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짙은 창덕궁 후원에서 즐기는 만추 여행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존덕정 일대?모습?ⓒ최용수
“후원(後苑(園), 상림원(上林苑(園), 내원(內苑), 서원(西苑(園), 북원(北苑(園), 금원(禁苑), 비원(?苑, Secret Garden).” 이 말은 조선 초기부터 고종 때까지는 사용된 창덕궁 궁원의 명칭들이다. “비원(?苑)은 「순종실록」(1912년)의 기사에서 처음 나타나는 근래의 명칭이나, 후원(後苑)이라는 이름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서울특별시사」고적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기자도 창덕궁 궁원(宮園)을 ‘후원(後苑)’이라 부른다.
창덕궁 전체 전경?ⓒ최용수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공식 궁궐(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궁궐이다. 나라에 전쟁이나 큰 재난이 일어나 법궁(法宮)을 사용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만든 ‘이궁(離宮)’이다. 창덕궁은 건축물과 조경이 잘 조화된 조선 궁궐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 조선의 역대 왕들도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고, 이곳에 머물며 나라를 다스렸다니 자연스럽게 창덕궁은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후원은 우리나라 대표적 왕실 정원으로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최용수
지난 11월?21일 오전 11시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하는 함양문 앞에 얼리버드(Early Bird)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1개월간의 자유관람 기간이 끝난 터라 해설사와 함께 하는 단체 관람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인터넷으로 50명, 현장에서 50명이 신청하여 1회 100명씩 하루 6차례 단체관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창덕궁 인정전 내부 모습?ⓒ최용수
이날 후원 관람은 함양문을 출발해?부용지 구역→애련지 구역→연경당→존덕정 구역→옥류천 일원을 지나 돈화문까지 이어졌다. 울긋불긋한 늦가을 단풍은 관람객 머리 위로 붉은 물감을 쏟아 붓는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후원에는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가 알토란이지만 오늘은?후원의 연못과 정자의 매력을 찾는데 마음의 중심을 두었다.
창덕궁 후원 단체?관람객들 모습?ⓒ최용수
① 조선 시대 정원을 대표하는 부용지(芙蓉池) & 부용정(芙蓉亭)
해설사의 창덕궁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함양문을 출발했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으니 부용지 구역이다. 고요한 연못과 단아한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부용지는 활짝 핀 연꽃 연못이란 뜻이다. 약 1,000㎡ 면적으로 창덕궁 후원의 연못 중 규모가 가장 크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둥근 섬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옛 동양의 우주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새긴 연못이다.
단풍이 절정인?창덕궁 후원으로 가는 길?ⓒ최용수
부용지에는 2개의 기둥이 연못에 박힌 모습의 부용정(芙蓉亭)이 있다. 창덕궁에서도 숲이 깊고 한적하여 왕과 왕족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독서를 즐기던 장소였다. 18세기 말 정조는 이곳에서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축하하고, 신하들과 낚시를 즐겹다고 한다. 주합루에서 내려다보면 물속에 비친 부용정은 유혹하듯 빼어난 자태를 뽐낸다.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와 부용정 모습?ⓒ최용수
부용지 건너편 언덕에는 2층짜리 건물인 주합루(宙合樓)가 있다. 정조 때 지어진 것으로, 1층은 수만 권의 책을 보관했던 왕실도서관 ‘내규장각’이었고, 2층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장소였다. 주합루(宙合樓)란 우주의 모든 이치가 합하여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곳이란 의미이다.
부용지 일대 주변. 좌로부터 어수문, 주합루, 영화당이 보인다?ⓒ최용수
주합루에 오르는 정문은 어수문(魚水門)이다. 부용정과 마주보고 있는다. ‘어수(魚水)’는 물과 고기와의 관계처럼 군신의 관계도 불가분의 관계이며 친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어수문 정문은 왕만이 사용할 수 있고, 신하들은 그 옆의 작은 문으로 드나들었다. 문 높이가 낮아 통과하려면 자연히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해설사의 설명이다.
② 군자의 덕을 지닌 애련지(愛蓮池)&애련정(愛蓮亭)
특별 과거 시험이 치러지기도 했던 영화당 동쪽으로 이동하면 숙종 때 만든 애련지(愛蓮池)가 있다. 애련지로 들어가려면 불로문(不老門)을 통과해야 한다. 통 바위를 깎아 만든 불로문과 단출한 느낌을 주는 정자 애련정(愛蓮亭)과 수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조선시대 선비의 단아함을 닮은 것 같다.
애련지 애련정은 불로문을 통해 들어간다?ⓒ최용수
애련지(愛蓮池)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숙종은 〈애련정기〉라는 글을 통해 “내 연꽃을 사랑함은 더러운 곳에 처하여도 맑고 깨끗하여 은연히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이다”라며 연못 이름을 ‘애련지(愛蓮池)’로 지었다고 한다. 부용지와 달리 연못 가운데 섬이 없고 사방을 장대석으로 쌓아올렸다. 입수구가 독특한데, 흘러내리는 도랑물을 물길을 따라 폭포수처럼 떨어지게 만들었다. 원래는 연못 옆에 어수당(魚水堂)이라는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단아한 정자 애련정과 군자의 덕을 지닌 애련지?ⓒ최용수
애련지 북쪽에는 애련정(愛蓮亭)이 있다. 숙종 18년(1692)에 지은 것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이익공의 사모지붕 양식을 띠고 있다. 일반 건물에 비해 추녀가 길며 추녀 끝에는 잉어 모양의 토수가 있다. 물 기운으로 불 기운을 막는다는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네 기둥 가운데 두 기둥은 연못 속의 초석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 사방으로 평난간을 둘러있고, 낙양창 사이로는 사계절의 변하는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③ 창덕궁에서 마지막으로 지어진 반월지(半月池)&존덕정(尊德亭)
애련지에서 오솔길을 따라 이동하면 존덕정(尊德亭) 구역을 만난다. 인조 22년(1644년)에 건립된 반월지(半月池)가 있다. 이곳에 존덕정(尊德亭), 폄우사, 승재정 등 여러 석조 건축물이 있다. 존덕정의 처음 이름은 육각정자의 겹지붕의 특징을 살린 ‘육면정(六面亭)’이었으나 뒷날 ‘덕성을 높인다’는 뜻의 ‘존덕정(尊德亭)’이 되었다.
2층 6각 지붕의 존덕정. 천장에는 청용, 황용이 장식되어 왕이 사용하던 곳임을 나타낸다?ⓒ최용수
존덕정 천장에는 다른 정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청용과 황용의 그림이 장식되어 있어 왕의 휴식 공간이라는 걸 말해준다. 지금도 존덕정에는 ‘만천명월주인홍자서(萬千明月主人翁自序)’란 정조의 어제 현판이 걸려있다. 연못 뒤쪽에서는 수 백 년 세월을 머금은 거대한 은행나무가 수면을 노랑 단풍잎으로 물들여 놓았다.
붉은 단풍에 물든?존덕정 폄우사 일대?ⓒ최용수
④ 백성들의 삶을 체험했던 옥류천(玉流川)&청의정(淸?亭)
존덕정에서 북쪽 언덕을 따라 이동하면 옥류천에 이르게 된다. 사방이 울창한 숲으로 에워싸여?호젓한 느낌이다. 인조는 커다란 소요암을 깎아 홈을 파고 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이를 직접 옥류천(玉流川)이라 이름지어 부르며?바위에 새겨 놓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물길 폭포이지만 자연과 조화를 이루니 인공이란 어색함을 찾을 수 없다.
소요암을 깎아 만든 옥류천의 자연스러움이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최용수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 취한정, 청의정, 태극정, 농산정 등 여러 정자가 있다. 창덕궁 건축물 중 유일하게 초가지붕의 청의정(淸?亭), 그 앞에는 작은 논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왕이 직접 농사일을 체험해 보고 백성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논이다. 왕들이 직접 파종하고 수확한 볏짚으로 지붕을 덮었다고 한다. 이 외 옥류천의 정자들은 왕들이 휴식하고 독서하며 쉼을 하던 장소였다. 후원 깊숙한 곳에 있는 옥류천 일대는 조용하고 한적하여 후원 중 후원이다.
왕이 직접 농사일을 체험했던 청의정(좌)과 태극정(우)?ⓒ최용수
이어 조선 후기 사대부 주택 연경당(演慶堂)을 지나 돈화문 출구로 이어지는 후원 관람 투어 1시간 30분은 끝이 난다. 곧 겨울 방학이 시작된다. 아이들과 함께?궁궐 정원을 구경하고 싶다면 창덕궁 후원을 추천한다. 서울에는 궁궐이 다섯이나 있지만 창덕궁 만큼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궁궐 정원은 없기 때문이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과거 시험을 보았던 부영지 영화당(暎花堂)을 본다면 우리 아이도 큰 꿈을 꾸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왕의 즉위식이 열렸던 창덕궁 인정전?ⓒ최용수
●창덕궁 이용 정보?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전??화 : 02-3668-2300
? 홈페이지?: www.cdg.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