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그 시절 물건들 한자리에 ‘서울생활사박물관’
시민의 역사를 아카이브한?‘서울생활사박물관’이 옛 북부지방법원 터에 개관한다. 개관 전 7월 26일부터 9월 10일까지 임시로 개방하고 있으며, 관람객의 의견을 받아 개선할 부분은 보완할 예정이다.
서울시에서는 옛 북부지방법원의 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 서울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만들기로 했다.
‘서울가족’이라는 테마로 구성된 서울생활사박물관은 서울의 변화 모습을 보여주는 ‘서울풍경’, 서울에서 살아 온 시민들을 보여주는 ‘서울살이’, 직업과 자녀교육 등을 소개하는 ‘서울의 꿈’ 등 3개의 주제로 전시를 열고 있다.
임시개관 중에는 생활사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인 옴팡놀이터만 개방하고, 구치감전시실과 교육실은 개방하지 않는다.
① 서울풍경
풍경이라고 하면 왠지 멋진 장면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50년대 서울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가진 도시였다. 전선으로 만든 바구니, 밀가루 포대로 만든 가방, 탄피를 재활용해 만든 재떨이는 당시의 시대상을 대변하고 있다.
어렵지만 살아야 했다. 부모에겐 먹여 살릴 자식이 있었고, 아이들은 부모의 지원 아래 꿈을 키웠다. 도시는 재건되고 있었고 당시 부유층이 사는 지상복합아파트인 세운상가가 건설되고 있었으며, 60년대 여의도 개발이 시작됐다.
70년대에는 아스팔트가 놓였고, 80년대는 마이카시대가 도래했다. 포니택시와 브리샤는 80년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살면서 특별한 하루가 있다면 어느 날일까? 가족의 생일? 연인과의 기념일? 시험에 합격한 날? ‘한 도시 이야기’는 1994년 어느 날, 상암동-봉천동, 강남, 명동의 하루를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날의 뉴스, 광고 등으로 서울의 하루를 표현했는데, 영상을 보고 있자니 ‘1994년 어느 늦은 밤’이란 노래도 생각이 났다. 94학번이어서 그런지 영상이 낯설지 않았다.
지금 3040세대의 부모님은 죽어라 일만 했다. 내 자식들은 나보다 더 배워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벌어 교육에 올인했다. 그러다 보니 쉽게 요리해서 먹을 수 있는 라면과 조미료가 인기를 얻었다.
통신의 변천도 시민과 함께 했다. ‘별밤’을 들으며 공부했던 기억, 삐삐, PCS폰이 대중화되며 연락이 편해졌지만 약속이 깨지기도 쉬웠다. 집전화만 있었을 때는 약속장소에 무조건 나갔어야 했는데…
② 서울살이
2층의 ‘서울살이’에서는 가족과 결혼의 기록이 남겨져 있다.
1994년은 서울 정도 600년이 되던 해였다.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유입이 늘면서 서울토박이에 대한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서울토박이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 당시에는 서울에서 3대째 거주한 사람들을 서울토박이라고 규정했다.
서울에 상경해서 성공하겠다는 청춘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인 ‘무작정 상경’, ‘영자의 전성시대’, ‘지옥화’, ’바람불어 좋은날‘ 등의 줄거리도 볼 수 있다.
요즘엔 결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탄생을 알려주는 결혼. 예전에는 양가 부모님이 결혼 날짜를 잡는 중매혼, 자식들을 만나게 하는 절충혼 등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예식장은 1937년 금구예식부, 만화당예식부 등이다. 예식장이 대중화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이며, 60년대부터 예식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례 없이 신랑신부가 혼인선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엔 고천이라고 해서 하늘에 고하는 식을 올렸다고 한다. 또한 청첩장도 신랑신부가 돌리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제3자가 신랑신부가 결혼을 한다고 알렸다.
결혼하면 가장 많이 준비하는 게 신혼여행이다. 70년대에는 결혼식 후, 남산 한 바퀴를 돌고, 호텔에서 하룻밤을 잤다고 한다. 이후 제주도가 신혼여행의 메카로 부상하는데, 돌하르방의 코를 잡고 찍은 사진을 쉽게 볼 수 있다.
똑같은 결혼식, 똑같은 신혼여행, 똑같은 사진이지만 내가 주인공이었기에 희망도 있었고, 가족도 꾸릴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의 역사는 시대의 역사란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김신조가 침투했을 때, 삼엄한 경비가 있었다. 결혼식을 후 신혼여행을 가는 차는 헌병들이 통과해주며 손을 흔들어줬다고 한다. 또 다른 시민은 故박종철 추모식 날 결혼했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무정차로 친구들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고 회상했다.
기자도 20대 후반 친구들과 오징어를 쓰고 함진아비를 한 적이 있다. 신부 집 주변이 떠들썩했는데, 예전에는 오징어도 귀해 얼굴에 숯검정을 그리고 함진아비를 했다고 한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문화가 된 것을 보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③ 서울의 꿈
마지막으로 ‘서울의 꿈’에서는 주택,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서울에서 내 집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서울의 집값은 수억에서 수십억대다. 지금은 월급쟁이로서 집을 가질 수 있을까?
70년대 등장한 불란서 주택은 테라스가 있고, 백색 콘크리트로 난간을 만든 모습이었다. 불란서 주택 대단지가 생기면서 마을이 개발되기도 했다.
1964년 12월 서울시 중학교 입시 시험문제와 1967년 중학교 입시 미술 문제는 무즙파동과 창칼파동을 불러 일으켰다.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을 묻는 문제에서 무즙을 넣어도 된다며 실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엿을 먹어보라’며 교육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창칼파동 역시 복수정답이 인정돼 명문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부모의 시위가 있었다.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의 사실과 역사가의 입장이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는 역사가가 아닌 시민의 생활을 역사로 꾸며 놨다. 마치 부모님 앨범 속 사진을 본 것 같다.
세대는 가족 구성원을 통해 이어진다. 아이가 부모가 되고, 부모가 조부모가 되는 그 중간. 삶의 교집합을 통해 세대와 삶, 역사가 공유된다.
3대가 함께 하면 더 멋진 서울생활사박물관. 임시개관 중, 만족도 조사 참여 시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하니 3대가 함께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가보자.
■ 서울생활사박물관 임시 개관 안내 ○ 진행기간 : 2019년 7월26일-9월 10일 ○ 개관시간 : 오전 10시 ~ 오후 5시 ○ 장소 : 서울생활사박물관(노원구 동일로 174길 27 소재) ○ 교통 :?지하철?6호선 태릉입구역 5번 출구,? 7호선 태릉입구역 6번 출구 ○ 홈페이지 : 서울생활사박물관 ○ 문의 : 서울생활사박물관 02-3399-2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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