 죽 펼쳐지는 운치 좋은 길이 이어진다. 조금 더 내려가면 길 맞은편 쪽 예원학교가 끝나는 지점에 고풍스러운 냄새를 물씬 풍기는 신아기념관(구 신아일보 별관) 건물이 돋보인다. 이화여고 돌담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길을 건너 맞은편으로 향한다. 정동극장에 바싹 붙어 나 있는 갈림길로 들어서니 눈앞에 덕수궁 중명전(重明殿)과 덕수궁 돌담 일부가 들어찬다. 중명전은 극일과 굴욕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장소로 사적 제124호다. 1905년 을사늑약이 벌어진 곳이나, 1907년 고종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분의 독립유공자를 밀사로 파견하는 등 극일의 행보를 시작한 뜻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고종의길처럼 덕수궁에서 관리를 하므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정동교회는 국내 최초로 세워진 감리교 교회로 빅토리아 건축?양식이 돋보인다?ⓒ염승화
전통 예술 및 창작품을 공연하는 정동극장을 거쳐 이번 방문지의 끄트머리 지점인 정동사거리 앞 정동교회로 간다. 이 교회는 1890년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감리교 교회다. 또한 우리나라 교회 중 가장 오래된 복고풍의 빅토리아 건축양식을 띄고 있다고 한다. 여느 교회와 달리 첨탑이 아닌 평탑으로 지은 특징도 있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눈여겨 봐 왔고 사진도 여러 차례 찍은 곳이라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 않고 기분을 가볍게 해 주는 듯하다.
우리 근대시대 역사와 문화의 짙은 향이 듬뿍 배어 있는?정동길과 고종의 길은 사시사철 언제 걷더라도 감흥이 솟는 곳이다. 비록 1㎞도 되지 않은 짧은 구간이지만 여기저기 실내외에 위치해 있는 유서 깊은 공간들을 살피며 가면 적어도 반나절 이상은 족히 걸리니 겨울 방학 가족 나들이 코스로 짜면 딱 일 듯싶다. 물론 이 두 길과 바로 연결되는 덕수궁길이나 덕수궁 돌담길과 연계한 코스를 짜기에도 수월하다.
■ 고종의 길, 정동길 방문 및 관람 안내
⊙교통 :
?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1번 출구 > 약 380m(도보 약 8분) 정동교회 앞/ 덕수궁?월곡문 앞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 출구 > 약 300m (도보 약 5~6분) 정동사거리 정동길 입구
⊙위치 : 서울시 중구 정동 30-1
⊙운영 시간
? 정동길 : 연중무휴 24시간 개방/ 입장 및 관람료 없음
? 고종의길 : 화~일요일 개방, 월요일 휴무/ 입장료 없음
. 11~1월 09:00~17:30(입장 마감 17:00)
. 2~10월 09:00~18:00(입장 마감 17:30)
? 중명전 : 화~일요일 개방, 월요일 휴관/ 입장료 없음
. 09:30~18:00(입장 마감 17:30)
⊙문의 : 고종의길 02-771-9951, 중명전 02-771-9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