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마신 커피맛 그대로 ‘운현궁 가배체험’
‘가배’, ‘양탕국’은 개화기에 서양으로부터 커피가 전해졌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을 때다. 급진개화파의 습격으로 부상을 당했던 민영환을 알렌이 치료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3년간 왕실의 어의로 지냈다.
알렌의 기록에서 최초로 커피를 언급하고 있다. “궁중에서 오랜 시간 대기하는 동안 궁중의 시종들은 거절하는 데도 불구하고 잎담배와 샴페인, 사탕과 과자를 끝까지 후하게 권했다. (중략) 후에 그들은 자기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 품목에 홍차와 커피를 추가했다.” 라고 그가 쓴 ‘Things Korean’에서 밝혔다. 그러니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이 외국과의 통상교류를 시작한 개화기 때 서양의 국가에서 커피가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이 자라고 흥선대원군이 지냈던 운현궁 정문 (c)윤혜숙
조선 궁궐에서 왕을 비롯한 측근들이 마셨던 커피 맛은 어땠을까? 운현궁에서 당시의 커피 맛을 재현하는 가배체험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4대 고궁들을 제쳐두고 하필이면 운현궁에서 커피체험을 하는 것일까?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다.
운현궁은 고종이 자랐던 곳이고, 흥선대원군이 말년까지 지냈던 곳이다.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12살난 고종을 대신해서 섭정했던 흥선대원군의 위세는 대단했다. 지금 현존하는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집권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작은 궁궐인 셈이다.
가배체험을 예약한 시각에 맞춰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 출구에 인접한 운현궁을 방문했다. 전철역에서 나오니 한옥 건물의 긴 담벼락이 이어지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왼쪽의 기획전시실에 가배체험실이 마련되어 있다.
테이블 위에 일인용 커피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개화기에 사용했던 핸드드립에 필요한 도구들을 그대로 가져다 놓았다.
담당자는 먼저 고종이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때의 커피 맛은 어땠을지 궁금증이 이어진다.
“양탕국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커피를 우려내면 그 맛이 쓰고 진한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서양의 한약이라고 여기면서 꿀꺽 마셨을 것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체험객들 중에서 외국인도 보였다.
당시 고종이 마셨던 커피를 제조하고 시음해볼 수 있는 가배체험 (c)윤혜숙
먼저 원두를 핸드밀로 갈았다. 지금의 핸드밀관 달리 빡빡해서 원두를 가는 데 양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
그 당시엔 천으로 만든 여과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커피를 추출하기까지 반나절 이상 시간이 걸려서 종이로 만든 여과지로 대체했다고 한다. 커피를 추출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는 여유가 있다. 마치 다도와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인가 커피는 인스턴트를 대표하는 음료가 되었다. 애당초 커피는 뜨거운 물을 부어서 추출해서 마시는 점에서 뜨거운 물에 우려내는 차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초기엔 커피가 왕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리라.
체험실의 한쪽 벽면에는 포토존도 마련돼 있다. 커피잔을 들고 포토존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왕실로 되돌아간 듯하다.
비록 멸망의 길로 접어든 비운의 왕실이었지만, 그들은 앞서 알렌이 언급했듯이 왕족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쓰디 쓴 커피를 마셨을 것이다.
가배체험이 끝나고 운현궁을 둘러보았다. 먼저 유물전시관에서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유물을 살펴보았다.
책부터 세간살이, 의복에 이르기까지 그 가짓수가 많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복제품이고 실제 유물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에서 나와서 운현궁 입구로 가면 수직사가 있다. 수직사는 운현궁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다. 운현궁을 지키는 흥선대원군의 측근들이 사용했던 공간이다.
연결된 방들이 많다. 그만큼 흥선대원군이 부리는 수하가 많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수직사에서 위쪽으로 가면 곧장 노안당으로 이어지는 작은 문이 있다. 노안당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노안당의 왼쪽에 두 채의 건물, 노락당에 이어 이로당이 나온다. 노락당과 이로당은 운현궁의 안채로 흥선대원군 부부가 사용했던 공간이다. 각각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어도 세 채의 건물들이 복도각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문을 열어둔 방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실물 모형으로 재현해 두었다. TV 사극 드라마에서 익히 보았던 낯익은 장면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각자 일인용 반상을 받았다. 집에서 부리는 노비가 있었으니 가족 수만큼 설거지 거리가 많아져도 양반들은 걱정이 없다. 신분제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운현궁은 조선 궁궐보다 규모는 작지만 여느 양반집보다 규모가 컸던 것으로 봐서 한때 조선 팔도를 통치했던 흥선대원군의 권세를 과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흥선대원군이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지만 끝내 조선이 멸망함으로써 그의 업적은 유명무실해졌다. 하지만 운현궁은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건재하다. 새삼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주말에 운현궁에 나들이 와서 가배체험을 하고 운현궁을 둘러본다면 어떨까? 아이들에게 고종이 집권했던 당시 개화기의 역사를 커피와 곁들여서 일러주는 것도 좋겠다.
■ 운현궁 가배체험 안내 ○일시 : 2019년 7월 20일~8월 18일, 주말 및 공휴일 11:00~17:00 (12:00 ~ 13:00 점심시간 제외) ○장소 : 운현궁 기획전시실 ○내용 : 고종이 즐겨 마셨던 커피와 유사하게 1800년대 후반 방식으로 커피를 제조하고 시음 해볼 수 있는 체험을 진행한다 ? 1800년대 후반 방식으로 제조된 커피(가배) 시음 ? 매 시각 정각 강사 진행에 따라 40분간 진행 (정원 6명) ? 사전예약제로 운영 (당일 취소 티켓에 한하여 현장 예약 진행) ○체험비 : 1인당 3,000원 ○예약하기 : 운현궁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