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작은 연구로 본 서울
‘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 문장에서부터 호기심이 느껴진다. 필자 역시 학창시절 신촌에서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언젠가부터 별 이유 없이 멀어진 느낌이 들어 궁금했던 차였다.
2019 하반기 작은연구 좋은서울 최종발표회가 열렸다 ⓒ서울연구원
지난 7월 2일 오후 2시 서울연구원 대회의실에서는 ‘작은연구 좋은서울’ 지원사업 2019년 하반기 연구결과 발표가 열렸다.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소수의 발표자와 멘토만이 참석하고 유튜브(https://www.youtube.com/watch?v=NJNOW2dchjU)를 통해 라이브로 방송되었다. ‘작은연구 좋은서울’은 시민이 직접 생활 속에서 문제를 찾고 연구하는 생활 밀착형 정책 발굴 사업이다. 이날 진행된 11가지의 연구 과제 사업 중에는 ‘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도 포함돼 있었다.
진행자의 간단한 인사를 시작으로 결과 발표회가 열렸다. 발표는 각 주제 당 10여 분이 주어졌고 4가지 발표가 끝나면 각 분야 멘토의 의견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연구는 문제와 호기심, 불편한 점 등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정책으로 이어지는 방향이 돼 의미도 컸다. 모두 재미있고 필요한 주제였으나 특히 흥미로웠던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1. 들어봐! 이게 서울의 자연 소리야!
필자가 자연을 좋아하는 이유에서일까. 서울의 자연 소리가 어떨지 궁금했다. 간혹 한강을 나가면 들리는 소리가 전부일까.
발표를 맡은 최세준 씨는 서울의 소리를 길동생태공원, 둔촌동, 우면산, 궁동저수지, 북한산국립공원, 남산, 서울숲 등 총 8곳에서 수집했다. 대상지 별로 조류 포유류 양서류가 총 45종이었고, 조사 결과 대부분 30종 이상이 있는 걸로 확인되었다. 조사를 하다 보니 멸종 위기 2급인 팔색조와 수리부엉이를 포함, 원앙, 소쩍새, 황조롱이 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몇 가지 녹음해온 소리를 직접 들려주었다. 매력적인 팔색조의 소리는 이름 그대로 청아했다. 보통 팔색조는 남쪽에 서식하는데 경쟁에 밀려 서울까지 올라온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밤의 제왕인 수리부엉이의 낮은 소리도 들었다. 북한산에서 만난 수리부엉이는 암벽이나 절벽에 서식한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예쁜 원앙새였다. 보통 원앙새가 금실이 좋은 부부를 가리켜 말하는데 실상 원앙새는 일부다처제로 암컷이 알을 낳으면 바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앙새와 팔색조의 실제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연구원
그는 주제가 민원이나 불편 사항이 아닌 만큼 정책 제안은 많지 않으나 재미있는 시각에서 내가 사는 서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또한 시민들에게 거주지 서식 동물을 알리고 기후변화 등도 함께 교육 효과를 적용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멘토 이소진 씨의 의견이 덧붙여졌다. 이소진 씨는 보호가 필요한 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설명과 함께 시민들이 이런 보호종을 발견했을 때 어떤 대처법을 취해야 좋은지 제안해 주기를 조언했다.
2. ‘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
여덟번째로 발표한 ‘사람들은 왜 신촌을 떠났을까?’ 연구는 역시 흥미로웠다. 발표자는 2000년 대 초반까지 핫 플레이스였던 신촌을 찾았던 사람들과 상권이 줄어든 원인을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발표자인 하정희 씨는 신촌을 대표하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가졌다. 40대 인터뷰이는 신촌에 KFC가 처음 생겨 놀러 다녔다고 말했고, 또 다른 40대 인터뷰이는 부모님이 신촌에서 시장을 하셔서 어릴 때부터 살았는데 자유분방한 문화가 좋아 즐기다가 상권의 움직임과 함께 홍대로 옮겼다고 말했다.
신촌 상인회를 만나 인터뷰를 나눈 일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서울연구원
발표자는 인터뷰 중 신촌 상인회의 ’상인들도 변해야 한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또한 그 결과 신촌 상인회에서 맥주축제, 물총축제 등 먼저 제안해서 기획을 하고 진행을 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상인에게 그 활동이 의미가 있냐고 물었더니 안 하는 것보다 낫고, 단발성이라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신촌을 떠난 이유는?”이라는 질문에 오래된 상권 쇠퇴, 2014년 연세대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 이전으로 유동 인구 감소, 서울 내 다양한 상권 형성 등을 꼽았다.
이에 발표자는 세가지 정책제안을 했다. 첫째, 신촌에서 다양한 분야의 문화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유휴공간을 지원해 주면 좋겠다. 둘째, 신촌에 향수를 가진 30~40대를 타깃으로 10년 이상 오래된 가게 운영을 지원해주면 좋겠다. 셋째, 전통 시장법이 소상공인에게 안 맞으니 소상공인을 위한 현실성 있는 개정 법이 필요하다.
끝으로 발표자는 인터뷰이가 본인에게 ‘사람들이 신촌을 떠났다고 생각했냐’라고 묻길래,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연구를 위해 부정적으로 던진 질문이었는데, 생각보다 활기 넘치고 긍정적인 모습과 답변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3. 서울의 숨겨진 작은 브랜드 연구 – 철학적 소기업 브랜딩 솔루션
“문화와 콘텐츠가 있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상권이 살아난다는 가정을 했어요. 유명한 건축물이 없는 파리의 마레 지구와 생제르맹 지구가 특별해지고, 관광객이 모이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디자이너 브랜드와 부티크, 갤러리 등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걸 알았죠.”
연희동 주택가에 생기는 회사들, 이한나 발표자 ⓒ서울연구원
파리에 12년 거주했다는 발표자 이한나 씨는 가설을 설정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기존에 많이 가지 않은 로컬 명소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지역 주민이 좋아하는 곳이 지역 문화를 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작은 브랜드의 힘의 공통점은 본질에 집중해 자기만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만들어 지역 주민과 소통한다는 걸 깨달았다. 코로나19로 인터뷰가 힘들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착한 소비를 하는 로컬 브랜드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멘토인 박희석 박사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작은 브랜드에 대해 서울시가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제안을 넣어줬으면 좋겠고, 오래가게 등과 차별성을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지역 상권에 있는 자영업자들에게 꽤 도움이 될 거 같아 감사하다”라며 현실적인 조언과 칭찬도 잊지 않았다.
2019 하반기 작은연구 좋은 서울 결과발표회는 서울연구원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서울연구원
위 발표 이외에도 ‘도로공간 갈등 해소를 위한 퍼스널 모빌리티 플레이 그라운드 조성 방안 연구’나 ‘양육당사자가 만드는 갈등 없는 아이 키우기’, ‘지구 환경과 함께하는 메가트렌드 착한 소비의 인식과 확산’ 등이 재미있고 유익해 보였다. 또한 특별히 ‘장애 청년 노동의 주관적 인식 연구’ 등 장애에 관련한 연구가 세 가지가 나와 다양한 제안을 들어볼 수 있었다.
나도삼 본부장(서울연구원 연구기획조정본부)은 “11개 발표를 들어 보니,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미 있는 연구를 했다고 본다”라며 “작은 연구는 섬세한 주제를 갖고 시민들에게 맞도록 연구하는 것으로 취지에 맞게 잘 되고 있어 앞으로 더욱 강화할 생각”이라 말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들 시민 연구자(발표자)와 서울 연구원의 각 분야 연구진들은 지난 6개월간 논의하고 수행한 11개의 연구 사업의 결과를 발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을 제안했다. 서울연구원의 ’작은연구 좋은서울‘은 2012년부터 시작했다. 서울연구원을 시민들에게 오픈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발굴할 기회를 주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시각을 같이 나누자는 취지로 갖고 있다.
2019 하반기 ‘작은연구 좋은서울’ 사업 내용은 서울연구원 홈페이지(http://www.si.re.kr/node/63596)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결과발표회 유튜브 다시보기 : https://www.youtube.com/watch?v=NJNOW2dch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