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표음식은 뭘까?”…31일까지 서울먹거리문화제
서울을 대표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떠오르는 건 사람마다 다를지 모른다. 10월 31일까지 ‘2020 서울 먹거리 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를 감안해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한식인문학 특강을 비롯한 쿠킹 클래스와 음식 독서 학교 등 6종 17개 프로그램이 서울시 SNS를 달콤한 음식향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일방향 콘텐츠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재료를 직접 보고 따라 해볼 수 있는 쌍방향 프로그램들이 마련돼 더욱 즐거움을 준다.
2020 서울 먹거리 문화축제가 오는 31일까지 진행된다. ⓒ서울시
첫 한식인문학 특강이 궁금해 미리 예약했더니, 당일 문자로 링크주소가 도착했다. 26일 한식인문학 특강은 서울의 역사와 함께 서울 음식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총 1, 2부로 나눠, 1부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주영하 교수의 ‘서울의 근현대사 속 서울 음식’ 강연을, 2부는 이희준 대표 (더로컬 프로젝트) 사회로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조셉 리저우드(에빗 오너쉐프), 줄리아 멜로 (더술컴퍼니) 대표 등이 함께 다양한 시각으로 서울의 맛에 대해 토크쇼를 진행했다.
서울이야기가 있는 한식문화 특강이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됐다. ⓒ서울시 유튜브
서울 역사 속 음식
“서울을 대표하는 한식이 과연 있을까요?” 서울의 근현대사와 함께 주영하 교수는 먼저 세 가지 의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중앙 집권화된 조선시대, 모든 진귀한 식재료가 한성으로 보내졌지만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한성에 독자적인 한식이 있었을까, 두 번째는 근대적 도시로 변한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대표할 만한 한식이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해방 후 지방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인 서울에 고유의 한식이 있을까 등이었다.
주 교수는 각각 말하는 서울의 대표 음식은 각각 달랐다고 했다. 외국인은 치킨과 떡볶이를, 어르신들은 청진동 해장국집, 직장인들은 종로의 피맛골, 충무로 뒷골목 생선구이 집을 언급한단다. 생각해보자. 모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서울, 반대로 정말 대표하는 음식이 무엇일까 물으면, 필자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울 듯싶다.
서울이야기가 있는 한식문화 특강이 26일 북촌52살롱에서 진행됐다. ⓒ서울시 유튜브
▶ 1905년 고종황제·순종이 미 대통령 딸부부와 먹은 음식은?
역사와 함께 한 음식 이야기는 점점 흥미를 더했다. 대한제국 시기 고종황제가 식사 때마다 펼칠 수 있는 종이 메뉴판을 참고해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단다. 국가 정세에 입맛이 없었을 시기, 황제와 대신들이 먹은 건 무엇일까. 1901년도 창덕궁 행사 때 상에 올린 음식을 보면, 냉면, 온면, 생 배, 생 귤 등과 간장, 겨자, 초장(조선간장에 식초를 넣은 것) 등을 먹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위와 똑같은 메뉴를 1905년에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딸이 왔을 때 대접했다고 한다. 먼저 국정에 고심하던 고종황제는 미국 대통령 딸을 위해 야외에서 프랑스 요리를 벌이는 등 융숭한 대접을 했으나. 대통령 딸은 먹지 않고 갔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고종황제는 덕수궁 중명전에서 순종과 조선식 메뉴를 준비해 다음날 다시 딸을 초대해 점심을 같이 했단다. 이 이야기는 지금 뉴욕에 있는 공공 국립도서관 자료에 나온 것으로, 조선의 황제가 처음으로 외국인 여성과 식사를 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메밀로 만든 부드러운 평양냉면 (출처 : flickr.com)
▶ 가위를 필요하지 않는 평양 냉면, 서울식 냉면은 여름에 질겨진다고?
조선왕실에서 먹은 골동면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면으로 메밀 국수로 소고기와 계란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1920년대 서울에 소개된 평양냉면은 메밀로 만들어 부드러웠다. 단 여름에는 서울에 메밀량이 적어, 반죽에 전분을 넣게 되면서 질겨졌다고. 그래서 평양사람들은 냉면 가위가 필요가 없으나, 서울냉면이 여름에는 가위를 사용하게 됐단다.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식문화가 흥미로웠다.
지명과 함께 달라지는 음식들
▶ 서울에 하층민인 백정이 많아 설렁탕 집이 많았다?
조선시대 가장 천한 직업은 백정(도살업자)였단다. 1970년대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런 편견이 남아 있었단다. 그런데 왜 이런 서울에? 서울은 큰 행사나 제사가 많으니, 고기를 잡을 도살업자들도 많이 있을 수밖에. 해방 이후, 그들은 설렁탕 집을 차렸다고 했다. 재미있게도 대량으로 공급하고, 빨리 먹을 수 있어 비빔밥과 설렁탕은 당시에는 일종의 패스트 푸드였단다. 24시간 푹 끓이는 이미지가 있는 설렁탕이 패스트푸드라니 신기했다.
▶ 동대문운동장 미나리밭으로 추어탕 집도 많았다?
또한 동대문운동장 미나리 밭에 미꾸라지가 널렸단다. 그런 연유로 추어탕 집이 많으나, 가을에만 하고 다른 계절에는 메뉴가 바뀐다는 이야기는 신선했다. 특히 어르신들 말씀으로 들어온 두부에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넣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동대문운동장 미나리 밭도 왠지 요즘 DDP를 생각하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또 서울에서 갈비를 가리구이라고 부르며 낙원동의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가리구이를 먹으며 술과 냉면을 먹으면서 회포를 풀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왠지 그 이야기를 듣자 낙원동에서 또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 필동·을지로·오장동에 북한 음식이 많은 이유?
필동, 을지로, 오장동 일대에 냉면과 북한 음식이 많은 이유도 역사적 사건과 관계가 있다. 38선이 생기고, 6.25 전쟁이 나기 전, 평양의 부자들이 서울에 내려와, 적산가옥을 샀다. 적산가옥이 많던 필동, 을지로 오장동 일대에 북한에서 이주한 사람이 많아 북한 음식이 많다고.
▶ 가난한 청계천에서 유명해진 음식은?
이와는 달리 청계천 주변에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했으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이 공간에서 많이 먹었던 건, 재료비가 거의 안 드는 빈대떡이었다. 부인들이 저렴한 녹두와 무쇠솥을 들고 와, 기름만 둘러 만들면 끝이니 말이다. 청계천 빈대떡 하니, 현재 광장시장에서 유명한 녹두전이 떠올랐다.
▶ 시대와 함께 변해 온 음식들이 서울로. 종로에선 라면 첫 시식도
1963년 인스턴트 라면이 우리나라에 새로 생기고 가장 먼저 먹은 사람도 서울사람이었다. 처음에 라면이 안 팔려 종로 길거리에서 시식을 실시해,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라면이 안 팔렸다니 요즘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1968년 서울 아파트에 장독대를 없애는 정책이 있었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직접 간장, 된장을 담그지 않고, 시판 장을 먹는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써 서울 한식의 기본 맛이 꽤 달라졌다고 한다.
1981년 여의도에서 국풍 81축제를 해서 지방의 유명한 음식들이 다 올라왔다. 예로 서울에 충무 할매김밥이 소개됐다. 어렸을 적 동생과 국풍81에 가서 칠면조 고기를 사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1986~88년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계기로 압구정동에 맥도날드가 처음 들어오고, 외국 인스턴트 및 한식의 고급화가 되었다. 일찍이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 속에 들었던 ‘맥도날드’가 직접 먹을 수 있게 된 건, 꿈만 같았다. 친구들과 몰래 줄을 서서 먹은 기억이 난다. 이후 서울은 국제거리가 생기고 각국 음식과 각 지방의 음식을 맛 볼수 있는 도시가 되었다.
수삼 값의 인하로 이름마저 뒤바뀐 삼계탕 얘기가 흥미롭다. (출처 : flickr.com)
▶ 삼계탕과 계삼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강의에서는 깨알같은 재미도 주었다. 기술이나 발전, 경제도 음식에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가 닭으로 유명하게 된 까닭 등을 알려줬다. 예전에는 달걀을 낳기 때문에 닭을 잘 잡지 않았으나 1960년대 미국 품종을 들여와 육계로 키우게 되면서 값이 싸졌고, 미군으로 많아진 식용유와 결합해 통닭 집이 생겨났다. 그 역사가 오늘날 치킨집이라니, 뭔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삼계탕이 유래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삼계탕은 신선한 수삼이 필요해, 냉장시설이 중요한데 냉장시설이 발전하며 수삼 값이 싸져 대중화 되었다. 사실 그전에는 계삼탕이라 불리었는데, 그때는 주로 말린 인삼의 가루를 넣었다. 수삼값의 인하로 이름마저 뒤바뀐 삼계탕 역사를 알게 돼 재미있었다.
▶ 포스트코로나 시대, 내 음식을 먹는 변화
포스트코로나 시대 달라질 음식문화 이야기도 나왔다. 함께 나누는 음식보다는 1인 1식을 먹는 각자의 음식이 될거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섬세한 요리법이 다시 자리를 잡아, 대량보다는 소량으로 더 정성껏 만들 듯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전형적인 서울의 한식으로 주영하 교수는 설렁탕과 깍두기를, 조셉은 전과 막걸리를 꼽았다.
강의와 토크쇼를 듣고 나니 마치 시간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분명 필자가 태어나고 자라온 서울에 대해 음식을 통해 다시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먹고 다녔는데 요리마다 깊은 사연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비단 필자 만이 아니었다. 채팅 창에는 무척 흥미롭고 재밌었다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외국에서 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으며, ‘이런 많은 뜻을 품었을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주최 측에서는 수어로 진행하고 영어로 간간히 요약해 들려줬다.
한식인문학 특강은 27일 2회차에서 서울의 전통디저트에 대해 이야기하고, 28일 3회에서는 서울의 전통주 이야기를 다뤘다. 또한 4~6 회는 각자 집에서 서울의 대표 음식을 미리 신청받아 설렁탕과 불고기, 고추장 등을 따라 만들면서 진행한다니 꽤 흥미로워 보였다. 물론 실시간 방송은 놓쳤다해도 서울시 온라인 유튜브에서 계속 들어봐도 좋겠다. 자세한 프로그램 일정은 서울시 식품안전홈페이지(http://fsi.seoul.go.kr), 서울시 홈페이지(http://www.seoul.go.kr),서울시식생활종합지원센터(http://www.seoulnutri.co.kr)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울이야기가 있는 한식문화 다시보기
– 1일차 : https://www.youtube.com/watch?v=ObK_Vd-EMow
– 2일차 : https://www.youtube.com/watch?v=y_8p50HP6Vo
– 3일차: https://www.youtube.com/watch?v=y_8p50HP6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