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시인의 ‘녹번리’를 찾아서…’서울문학기행’ 동행기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국민 애송시 ‘향수’로 기억되는 시인 정지용의 문학 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울시와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진행하는 ‘서울문학기행’이 그것이다. 정지용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된 서울 녹번동을 중심으로 시인의 생전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서울문학기행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1명의 작품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모토로 기획되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문학작품 속 서울의 옛 풍경을 둘러보며 작가의 창작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0월 3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문학 전문가와 함께 문학 속 배경 장소를 탐방할 수 있다.
정지용 산수시 연구로 문학박사를 취득한 박미산 시인이 해설에 나섰다. ⓒ강사랑
지난 11일, 첫 번째 문학기행은 정지용 시인의 문학 세계를 탐방하는 시간으로 박미산 시인이 해설을 맡았다.
프로그램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강연 해설과 더불어, 작가의 거주지를 돌아보고, 명창이 함께 하는 국악공연까지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회당 참가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모집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을 통해 이뤄졌는데, 이번 첫 회의 경우 뜨거운 반응으로 예상보다 일찍 조기 마감되었다고 한다.
이번 탐방은 정지용의 시 ‘녹번리’를 주제로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진행되었다. 녹번동 초당 일대는 시인이 납북되기 전까지 살며 시 창작에 매진한 곳이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서울문학기행 참가자들은 녹번 산골마을에서 정시용 시벽을 관람하고 생태다리를 건너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운 날씨에 산을 오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기폭제로 서로 격려하며 낙오자 없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 정지용 시인의 일생과 시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여자들 ⓒ강사랑
전망대에서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박미산 시인의 해설이 이어졌다. 박미산 시인은 “모국어를 새롭고 혁신적으로 다룬 사람이 바로 정지용 시인이에요. 또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 등 우리나라 문학사에 거목으로 남은 시인들을 등단시킨 사람이기도 하지요” 라고 말하며 “정지용 시인은 경향신문사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재직하며 창작과 사회 활동을 겸했지만, 은평구 녹번동으로 이사오면서 사회 생활을 접고 오직 시 창작과 서예에만 몰두했어요. 그가 녹번리 초가에 살면서 쓴 시 가운데 ‘녹번리’라는 시에는 당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헐려 뚫린 고개 / 상여집처럼 / 하늘도 더 껌어 / 쪼비잇하다.’
– 시 ‘녹번리’ 중에서 –
어느 날 술에 취하여 귀가하는 시인이 녹번리 초가로 가는 길목에서 그런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정지용 시인이 납북되기 전까지 살던 집은 현재 어느 곳일까? 서울문학기행 참가자들은 산을 내려와 여러 번 길을 헤맨 끝에 정지용 시인이 거처했던 집터에 도착했다.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26-10. 이곳에서 시인은 1948년부터 1950년까지 거주했던 곳이다. 시인이 실제로 살던 집은 ‘ㄱ’자 형태의 6칸 초가였다고 한다. 현재 그 집은 사라지고 그 터에 빌라가 들어섰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 빌라 벽에 정지용 시인이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만큼 평범한 장소였다.
박미산 시인은 “이곳에서 정지용 시인은 시 창작에 전념하다가 1950년 경 납북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설(說)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평양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미군의 폭격으로 폭사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지금 이 자리 녹번동에서 남긴 대표 작품은 ‘곡마단’, ‘사사조오수’, ‘녹번리’ 등이 있습니다. 창작량만으로 본다면 전성기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시 외 산문 영역에서도 삶의 태도를 아우르는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평했다.
서울문학기행단은 마지막 일정으로 우리의 전통 국악 공연을 감상했다. 안전 문제로 인해 실내 공연장이 아닌 야외 놀이터에서 김종환의 대금 연주와 김명남 명창, 조풍류 고수의 판소리가 펼쳐졌다.
‘인생 한번 가고 못 오면 / 만수장림에 운무로다‘
– 시 ‘녹번리’ 중에서 –
정지용 시인의 시 ’녹번리‘ 마지막 연과 같은 맥락으로 기획된 공연으로, 인생무상의 애상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공연을 끝으로 ’서울문학기행‘의 첫 번째 탐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는 18일에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주제로 작가의 생가터와 시비가 있는 흑석동을 탐방한다. 25일에는 박태원의 ‘천변풍경’, 8월 1일에는 박경리의 ‘불신시대’가 오후 6시부터 야간기행으로 운영된다. 이번 서울문학기행은 시민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참가 신청 및 선정은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에서 선착순으로 이뤄진다. 탐방 프로그램은 유트브(유튜브>서울도시문화연구원 검색>어반티비)로도 시청이 가능하다.
작가가 숨쉬던 시대와 장소를 이해하는 것은 곧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서울문학기행’은 서울을 무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친 시인과 소설가들을 조명하며 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초대하고 있다. 문학의 세계를 만끽하는 동시에 서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천재시인 ‘이상’이 드나들던 찻집, ‘윤동주’가 학생 시절 하숙했던 집터… 이번 주말에는 서울 곳곳에 숨어있는 문학 명소를 탐방해보는 것은 어떨까.
■ 2020 서울문학기행
○ 일시 : 2020. 7. 11. ~ 2020. 10. 3. 매주 토요일 15~18시(7월 25일, 8월 1일은 야간기행 18~21시)
○ 참가인원 : 매회 선착순 20명, 서울시민 누구나 (현장접수 불가)
○ 신청 : 서울특별시 공공서비스예약(yeyak.seoul.go.kr)
○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02-772-9069
○ 유튜브 생중계 보기 : 어반 TV
■ 2020 서울문학기행 일정 ※일정 및 해설자, 공연, 코스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 ※혹서기(8/2~8/21)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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