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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 적용한 경로당, 어르신들 대만족!

※ 본 기사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전 방문한 후 작성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그동안 떡장사 하느라 지난주부터 처음 여기에 왔지. 우리 집보다 여기가 더 좋아, 내 또래 할머니들과 여럿이 모여서 지내니깐 좋지”라고 말씀하신다. 윤동순(84세) 할머니의 말씀이다. 이곳은 동대문구에 있는 화목경로당이다.

동대문구 주택가 골목에 있는 화목경로당
동대문구 주택가 골목에 있는 화목경로당 ⓒ윤혜숙

서울 동대문구 전농1동 주택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아담한 2층짜리 건물은 원래 단독주택이었다. 동대문구청에서 단독주택을 사들인 뒤 보수해서 지금의 경로당으로 거듭났다. 서울 시내 수많은 경로당 중에서 특별히 이곳을 방문한 이유가 따로 있다. 이곳은 경로당 건물의 내·외부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성별, 나이,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이나 ‘범용(汎用)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근력, 인지능력 저하, 장애 등에 관계없이 어르신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어르신들이 매일 이용하는 경로당을 대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다.

화목경로당 거실이 넓고 환해졌다
화목경로당 거실이 넓고 환해졌다 ⓒ윤혜숙

서울시는 자치구 공모를 통해 다양한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건축물과 공공공간 중 개선이 시급한 대상지를 선정한다. 시민체험단의 진단과 분석을 거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 확산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재탄생된 화목경로당은 하루 평균 30여 명의 80세 전후 어르신들이 이용하던 곳이었다. 리모델링하기 전 협소하고 동선이 복잡해 어르신들은 경로당에서 여가를 즐기기보다는 식사, 휴식 등 단편적인 활동만이 가능했던 공간이었다.

화목경로당 진입로의 경사진 길에 턱이 사라졌다
화목경로당 진입로의 경사진 길에 턱이 사라졌다 ⓒ윤혜숙

화목경로당은 단독주택을 개조한 건물로, 지어진 지 38년이 넘어 노후화되어 있었다. 특히 진입로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 경로당 접근과 이동에 위험이 따랐고, 폐쇄적인 구조와 기본적인 안전·편의시설이 없어 낙상 등 안전사고의 위험이 큰 환경이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많은데도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지난 2월 20일부터 공사에 착수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했던 시기여서 경로당이 문을 닫았을 때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경로당 시설을 바꿔나갔다. 그리고 지난 10월 13일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임영순 사무장(72세)은 “이번에 경로당을 리모델링해서 모든 면에서 좋아졌다. 특히 석면을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적으로 바꾼 점에서 더욱 좋다”라고 말씀하신다.

화목경로당은 회원이 70명을 넘고 있다. 지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비율이 절반이다. 경로당 1층은 할머니, 2층은 할아버지가 사용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1층 출입문으로 진입하는 경사진 바닥에 턱이 없어서 휠체어도 올라갈 수 있다.

현관에 손잡이 일체형 벤치와 신발 받침대가 있다
현관에 손잡이 일체형 벤치와 신발 받침대가 있다 ⓒ윤혜숙

현관문을 여니 입구에 손잡이 일체형 벤치와 신발 받침대가 있다. 어르신이 신발을 갈아 신을 때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 보니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고, 서 있을 때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도 된다. 

입구에서 들어서면 왼쪽으로 널찍한 거실이 있다. 미닫이문을 열자 정면에 ‘화목경로당 다용도 게시판’이 보인다. 큼지막한 디지털시계와 달력, 공지사항, 일정 관리 등이 있다. 시력이 저하된 어르신을 위해 게시판 아래에 돋보기 보관함도 있다.

어르신이 보기 편하게 게시판이 큼직해졌다
어르신이 보기 편하게 게시판이 큼직해졌다 ⓒ윤혜숙

필자가 방문한 오후에는 어르신들이 모여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거실 한쪽에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좌식 마루가 있다. 거기에 어르신 세 분이 마치 안방처럼 편안하게 앉아 계신다. 반대쪽으로 일인용 소파가 ㄱ자형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르신의 취향에 따라서 마룻바닥과 소파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거실 한쪽에 좌식 마루가 있어 편하게 앉을 수 있다
거실 한쪽에 좌식 마루가 있어 편하게 앉을 수 있다 ⓒ윤혜숙

거실 벽면 중앙에 설치된 TV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손 끼임 방지와 미닫이 방식을 적용한 수납장이 있다. 수납장 문을 여니 힘을 주지 않아도 문이 스르륵 움직인다.

수납장이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어 손 끼임을 방지할 수 있다
수납장이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어 손 끼임을 방지할 수 있다 ⓒ윤혜숙

필자가 화목경로당을 방문했던 날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기 전이었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코로나 3차 대유행을 걱정하셨다. 어렵사리 문을 연 경로당이 다시 휴관하면 경로당을 드나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한동안 코로나19 감염의 우려 때문에 거의 집안에 갇혀서 지내다시피 했던 시간이 매우 힘들었다고 말씀하신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경로당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이 편해져서 좋기도 하지만, 그보다 어르신이 다 같이 모여서 지낼 수 있는 거실이 넓고 환해져서 정말 좋다고 하셨다.

넓은 주방에서 여럿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넓은 주방에서 여럿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다 ⓒ윤혜숙

주방은 식사를 준비하고 조리할 때 여러 어르신이 동시에 작업할 수 있도록 싱크대를 분리해서 배치했다. 상부장의 그릇, 양념통이 떨어져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하향식 리프트 선반과 깊숙이 있는 주방 기구를 허리 굽혀 꺼낼 필요 없도록 인출식 하부장을 적용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지금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은 커피와 음료수만 마실 수 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경로당에 어르신들이 모여서 점심을 준비해 먹었다. 그래서 점심시간 전후로 많은 어르신이 방문하곤 했는데 지금은 경로당에서 식사할 수 없는 점을 아쉬워하셨다.

화장실에 안전 손잡이가 있다
화장실에 안전 손잡이가 있다 ⓒ윤혜숙

화장실과 세면대 등을 이용할 때 주위 사람의 도움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출입문, 좌변기, 세면대 등에 맞춤형 안전 손잡이를 설치했다. 밝은 조명과 더불어 휴지 및 수건을 넣어둔 보관함, 세면대에 냉온수를 표시하는 이미지를 큼직하게 해서 어르신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휴지 및 수건 보관함이나 세면대의 냉온수 표시는 외국인이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로 나타냈다. 이렇듯 ‘유니버설 디자인’은 국경을 초월해서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언어의 장벽 없이 통용될 수 있다.

 
온수와 냉수 표시, 수건보관함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윤혜숙

화목경로당 강준엽 회장(84세)은 경로당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이용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화목경로당이 지금까지 변천해 온 역사를 알고 계신 분이다. 경로당을 ‘유니버설 디자인’에 따라 안전하고 편리하게 바꾸었지만, 그래도 개선을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슬며시 여쭤봤다. 하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잘할 수 있겠냐?”라고 반문하셨다. 모든 면이 만족스럽다고 강조하신다. 다만 굳이 한 가지를 꼽는다면 현관의 센서등을 지적하신다. 현관에 사람이 서면 자동으로 센서등이 켜지는데, 가능하다면 어두운 밤에만 센서등이 작동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자꾸만 센서등이 켜지니깐 혹시 전기료가 많이 나올까 봐 걱정된다면서 “허허” 웃으신다.

화목경로당을 드나드는 어르신들은 “오히려 경로당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다”라고 말씀하신다. 기껏해야 집과 경로당만 왔다 갔다 하는 어르신들이다. 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TV만 시청하느니 경로당에서 또래 어르신들을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무료하지 않다고 하셨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특히 독거 어르신들이 느끼고 계신 외로움이 그분들의 말씀에서 배어 나온다.

서울시는 ‘경로당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북’의 구체적인 확산 방안도 내놓았다. 25개 자치구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의 개·보수 및 신·증축 등 환경을 개선할 때 가이드북이 지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 SH공사와도 협력해 신축 공공주택 경로당 설계 시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서울시뿐만 아니라 대한노인회, 노인종합복지관협회 등 기관의 홈페이지에서도 e-book으로 볼 수 있도록 게시하고, 11월부터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하여 가이드북 제작을 지원하는 등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든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시설은 이용하기 편하다. 서울시의 ‘유니버설 디자인’ 확산으로 멀지 않은 시기에 공공시설을 지금보다 더욱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화목경로당 위치 : 서울 동대문구 전농로31길 33
■ 유니버설 디자인 문의 : 서울시 디자인정책과 02-2133-2729
■ 경로당 유니버설 디자인 가이드 (전자책) ☞ http://ebook.seoul.go.kr/Viewer/8ALI4SJDV4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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